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지난 7일 오후 회진 준비를 하던 중 메시지를 받았다. ‘흉부외과의사 연봉이 의사 중 최고, 평균 4억7,000만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의 첫머리부터 이해 안되는 문구였다. 장난하나? 흉부외과 의사가 번아웃 직전이고 기피과인데다 박봉에 시달리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데?

기사를 찬찬히 보았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만든 기사였다. 흉부외과 의사가 전체 의사 중에 가장 많은 돈을 벌고 그 금액이 4억7,000만원이라고 기사는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오후 회진을 하며 같이 일하는 동료 교수에게 “고등학교 때 성적이 반 평균은 넘었는데 우리는 전국 평균도 되지 않네”라는 씁쓸한 농담을 나눴다.

개원의를 기준으로 한 분석일까? 그럴리가 없었다. 흉부외과 수련 후 개업했지만 일반의로 어렵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흉부외과학회에 연락해 보았다. 무거운 항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했다. 복지부에 연락을 했다. 담당자는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발표에 전체 전문과별 개원의 수입 관련 자료가 있었는데, 흉부외과 명의로 개원한 의사의 평균 수입이 흉부외과의사의 전체의 수입으로 언론에 퍼져 나간 것 같다고 했다. 복지부는 빠른 대처를 위해 해명 자료를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엎질러진 물’이라는 식상한 속담처럼 정정자료가 나왔지만 기사들은 고쳐지지 않았다.

5억원 부자 의사에 대한 자극적 기사여서 그런지 기사는 인기 만점이었다. 흉부외과 위기에 대해 처절하게 이야기해도 써 주지 않았던 경제지들도 받아쓰기 시작했다.

“대기업 월급의 3배, 흉부외과는 5억 육박.” 7일 밤 사이 기사는 박제되고 여기저기 퍼져 나갔다. 기사는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도 오르기 시작했다. '흉부외과 의사의 위기', '우리나라 의료의 위기', '필수의료의 위기'라고 아무리 외쳐도 보이지 않던 댓글이 불과 서너 시간 만에 600~700개를 넘어섰다.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쌓여갔다.

‘흉부외과 의사는 5억원을 받아도 된다 아니다’의 공방, ‘엄살을 부리더니 받을 것은 다 받았다’는 비웃음, ‘의사를 늘리라’는 공허한 이야기까지. 하루 밤 사이 우리는 5억원을 받으며 엄살부리는 의사가 됐다.

늦은 시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어렵게 기자들과 통화했다. 오보에 대해 기사 정정을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복지부 잘못인데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라는 말도 있었다. 늦은 새벽까지 기사가 올라오면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흉부외과 의사 그런 삶을 살지 못합니다. 사실을 보도해 주세요.” “데스크와 상의 할께요.” 새벽 3시까지 메일을 보내다 잠이 들었다. 8일 아침에 ‘평균 5억 최고 직업 의사’에 대한 기사는 늘어나 있었다.

담당 연구자와 연락해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연구에 활용된 흉부외과 과목 표시 개원의 수는 52명으로, 흉부외과학회가 파악한 흉부외과전문의 개원의 수 259명의 20%였다.

개원한 흉부외과 전문의 중 약 20%만이 ‘흉부외과’라는 간판을 걸고 진료하고 나머지 80%는 일반의로 진료하고 있는 현실이 확인된 것이다. 개원을 선택한 대부분의 흉부외과 전문의들이 흉부외과 명칭을 버린다는 풍문이 사실임이 증명된 셈이다. 참담했다.

연구자는 기자들에게 ‘흉부외과 개원의 수익 분석은 타 과에 비해 숫자가 너무 적고 적절한 데이터가 아니어서 인용에 주의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적절한 선에서 입장표명을 해달라고 전달했다. 복지부에도 1,200명이 넘는 흉부외과 전문의 중 52명에 불과한 성공한 개원의의 데이터가 흉부외과 전문의 전체 평균이라고 알려진 것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8일 오전이 됐지만 복지부 담당자도, 연구자도, 기자들도 이제 사안에서 멀리 물러서 있는 것 같았고 흉부외과 의사들만 수습에 나서고 있었다. 번 아웃된 상태에서, 소송의 끝자락에서, 환자의 마지막 삶을 지키려는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밤새 관계자들에게 “흉부외과 어려운데 왜 이런 기사가 나올까요?”라고 무한반복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나 기사를 읽고 감정을 삭히며 수술실로 들어가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새벽녁 비를 맞고 꾸루룩 거리는 산비둘기 신세가 된 것 같았다.

올해 초, 이제는 흉부외과의 어려움을 알리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흉부외과학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복지부 등을 찾았다. 자료를 만들어 보내고 우리의 위기가 의료의 위기임을 알렸다. 흉부외과학회 이사장이 맨발로 뛰어 다녔다. 이제 어쩌면 세상이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 들어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는 5억을 받으면서 투덜거리는 의사가 되고 말았다. 아무에게도 책임없다는 오보 시리즈에 지금 이 시간에도 흉부외과 의사 평균 5억원 연봉설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까?

우리가 환자를 위한 칼은 잘 쓸지 몰라도 세상에 대한 칼은 못쓰고 있는 것일까? 1,200명 중 특수한 52명을 분석한 기사가 세상을 뒤엎을 때, 여전히 환자 곁을 지켜야 하는 우리의 이름은 흉부외과 의사다.

깊이 흉부외과 현실을 들여다 보면 좋겠다. 쉽게 재단해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가 무너진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무너 질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우리들은 여러분의 심장이 아프거나 폐암에 걸려 쓰러질 때 유일하게 지켜줄 몇 남지 않은 흉부외과 의사들이니까.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