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협 김동석 회장 “필수의료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
산부인과의사회 “배관 터져서 물 새는데 물을 더 붓는다고?”
응급의학의사회 “응급환자 무제한 수용법까지” 한숨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가운데)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서울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기자단감회에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책과 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청년의사).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가운데)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서울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기자단감회에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책과 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청년의사).

“수술에 집중하면서 환자를 살릴 생각만 하는 ‘낭만닥터 김사부’는 행복한 의사다.” 분만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산부인과)은 SBS 메디컬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 주인공인 의사 ‘부용주’(한석규 분)가 부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리고 낭만닥터 김사부를 꿈꾸기 힘든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지적했다.

김 회장은 30일 대개협 제31차 추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가 열린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서울 컨벤션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리나라 의료 환경은 ‘낭만닥터 김사부’들을 수술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무엇이 필수의료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중요하다는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다”며 응급실 병상 부족으로 응급 환자들이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폐과를 선언할 정도로 힘들고 대형병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응급환자가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대로 둔다면 수년 내 큰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사명감만으로는 필수의료를 할 수 없다. 치료 결과가 좋지 않다고 수억원을 배상하려는 판결도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필수의료를 하겠느냐. 고위험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은 운영이 힘들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소신 진료를 하도록 ‘의료사고처리특례법’(가칭)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의사를 죽이는 법만 만들어내고 있다”며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개했다.

김 회장은 “의사가 사회의 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아니길 바란다. 의사가 힘들면 국민 건강과 생명도 위해를 받는 게 당연하다.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이지 돈벌이에 혈안이 돼서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가 갑자기 몰락한 데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결국 무죄가 나왔지만 당시 유방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던 소청과 교수가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고 했다.

“배관 터져 물 새는데 물을 더 붓는다고 해결되나”

대개협 부회장인 김재유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발의한 ‘필수의료육성법’(제정안)만으로 필수의료를 살리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필수의료육성법은 필수의료 분야에서 환자 사상이 발생해도 그 행위가 불가피했고 설명의무 등을 성실히 이행했으며 의료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김재유 회장은 “(필수의료육성법은) 의사를 보호하는 법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의로 진료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고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막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필요하다”며 “현재 배출된 의사가 총 14만명인데 필수의료 분야 인력은 줄고 있다. 국민이나 국회에서는 의사가 부족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상수도 배관이 터져서 물이 새는데 물을 더 붓는다고 문제가 없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의대 정원을 증원해도 5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나빠져 있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청과 폐과를 선언했던 대한소아청소년과 임현택 회장은 “오는 6월 11일 ‘소청과 탈출 노키드과 학술대회’를 개최한다”며 “하루 만에 소청과 회원 200명이 등록했다. 800명 정도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한다. 반응이 뜨겁다. 그만큼 소청과 진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많은 것”이라고 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개원의협의회 기자간담회에서 응급환자 수용 거부 고지 제도 등으로 응급의료현장을 떠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청년의사).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개원의협의회 기자간담회에서 응급환자 수용 거부 고지 제도 등으로 응급의료현장을 떠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청년의사).

응급의학과 상황도 좋지 않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오는 6월 시행되는 ‘응급환자 수용 거부 고지 제도’를 “응급환자 무제한 수용법”이라고 부르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응급의료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수용요청을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도록 개정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은 오는 6월부터 시행된다.

이 회장은 “대구에서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한 일이 발생한 것은 최종 치료를 담당할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며 “그 해결책으로 119가 병원에 환자를 내려놓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고 그 책임질 사람이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결국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면 처벌받고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으로 의사면허가 정지될 것이다. 이런 일들이 겹치다 보니 많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전공의가 그만두겠다며 응급의료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며 최근에만 응급의학과 전문의 30명 정도가 응급실을 떠나 의원을 개원했다고 했다.

그는 “환자가 안전하려면 인프라가 충분해야 한다. 의사들이 좋은 컨디션에서 좋은 의료를 제공할 때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며 “의사들을 쥐어짜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에서 한 진단과 최종 진단이 일치할 확률은 높지 않다. 응급실에 온 환자를 100%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김사부는 시즌3까지 왔으니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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