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식 의평원장 “500병상 이상이어야 하는데 유지되겠나”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 “의대 신설 목표가 무엇인가”
정부와 정치권이 손잡고 추진하는 ‘의대 신설’에 의학계는 ‘서남의대’를 떠올린다. “업적 쌓기용”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대 증원 정책처럼 핵심인 의학교육 질이 빠진 채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병원 문제가 대표적이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허정식 원장(제주의대 비뇨의학교실)은 지난 7일 저녁 온라인으로 진행된 의료윤리연구회 모임에서 의대 신설을 추진하는 정부와 정치권이 교육병원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까지 통합해 신설 의대를 유치하겠다는 전남권을 예로 들었다. 목포대와 순천대는 신설 의대 유치를 위해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의대 설립 인가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의평원에 예비인증평가를 신청하기도 했다. 의평원은 설립 인가를 받지 않았기에 예비인증평가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허 원장은 “교육병원을 어느 지역에 설립할 계획인지 모르겠지만 임상실습교육을 하려면 그 규모가 500병상 이상은 돼야 한다”며 “500병상 이상인 대학병원이 운영되려면 그 지역 인구도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주도 인구가 66만명 정도인데 제주대병원은 계속 적자를 보고 있다”며 목포와 순천 지역에 500병상 규모로 교육병원을 설립한다고 해도 운영하기 힘든 여건이라고 했다. 3월 기준 목포 인구는 20만명, 순천은 27만명이다.
허 원장은 “학생들이 이 병원, 저 병원 떠돌아다니면서 임상실습교육을 받아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500병상 이상인 교육병원을 두고 1·2차 의료기관, 지방의료원 간 네트워크를 통해 그 지역에서 다양한 훈련을 해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도 이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제주의대도 처음 설립 당시 강의실이 부족할 정도로 교육 환경이 열악했으며 부속병원 규모도 260병상 정도여서 임상실습을 위해 학생들을 다른 병원에 보내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대가 있는 지역에 500병상을 유지할 수 있는 교육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 원장은 “의대가 생긴다고 그 지역 의료가 발전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을 위해서는 상급종합병원 역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며 “의대 신설은 정치인들이 업적을 쌓기 위한 것 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국립중앙의료원 등을 교육병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떠돌이처럼 돌아다녀야 한다”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허 원장은 “의대가 있는 지역에 설립된 교육병원이 주축이 되고 1차나 2차 의료기관에서 경험을 쌓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여건이 되지 않거나 교수가 없어서 옮겨 다니며 임상실습을 하는 것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평원장을 지낸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의대)은 “학생들이 파견 형식으로 가면 다른 기관에서 소속된 학생처럼 잘 지도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지역 의료를 익혀야 한다면서 임상실습은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안 원장은 “전남권에 의대를 신설해서 이루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두 대학 간 거버넌스 구조도 문제"라며 "지역완결형 의료를 얘기하는데 그 지역 병원에서 진료받는 환자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소용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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