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좌담회② 주사제 분주 삭감 논란

2017년 12월 16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 입원해 있던 신생아 4명이 차례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몇 시간 전 미리 분주해 놓은 지질영양제가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됐고, 이 주사제를 맞은 신생아들이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은 컸다. 이대목동병원을 넘어 의료계를 향해 비난 여론이 쏟아졌고 당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의사 2명과 수간호사 1명이 구속되고 의사 2명과 간호사 2명은 불구속기소 됐다(조수진 교수는 구속적부심사를 거쳐 지난 12일 보증금 1억원을 내고 석방됐다).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진 구속은 이례적인 일이어서 논쟁의 초점이 의료진 구속으로 옮겨갔다. 의료계에서는 ‘중환자 치료 근조’라고 적힌 검은색 리본 달기 운동이 전개될 정도로 이번 사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에 청년의사는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와 공동으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을 진단하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자 좌담회를 진행했다.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김홍빈 사업이사(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은병욱 사업이사(을지병원 소아청소년과)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이재갑 홍보이사(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이혁민 정책이사(강남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홍기호 총무이사(서울의료원 진단검사의학과)
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 김성란 회장(고려대구로병원 감염관리실)
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 신명진 총무이사(분당서울대병원 감염관리실)

검찰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인 3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건강보험 급여 기준으로 인해 생겨난 주사제 분주 관행을 문제로 지적했다. 환자 1명당 일주일에 2병으로 제한됐던 급여 기준이 1994년 4월 풀렸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의료인은 많지 않았다. 이대목동병원 박은애·조수진 교수도 주사제 청구 제한 규제가 풀린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관련 기사: 검찰이 청구한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구속영장 봤더니…).

오히려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일선 현장에서 주사제 분주가 급격히 줄었다. 대한신생아학회가 전국 77개 신생아중환자실을 조사한 결과, 이대목동병원 사건 전 44.2%였던 지질주사제 ‘스모프리피드’ 분주(1병을 환아 2명 이상에게 사용)는 사건 이후 3.9%로 급감했다.

그러나 주사제 분주 논란을 지켜보는 의료인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삭감이 두려워 ‘심평의학’에 맞춰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한 자괴감과 이런 현실을 몰랐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정부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지질영양제 1병을 분주해 2~3명에게 나눠 쓰고 청구는 1병만 했다. 1병을 환자 3명에게 나눠 썼다면 1명에 대해서만 급여를 청구하고 나머지는 공짜로 투여하는 방식으로 삭감을 피해왔다는 설명이다. 이들이 이렇게 해 왔던 이유는 급여 기준이 풀린 1994년 5월 이후에도 1인 1병을 청구하면 삭감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주사제 분주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스모프리피드는 100ml가 가장 적은 용량이다. 하지만 초저체중아의 경우 하루 2.5ml만 필요하다.

청년의사와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을 진단하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좌담회를 가졌다.

박재영: 이대목동병원 사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가 주사제 분주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1월 15일 “스모프리피드의 경우 일부 용량 사용 및 잔여량 폐기 후 1병 전체를 청구해도 삭감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2017년 1월부터 11월까지 약제 심사 결과, 스모프리피드 1병에서 사용한 양만큼만 인정하고 나머지를 삭감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성란: 심평원은 주사제 분주했을 때 삭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다수 병원들은 삭감을 당했고 그래서 분주를 관행적으로 해오기도 했다. 안전주사 실무를 쓰면서 자료를 조사하다보니 병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분주 관련이었다. 심평원 삭감 대응 방법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심평원은 삭감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다수 병원은 삭감을 당했다.

은병욱: 100ml 중 30ml만 쓰고 70ml를 버렸으며 폐기 사유를 제출해야만 100ml 값을 다 준다.

이재갑: 문제는 행정해석을 통해 급여기준을 바꿨다면 공지를 해줘야 하는데 물어봐야 답을 해주는 정도다. 공지한 적이 없다. 또한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는 의료진이 하지 않는다. 행정파트(보험심사)에서 하는데 의료진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홍기호: 심평원은 ‘우리가 삭감하지 않는다는 게 객관적으로는 거짓말이 아니지 않느냐’는 입장인 셈이다.

은병욱: 심평원에서 묵인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면 한병 값을 다 제대로 받겠다고 청구하기 시작하면 주사제 청구액이 급증한다. 심평원 입장에서는 의료인이 적당히 약을 쪼개 쓰고 적게 청구해주면 건강보험 재정 확보에도 좋다.

