송수연 기자의 히포구라테스

정치가 개입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 대책은 세우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속항원검사를 기반으로 한 자가검사키트다. 민감도가 낮아 선별검사용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전문가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가검사키트가 도입된 배경에는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지난해 12월 신속항원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수도권 임시선별검사소 150여곳에 즉각 도입됐다. 당시에도 위음성(가짜음성)을 걸러낼 방법은 없었다. 정치권은 한 발 더 나가 신속항원진단키트를 자가 검사용으로도 허가하라고 요구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신속항원진단키트의 성능 검증 결과, 바이러스 배출량이 적은 검체에서는 민감도가 11%까지 떨어진다며 선별검사용으로 부적절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반인이 비강에서 검체를 채취하는 자가검사키트는 민감도가 더 낮을 것이라고도 했다. 영국 버밍엄대에서 실제 사용해보니 민감도 3%였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방역 정책에는 전문가보다 정치권 의견이 우선으로 반영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써보고 집단감염 사태를 겪어야 조용해질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방역 체계 교란 우려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월 자가검사키트 2개 제품을 조건부로 허가했고 29일부터 판매가 시작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가검사키트를 활용한 ‘서울형 상생방역’을 추진했고 다른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자가검사키트를 활용했다.

그리고 2개월 뒤 코로나19 4차 유행이 시작됐고 확진자의 30% 이상이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자가검사키트가 ‘깜깜이 확산’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정치권에서는 촌극이 벌어졌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자가검사키트 도입을 주장하더니 이제는 서로 ‘실패한 정책’이라며 남 탓을 하고 있다.

본인들이 뚫어 놓은 구멍을 메울 대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 자가검사키트 사용 결과를 입력해 방역 당국이 파악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무시’되고 있다. 이러다 K-방역이 자가검사로 실패한 방역 사례로 꼽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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