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기관 종별·경력 등 의료 현장 현실 반영 목소리
“단순 숫자 기준 벗어나 환자 중증도 등 반영한 배치 기준 必”
간협, 병원급 의료기관 간호사 배치기준 마련 TF 구성

간호사 배치기준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간호 현장에서는 단순한 숫자 기준을 마련하기보다 환자 중증도 등 간호 현실을 면밀히 반영한 배치긱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청년의사). 
간호사 배치기준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간호 현장에서는 단순한 숫자 기준을 마련하기보다 환자 중증도 등 간호 현실을 면밀히 반영한 배치긱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청년의사).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법으로 정하는 간호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변화하는 의료 현장 현실을 법제화 논의 과정에 면밀히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지난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간호사 대 환자수 법제화 필요성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간호 전문가들은 환자 중증도와 의료기관 종별 차이, 간호사 근무 형태 등 현실적인 요소를 고려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발제에 나선 이화여대 간호대 배성희 교수는 병상 감축과 같은 의료자원 재조정이 병행돼야 지속가능한 간호 인력 운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환자의 상태, 간호 업무 복잡성, 의료기관 종별 특성 등을 반영하는 구조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배 교수는 “간호사 배치 기준을 향상시켜 건강한 업무 환경을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은 간호사들이 필요할 텐데 이들을 고용함에 있어 현행 의료 시스템이 적정한지 고려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병상도 고려해야 하며 지역별, 의료기관 종별 차이 등도 (간호사 대 환자 수 법제화 과정에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간호사 배치 수준이 환자 안전과 간호 서비스 질에 직결된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국의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CMS)처럼 인력 투입뿐만 아니라 환자 안전, 감염률, 재입원율 등 결과 중심의 ‘가치 기반 지불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의료기관의 간호 인력 직접 인건비 지출 비율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배 교수는 “간호사 배치 수준이 환자 결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관계를 살펴보면 가치 기반 지불 제도를 확대하는 게 간호사 배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상급종합병원이 7조원 흑자를 갖고 있는데 이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인력 확충 보다는 대부분 토지, 시설, 장비 등에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며 “의료기관이 간호 인력 등 보건의료 인력 인건비 비중을 확대하는 것도 고려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도 “충분한 간호 인력을 확보해 양질의 간호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환자안전도 담보할 수 있다”며 법제화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간호사 대 환자 수 기준을 정하는 데 있어 병상 수가 너무 많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사업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병상 수를 줄이는 정책도 (논의 과정에)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를 줄이는 데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경력 간호사와 신규 간호사 비율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300병상 미만 중소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진경 수간호사는 “(간호 등급) A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 3월 신규 간호사 채용으로 인력 충원에 따른 일시적인 상황에 불과하다”며 “단순히 근무 인원만 많다고 양질의 간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숙련된 경력 간호사가 많아야 간호의 질, 환자 안전, 업무 효율성 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수간호사는 “10년 된 경력 간호사를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숙련된 간호사 대비 신규 간호사 비중이 높아 이직률이 증가하고 있어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단편 일률적인 숫자에 불과한 현재 간호 등급의 간호사 배치 기준은 유동적인 의료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며 “단순 숫자 기준에서 벗어나 의료기관 종별, 환자 특성이나 중증도, 간호사 근무 형태 등을 반영한 간호사 배치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또 의료기관이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법적 의무화가 돼야만 한다”고도 했다.

중소병원의 열악한 현실을 반영해 간호사의 ‘기본 간호업무’를 중심으로 한 최소 기준부터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병원간호사회 한 임원은 “상급종합병원이나 대형병원은 PA 간호사 업무나 의료 공백 상황 등으로 간호사 업무가 확대될 때 별도 조직과 정원을 확보해 대응하고 있다”며 “반면 중소병원은 업무만 늘어나고 인력은 충원되지 않아 큰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논의는 간호사 본연의 기본 업무에 대해 적정 환자 수를 정하려는 것”이라며 “(PA 간호사) 업무가 늘었기 때문에 간호사 대 환자 수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면 오히려 제도 설계에 혼란이 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PA 간호사 업무에 대해서는 간호사 대 환자 수를 별도 논의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기존 간호 업무에 필요한 최소 인력조차 제대로 배치되지 않은 중소병원 현실을 반영해 기본 간호업무를 기준으로 한 최소 기준을 법제화하는 게 우선”이라고도 했다.

한편,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를 위한 ‘병원급 의료기관 간호사 배치기준 마련 TF’를 신설했다. 이 TF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간호인력정책, 보건의료정책 등 학계에서 5명, 상급종합병원과 중소병원 현장 간호사 2명 등 8명으로 구성됐다.

간협은 TF 운영을 통해 ▲간호사 배치기준 상향화 ▲명료화된 구체적인 배치기준 ▲정보공개 의무화 규정 등을 수립해 간호법 제29조 개정을 위한 근거를 도출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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