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전문가 반대에도 항원검사 실시
“봉쇄 막을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실패
한국 정부, 신속항원검사 활용 꾸준히 확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치가 방역을 방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다. 민감도(sensitivity)가 낮아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신속항원검사를 더 확대하고 있다.

대규모 집단감염으로 논란이 된 서울 동부구치소는 물론 전국 54개 교정시설에도 신속항원검사를 도입한다. 코로나19 확진자 선별검사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신속항원검사로 무증상자를 선별하겠다고도 했다.

법무부 이용구 차관은 지난달 31일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현황과 조치사항을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무증상자에 의한 추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전 직원과 수용자에 대한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해 무증상 감염자로 인한 감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 국내에 출시된 유일한 신속항원진단키트인 에스디바이오센서의 ‘STANDARD Q COVID-19 Ag Test’는 무증상자에 대한 임상평가가 이뤄지지도 않았다. 또한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성능 검증 결과, 신속항원검사의 민감도는 41.5%에 불과했다. 민감도가 낮을수록 위음성(가짜음성)이 나올 확률이 높다. 그러나 위음성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없어 ‘숨은 확진자’를 찾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속항원검사 활용을 추진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신속항원검사는 일주일 뒤 수도권 임시선별검사소에 세 가지 검사법 중 하나로 도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속항원검사 활용을 추진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신속항원검사는 일주일 뒤 수도권 임시선별검사소에 세 가지 검사법 중 하나로 도입됐다.

슬로바키아, 전국민 대상 신속항원검사 실시

"봉쇄도 못 막고 국민 신뢰만 잃었다" 비판

신속항원검사로 전국민 대상 코로나19 전수검사를 실시했다가 더 큰 혼란을 겪은 국가도 있다. 슬로바키아다.

1일(현지시각) 란셋(Lancet Infectious Diseases)에 게재된 리포트(COVID-19 testing in Slovakia)에 따르면 슬로바키아는 지난해 10월 인구 400만명 중 360만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다. 진단검사는 신속항원검사로 진행됐다. 당시 슬로바키아 내 감염병 전문가들은 효용성이 떨어지는 자원낭비일 뿐이라며 반대했지만 정부는 밀어붙였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전국민 대상 신속항원검사를 실시한 이후에도 감염 위험군 등을 대상으로 하는 PCR 검사에서 나온 양성률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에 대해 슬로바키아 코메니우스대(Comenius University in Bratislava) 의과대학 알렉산드라 브라지노바(Alexandra Brazinova) 교수는 “양성률이 여전히 높다는 사실은 대량 신속항원검사가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구 중 코로나19가 진단되지 못하고 숨어 있는 사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칭다오시에서 3일 동안 700만명 이상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지만 당시에는 10명씩 검체를 취합해 PCR로 검사하는 ‘풀링검사’를 시행했다. 항원검사는 민감도가 낮아 위음성이나 위양성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만큼 PCR 검사와 함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게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세계 최초’라고 홍보하며 실시한 전국민 신속항원검사로 인해 국민 신뢰만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슬로바키아과학원(Slovak Academy of Sciences) 면역학자인 Vladimir Leksa는 “전국민 대상 항원검사는 봉쇄(lockdown)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홍보됐지만 오히려 정부 조치에 대한 신뢰를 잃을 위험이 높아졌다. 사람들은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때까지 정부가 말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슬로바키아 상황 한국서 재연?

“전문가 반대에도 확대되는 항원검사”

한국에서도 슬로바키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속항원검사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의사가 지난 5일 신년특집으로 진행한 유뷰트 방송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코파라)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쏟아졌다. 이날 코파라에 출연한 전문가 6명 중 코로나19 선별검사에 신속항원검사를 활용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코로나19 대응 TF 팀장인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슬로바키아에서 신속항원검사로 전국민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는데 2차 유행이 더 크게 왔다”며 “슬로바이카 정부는 신속항원검사를 전국민에게 시행하면 봉쇄(lockdown)를 막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진행했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는 신속항원검사를) 큰 문제가 있었던 동부구치소 등 교정시설에도 적용하겠다고 한다. 신속항원검사로 잡아내는 확진자가 있겠지만 놓치는 확진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감염이 더 확산될 수 있다”며 “이런 식의 방역 정책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정치가 방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신속항원검사도 다르지 않다. 전문가단체와 질병관리청은 그 위험성을 알기에 조심해서 써야 한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정치권에서 계속 들고 나온다”고 비판했다.

강양구 tbs 과학전문기자는 “진단검사의학회 등 전문가들이 신속항원검사를 (코로나19 선별검사에) 도입해서는 안되고 도입하면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도 정책이 바뀌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며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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