바른의료연구소가 지난 9일 공개한 복지부 행정해석(급여 65720-804호, 1994년 10월 6일)은 ‘주사제는 실 주사량에 따라 약가를 산정함이 원칙이나 1바이알 중 부분량을 한 사람에게 주사하고 나머지 양을 보관상 문제 등으로 부득이하게 폐기하면 앰플 제제와 마찬가지로 1바이알 약가를 산정할 수 있다. 따라서 바이알 주사약제는 실사용량에 따라 약가를 산정해야 하며 일부 용량 사용하고 일률적으로 폐기처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1바이알의 약가를 산정해야 할 경우 부득이한 폐기 사유를 해당 요양기관에 소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바른의료연구소는 “주사 후 폐기된 부분까지 약가를 산정할 수 있으나 주사제를 여러 환자들에게 분주해도 실제 투여량을 인정해줄테니 일률적으로 폐기처분하지 말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폐기하라는 내용”이라며 “1인 1병 원칙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분주를 권장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김홍빈 사업이사, 은병욱 사업이사, 이재갑 홍보이사와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이혁민 정책이사, 홍기호 총무이사, 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 김성란 회장, 신명진 총무이사.

박재영: 의료인 입장에서 이번 분주 논란을 보면 심평원이 얄미울 수도 있겠다.

김홍빈: 심평원이 최근 1년 사이 주사제 분주 관련 삭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맞을 거다. 왜냐면 병원들이 알아서 삭감되지 않도록 청구했기 때문이다. 심평원이 이대목동병원 사건 전후, 비슷한 함량의 비슷한 약이 급여비로 얼마나 청구됐는지 데이터를 공개하면 된다. 아마 환자군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급여 청구액이 몇 배나 상승할 것이다.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주사제 청구액과 사용량이 늘었다면 그 이유가 뭔지 심평원이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신명진: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병원은 병원이 손실을 부담하면서도 분주를 억제하는 정책을 쓰지만 실제로는 분주하지 않고 쓸 만한 약이 없다. 아이한테 쓸 다양한 용량의 약이 없다. 또 아이의 상태를 최선으로 맞춰주기 위해 의사가 처방을 내면 간호부나 약제부 입장에서는 그걸 다 맞출 수 있는 약이 없다. 돈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꼭 얘기했으면 한다.

은병욱: 신생아마다 전해질이나 포도당 농도를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용량 등이 다양한 약이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약을 일부 분주하고 농도를 다양하게 조제한다. 그런 작업을 약제실에서 무균적인 환경을 만들어서 하기 어려운 게 우리 의료 현실이다. 그래서 NICU에서 급하게 조제하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분주가 일상화된 측면이 있다.

이재갑: 스모프리피드 같은 주사제의 경우 100ml 등 작은 용량 처방이 늘 것이다.

김홍빈: 정부가 제약사에 작은 용량, 소포장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고 해도 제약사가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제약사 생산라인은 일정 용량에 맞춰져 있는데 기존보다 작은 용량의 제품을 만들려면 생산 공정을 다 바꿔야 한다. 제약사가 그렇게 할 만큼 경제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제약사를 운영하지 않는 한 힘들다고 생각한다.

홍기호: 풍선효과가 우려된다. 감염관리는 주사제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소모품을 규정에 맞게 써가면서 해야 한다. 그런데 이대목동병원 사건으로 주사제 오염은 줄겠지만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돼 있으니 다른 소모품에서 똑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김홍빈: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터진 후 약제부에서 항암제 분주를 걱정하더라. 항암제 분주를 못하면 쓰고 남은 약을 다 버려야 하는데 그로 인한 환경오염은 어떻게 하나. 파이는 정해져 있는데 주사제에 쓰는 비용이 늘면 그만큼 인력이나 시설에 투자할 재정이 감소할 텐데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조제하느냐가 근본적인 문제다. 기본적으로 약사 업무지만 일부는 간호사가 담당하기도 한다. 병원 내 충분한 약사 인력과 공간이 있다면 해결될 문제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비용만 늘어나고 사고 위험은 줄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지엽적인 부분만 얘기한다.

신생아학회 조사 결과, 주사제 분주를 병원 약사 등 약제팀이 담당한다는 응답은 이대목동병원 사건 전후 13.3%에서 29.6%로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10곳 중 7곳은 신생아중환자실 내 간호팀이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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