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관리 전문가 좌담회] 의료관련감염 대책 진단①
1차 대책에서 빠졌던 중소·요양병원 코로나 직격탄
2차 대책 나왔지만 “코로나라는 큰 혹”에 현장 ‘한숨’
정부가 감염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마다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다. 2015년 메르스(MERS) 유행과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C형간염 집단 발생,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2018년 프로포폴 관련 패혈증 집단발생,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발생.
특히 의사와 간호사가 구속까지 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은 의료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소아청소년과 전공 기피 현상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 4명과 간호사 3명은 모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감염관리에도 영향을 미쳐 처음으로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이 수립됐다. 정부는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 만인 지난 2018년 6월 제1차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올해 4월 제2차 종합대책이 나왔다. 그 사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상황도 겪었다.
그렇다면 의료 현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청년의사는 창간 31주년을 맞아 감염관리 전문가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의료관련감염관리'를 주제로 현 상황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신명진 분당서울대병원 감염관리팀장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감염관리실장(진단검사의학과)
(가나다 순)
질병관리청은 지난 4월 4개 추진전략 12개 중점과제로 구성된 ‘제2차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2023~2027)’을 발표했다. 80병상 이상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에 대한 감염관리를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의원급에 대한 감시체계 도입도 검토한다. 의료인 중심이던 감염관리 교육은 요양시설 종사자, 간병인, 간호조무사 등 감염관리 지원 인력으로 확대한다. 다제내성균 중 CRE(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균종) 대응체계도 수립한다.
감염관리 전문가들은 2차 종합대책이 수립된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대책 마련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3년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2018년 수립한 제1차 종합대책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2차 종합대책이 마련됐지만 한계는 있다. 무엇보다 의료관련감염 관리를 꾸준히 이어갈 동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선거철만 되면 바뀌는 정책 방향으로 인해 먼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5년짜리 대책’ 밖에 수립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됐지만 의료관련감염 관리에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해 거버넌스 문제도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의료관련감염 관리 3년 공백
사회자: 제1차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이 나온 지 5년 만에 예정대로 2차 종합대책이 나왔다. 1차 종합대책으로 의료 현장에 변화는 있었나.
엄중식: 메르스에 이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등 주사제 관련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면서 1차 종합대책이 마련됐다. 1차 종합대책은 허허벌판에 땅을 파고 토대를 조금 올린 것이라면 2차 종합대책에서는 기둥을 제대로 세우고 공간을 확장하면서 집을 넓혀 나가야 한다.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1차 종합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2차 종합대책이 수립돼야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백이 생겼다.
이재갑: 우리나라는 이벤트 중심 국가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하고 나서 국가 지정 격리병상 개념이 도입됐다. 그리고 2015년 메르스 사태로 ‘신종감염병 대응을 위한 국가방역체계 개편 방안’이 마련됐다. 의료관련감염 분야도 메르스 사태로 인해 감염예방관리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강화됐다. 특히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정말 열심히 했고 그렇게 1차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 종합대책이 나왔다. 이렇게 마련된 감염관리체계로 코로나19 팬데믹을 버틸 수 있었다.
이혁민: 1차 종합대책과 그 이전에 만들어진 대책으로 상급종합병원은 어느 정도 감염관리 시스템이 구축돼서 코로나19 대응이 원활했던 측면이 있다. 그래도 문제는 있다. 감염관리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위기가 발생하니 모든 자원이 코로나19 대응에 집중돼 기존 감염병 대응에 구멍이 생겼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항생제 내성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위기가 발생하면 시스템이 갖춰진 상급종합병원도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원 자체가 부족했다. 또 1차 종합대책이 상급종합병원 위주여서 중소병원과 요양병원까지 감염관리 체계를 갖추기는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노출되니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의 피해가 컸다.
신명진: 코로나19 팬데믹 3년이 지나고 나서 감염관리 실무자로서 오히려 위기감을 더 크게 느낀다. 감염관리라는 게 코로나19처럼 큰 위기에 대비하는 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 평소 의료기관의 감염관리 질을 컨트롤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그 기능이 대부분 마비됐거나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게 됐다. 코로나19 환자도 줄었으니 감염관리실도 할 일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다. 기존에 감염관리실에서 했던, 그 많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힘든 감염관리 영역에 ‘코로나’라는 혹 달렸다
사회자: 그렇다면 2차 종합대책을 통해 보완하고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엄중식: 2차 종합대책에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에 대한 감염관리 강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책은 질병청 영역을 벗어난다. 교육이나 지침 전달 등은 질병청이 할 수 있지만 중소병원이나 요양병원이 움직이려면 결국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질병청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의 지원이 중요하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앙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자체가 의료관련감염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2차 종합대책이 나온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이혁민: 그동안 감염관리는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만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감염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의료와 관련된 모든 분야가 들어와야 한다. 이제는 감염관리를 국가 전체 사업으로 생각해야 한다. 감염관리라는 게 더는 특정 집단, 특정 부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지해야 한다.
이재갑: 감염관리는 힘든 영역인데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큰 혹을 하나 더 달았다. 호흡기 감염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1~2인실 사용해야 하는 환자가 늘었다. 1~2인실을 늘리고 중환자실도 1인실 구조로 바꿔야 하는 현실이 다가왔다. 중장기 계획에 이 부분을 넣어 방향을 정하자고 했지만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수립하지 못한 채 5개년 계획으로 끝났다. 우리나라는 중장기 계획이라는 게 없다. 5개년 계획을 세워도 정권이 바뀌거나 선거를 치르고 나면 방향이 바뀌고 예산이 날아간다.
신명진: 2차 종합대책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우여곡절 끝에 2차 종합대책이 수립됐고 시행돼야 한다. 그런데 거버넌스가 정리되지 않아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
2차 종합대책 이행되려면 거버넌스 정리 필요
사회자: 거버넌스 문제는 매번 지적된다. 2차 종합대책에도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를 질병청으로 일원화하도록 의료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기지 않았나(현재는 예방관리 권한은 질병청에, 이행 권한은 복지부에 있다).
이재갑: 의료관련감염은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감염관리정책은 질병청으로 넘어 갔지만 의료기관 정책은 복지부에 남아 있다. 업무가 분산되니 원활한 조율이 어렵다. 감염관리의 경우 의료기관 정책 기능까지 넘기지 않으면 질병청이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하지만 의료기관정책에서 수가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으니 복지부에서 질병청으로 넘길 수도 없다. 거버넌스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혁민: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행 더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거버넌스 정리가 필요하지만 쉽지 않다.
엄중식: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기능들이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처럼 힘 있는 기관도 의료기관 시설이나 건축 관련 기준을 바꿀 때는 연방 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돼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획은 질병청이 짜더라도 국가사업으로 끌고 가려면 상위 기관이 나서야 한다. 여러 부처가 관여해야 하는 대책은 국무총리실이 끌고 가는 게 맞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도 설치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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