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치사상 형사 처벌에 민사 손해 배상 부담까지
"전공의 신분적 한계" 고려 무죄도 있지만 여파 계속
신생아 뇌성마비로 산부인과 전문의 2명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소된 의료진이 당시 담당 교수와 전공의였다는 점까지 겹친다. 지난 2023년 발생한 대구 10대 중증외상 환자 사망 사건에서 환자를 먼저 대면한 대구파티마병원과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이 형사 처벌 위험에 직면했던 것처럼,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이 겪는 사법 리스크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청년의사는 이번 사건을 비롯해 전공의 근무 중 벌어진 사고로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은 주요 사례를 돌아봤다.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최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7년 전 근무했던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다. 당시 A씨는 산부인과 3년 차 레지던트였다. A씨의 지도교수도 함께 기소됐다. A씨는 관련 민사 소송에서도 지도교수, 병원과 함께 약 6억5,000만원 규모 손해 배상금을 분담하라고 선고받았다.
민사 소송에서 산모 측은 당시 전공의던 A씨가 태아심장박동수 양상을 "면밀하게 감시하지 않았거나 정상이라고 잘못 판단했고, 이를 교수에게 보고하거나 논의하지 않은 과실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열린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는 이같은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전공의가 하는 의료 행위가 "일반적으로 전문의(지도교수)에 대한 보고와 상의, 지시를 거쳐 수행된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랬으리라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25일에는 신생아에게 인슐린을 과다 처방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받은 의사 B씨가 항소심에서 금고형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5부(항소)는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1심) 판결을 깨고 일부 유죄를 인정했다. B씨가 7년 전 한양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전공의로 근무하면서 진료 지침을 어기고 잘못된 처방으로 신생아에게 중증 저혈당으로 인한 상해를 입혔다고 봤다. 관련 민사 소송에서도 병원과 함께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2022년에는 혼자 당직을 서던 부산대병원 이비인후과 전공의가 급성후두개염으로 진단한 응급 환자를 응급실까지 혼자 가도록 했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돼 의료계에 충격을 줬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 C씨에게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1년차 전공의였던 C씨가 "환자 상태가 심각한 것을 인식했고 응급실까지 이동하는 데 5분 이상 걸리므로, 응급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피해자와 동행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련 민사소송에서는 C씨가 근무한 대학병원 책임을 일부 인정해 유족에게 손해 배상하도록 했다.
C씨는 처벌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항소했다. 지난 2023년 4월 부산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이를 받아들여 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1심)을 파기하고 대신 2,000만원 벌금형에 처했다. C씨가 "당시 전공의 1년 차로 해당 과에서 혼자 당직 근무를 하고 있어 대처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
'이대목동병원 사건'처럼 무죄 받아도 여파 계속
전공의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 2020년 7월 울산지방법원은 응급실 내원 환자를 퇴원시켰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D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D씨는 사건 당시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다. 검찰은 D씨가 고열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은 암 환자가 급격한 헤모글로빈 감소 증세를 보이는데도 해열제만 투여하고 다른 병원 전원을 권유해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전공의 신분이던 D씨가 "당직 내과 전문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백혈구 성장 촉진제 투여나 수혈 등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당직 전문의 판단과 달리해 전공의가 독자적으로 입원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검사 항소를 기각했다.
지난 2017년에는 급성 백혈병 소아 환자가 사망해 소아청소년과 교수와 전공의 3명이 한꺼번에 기소됐다. 전공의들은 당시 소청과 3년차·1년차 레지던트와 인턴 신분이었다. 검찰은 이들이 골수검사를 진행하면서 약물을 과다 투여하고 응급 상황 대처에 미흡해 소아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봤다.
법원 판단은 달랐다. 약물 투여나 검사상 조치가 부적절했다고 보기 어렵고, 산소포화도 측정 장치 오류를 이들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지난 2022년 대구지방법원이 전원 무죄를 선고한 데 이어, 지난 2024년 8월 항소심 재판부도 검사 항소를 기각하고 업무상과실치사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다만 관련 민사 소송에서는 전공의들이 경과 관찰을 소홀히 했다고 봐 병원이 유족에게 손해 배상금 약 3억9,0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앞선 사건과 같은 해 12월,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환아 4명이 숨져 의료진 7명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고 담당 교수 등 3명이 구속됐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다. 사건 당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3년차 레지던트 E씨도 "사망한 환아들을 직접 진료한 담당의"면서 "스모프리피드 처방만 하고 준비·투여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지난 2022년 12월 대법원은 유죄를 주장하는 검사 상고를 기각하고 의료진 전원의 무죄를 확정했다. 검찰은 과실이 명백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 발생 후 5년간 항소와 상고가 이어졌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그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저출생·저수가로 위태롭던 소아청소년과를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기 시작하는데 이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대법원 판결 직전 진행한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청과 지원율은 15.9%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전국에서 소청과를 지원한 의사는 단 3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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