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의사회 “5년간 소청과 의원 663곳 폐업"
소청과 개원의 "소청과 간판 달고 만성질환자 진료한다"
소아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 문이 열리기도 전에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작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소아환자만 봐서는 먹고 살기 힘든 의료현실 때문에 폐과까지 고민하고 있다.
소청과 의사들은 부모들이 아이 진료를 위해 오픈런을 하는 상황 자체가 소아의료 현실을 대변한다고 했다. 그만큼 소청과 병·의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29일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4층 대회의실에서 ‘소청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고 열악한 소아환자 진료환경으로 인해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소청과 개원의 30여명도 함께 했다.
소청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2019년 폐과를 선언하고) 4년이 흘렀다. 잘못하면 소아의료 인프라가 다 무너지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지금은 소청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다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세부전문과목을 전공하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대학교수들도 그만두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소청과라는 학문이 소멸될 거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지난 2019년 한 차례 소청과 폐과 선언을 한 바 있다.
임 회장은 “소청과 의원이 줄어들면서 일부 병원으로 오픈런 등으로 환자 쏠림이 발생한다고 해서 그 의원들이 돈을 벌고 있다고 볼 순 없다”며 “진료비는 한 없이 낮고 응급이나 중증환자가 오더라도 보낼 수 있는 상급병원도 없다. 소아의료전달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임 회장은 “지금 상태로는 더 이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 올해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마지막으로 편입된 로타바이러스 백신은 소청과에서 받던 비용의 40%만 받게 강제화 됐고 소청과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이라며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8% 줄었다. 지난 5년간 폐업한 소청과 의원도 662곳”이라고도 했다.
임 회장은 “소청과 의사들은 더 이상 소청과에 희망이 없다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면서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오늘자로 대한민국에 소청과라는 전문과목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 소청과 의사들은 더 이상 아이들 건강을 돌봐주는 일을 하지 못하게 돼 미안하다는 작별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소청과 의사들의 상당수가 미용이나 통증클리닉 등 방안 모색에 나선 상황이라고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승희 소청과 전문의도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의 30% 정도가 성인 만성질환자라고 했다. 정 전문의는 27년째 소아진료를 보고 있다.
정 전문의는 “소아과 만성질환이나 피부미용, 통증클리닉 개원을 위한 술기 등을 배우기 위해 관련 학회를 많이 간다. 소청과 의사들 사이에서 폐과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고 지금은 다른 과로 간다. 안산만 해도 소청과의원 원장 3~4명이 (일반)의원으로 바꿨다”며 “나도 간판만 안 바꿨을 뿐이지 만성질환자를 진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문의는 “잠도 못자며 수련 받았지만 현실에서는 부모들을 달래가며 치료해야 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동료들 중 90%가 지금보다 (현실적으로) 삶이 좋아진다면 소청과 의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며 “의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자긍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고 했다.
소청과의사회는 통증클리닉이나 피부미용 등 소아진료가 아닌 다른 분야 진료를 하기 위해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교육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임 회장은 “소청과 전문의들이 ‘노키즈존’에 해당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있도록 철저히 트레이닝 하는 교육센터를 만들 것”이라며 “(설립까지) 1년 정도 걸릴 것 같다. 다90% 회원들이 심정적으로 적극 동조하고 있어 아무리 적어도 반 이상은 따라올 것 같다”고 말했다.
소청과의사회는 회원 5,000여명 중 활동회원은 3,500여명이며 이들 중 90%인 3,100여명이 이같은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소청과의사회는 정부가 내놓은 ▲중증소아의료체계확충(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소아암 진료체계 구축) ▲소아진료 사각지대 해소(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확충, 달빛어린이병원,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 추진, 심층상담교육 시범사업) ▲적정보상 등을 통한 의료인력 확보(소아 입원진료 가산 확대, 의료인력 운영 혁신, 적정 의료인력 양성 지원) 등이 ‘탁상공론’이라고 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소아 관련 정책을 전담할 수 있는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미국은 지난 2012년 어린이 관련 업무만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었고, 일본은 올해 상반기 어린이청을 만든다고 한다”며 “우리나라도 개선 의지가 있다면 소아 문제만 해결할 수 있는 전담기구를 시급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방정부와 협업해 각 지역상황마다 다른 대책이 잘 작동할 수 있게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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