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의원 원가보전율 53%라는 조사결과도
“경영난 심각…지자체 순회진료로 외래도 줄어”

산부인과 의사들의 위기감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폐과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청년의사).
산부인과 의사들의 위기감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폐과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청년의사).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지원 대책까지 내놓았지만 분만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지원 대책만으로는 분만병원도.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 전문의도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폐과를 선언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폐과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원가보다 낮게 책정된 수가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연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진행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원가계산시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를 위한 방안 연구’(2016년)에 따르면 전체 의료기관 원가 보전율은 69.6%다. 종별 추정 원가보전율은 상급종합병원 84.2%, 종합병원 75.2%, 병원 66.6%, 의원 62.2%다.

진료영역별 원가보전율은 진찰료 50.5%, 입원료 46.4%였다. 특히 분만실은 원가보전율이 21.8% 밖에 안됐으며 신생아실은 29.4%였다. 건강보험 진료만으로는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산부인과의원 원가보전율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산부인과의원 원가보전율은 지난 2018년 64.5%였지만 2018년 54.9%, 2019년 54.9%, 2020년 53.7%, 2021년 52.9%로 떨어졌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15차 춘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원가보전율 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산부인과의원의 경영난이 심각하다”고 했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명예회장인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코로나19에 걸린 임신부가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전전했을 때 정부가 분만격리관리료를 신설해 수가를 300% 가산해 주자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며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결국 수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나마 정부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통해 분만 분야에 지역수가와 안정정책수가, 감염병 정책수가를 도입해 분만 수가를 현재보다 최대 300%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분만 과정에 필요한 일부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만 인상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게 의사회의 지적이다.

중증도에 따른 가산이 아닌 분만 수가만 인상하면 대학병원 인력이 개원가로 빠져나가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우려도 있다(관련 기사: 필수의료대책으로 인력 유출 걱정하는 대학병원…“공허한 메아리”).

원가보다 낮게 책정된 수가만 산부인과를 어렵게 하는 건 아니다. 지자체마다 쏟아내는 선심성 정책도 문제다. 난임 시술을 하고도 지자체가 지원금을 연체해 관련 비용을 받지 못하는 병원도 많다(관련 기사: 난임 시술 지원금 연체하는 지자체…10억 이상 못받은 병원도).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김금석 부회장(다정산부인과의원)은 “전국적으로 산모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산모를 대상으로 한 순회 진료도 한다”며 “이는 분만 취약지 인근 산부인과 경영을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분만으로만 병원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래 환자마저 빼앗아 가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동두천에서 산부인과의원을 운영 중인 박혜성 수석부회장은 2년 전 분만 진료를 접었다. 지역 내 임신부가 적은 게 문제였다. 하지만 투자는 해야 했다. 산후조리원이 없는 병원에서 분만을 하려는 임신부는 없었다. 박 부회장은 동두천시에 공공산후조리원 개설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부회장은 “시에서 직접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면 의료사고 부담도 있고 공무원들이 원치 않는다며 성사되지 못했다”며 “분만을 해야 하는 임신부들이 스스로 인근 양주시로 가더라. 배운 게 분만인데 현장에서는 이를 활용할 수 없었다. 결국 분만을 접었다”고 했다.

그는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전공하고 싶어도 혹시나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부담이 크다. 그래서 소신 진료가 어렵다”며 “의사가 최선을 다해서 진료를 해도 환자는 사망할 수 있고 사고는 발생할 수 있지만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고 씁쓸해 했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유 회장은 “의료에 100%는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암 발생 원인도 다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며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배상금만 억단위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누가 분만을 담당하고 산부인과를 전공하려고 하겠느냐”고 했다.

김 회장은 “폐과를 선언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폐과될 것”이라며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보상 재원을 모두 국가가 부담하고 일명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