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익 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장

최근 핫이슈인 성분명 처방 처방 논쟁을 지켜보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처방전에 무엇을 어떻게 적을 것인가를 두고 격렬히 다투면서도, 정작 처방의 대상인 ‘전문의약품’이 법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눈앞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밑바탕이 되는 기본 개념과 분류 체계는 종종 간과된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우리 약사법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어떻게 정의하고 분류하는지, 그 체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실무적 혼란을 줄이고 규제의 명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러한 기초적 검토는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서로를 참조하는 순환적 정의

정용익 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장
정용익 의료기기산업혁신연구회장

약사법 제2조는 일반의약품을 '오용·남용될 우려가 적고 안전성 및 유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정의하고, 전문의약품은 '일반의약품이 아닌 의약품'으로 규정한다. 즉 일반의약품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전문의약품은 나머지로 돌리는 방식이다.

반면 하위규정인 '의약품 분류 기준에 관한 규정'은 전문의약품을 '오남용의 우려가 있는 의약품' 등 열 가지 유형으로 열거하고, 일반의약품을 '전문의약품에 해당하지 않는 의약품'으로 정의한다. 상위법과 하위규정이 정반대의 기준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약사법은 일반의약품 기준으로 전문의약품을 정의하고, 하위규정은 전문의약품 기준으로 일반의약품을 정의한다. 더욱이 양자가 제시하는 기준(오용·남용될 우려가 적은 vs 오남용의 우려가 있는)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반대 방향에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이는 전형적인 순환논리다. A를 알려면 B를 알아야 하고, B를 알려면 다시 A를 알아야 하는 구조다. 이러한 규정으로는 실제로 특정 의약품이 전문의약품에 해당하는지 일반의약품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입법기술상 두 범주를 배제적으로 정의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위법과 하위규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정의함으로써 법체계의 일관성이 무너졌다. 약사법을 우선 적용해야 하는지, 하위규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실무상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는 업계와 소비자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행정해석에 자의성을 부여하는 요인이 된다.

해외 주요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해외 주요국들은 우리와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중 하나만 배제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양자를 모두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미국은 처방의약품을 '의사의 감독 없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없는 의약품'으로, 일반의약품을 '전문가의 감독 없이도 라벨 지침만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각각 정의한다.

EU 역시 '의학적 진단이나 처방 없이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의약품'을 처방의약품으로, 그 외를 별도의 기준으로 일반의약품으로 규정한다. 일본 또한 의료용의약품과 일반용의약품을 각각 독립적으로 정의한다.

이들 국가들는 두 범주를 서로 배제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각각의 실질적 요건을 제시함으로써 순환논리를 피하고, 분류의 명확성을 확보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제도의 배제적 정의 방식은 국제적으로 보아도 예외적인 구조다.

추상적 용어의 범람

또 다른 문제는 규정이 사용하는 용어들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오용·남용될 우려', '안전성 및 유효성', '부작용이 비교적 적은' 등의 표현은 모두 상대적이고 평가적인 개념이다. 심사기준에서 사용되는 '주로 가벼운 의료분야', '일반국민이 스스로 판단', '작용이 완화된 것' 등의 용어 또한 마찬가지다. 동시에 분류기준과 심사기준의 관계도 불명확하다. 양자는 서로 다른 기준인가, 아니면 동일한 기준을 다른 맥락에서 적용하는 것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처방의약품의 요건으로 '심각한 부작용의 가능성', '사용방법의 복잡성', '의사의 지속적 관찰 필요성'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EU도 '비경구 투여'나 '중대한 부작용 위험' 등 실질적 기준을 제시한다. 이에 비해 우리 규정은 평가적 용어의 나열에 그쳐 법적 명확성을 떨어뜨린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약사법과 하위규정의 정의 방식을 일치시켜야 한다. 상위법이 일반의약품을 먼저 정의하는 방식을 유지한다면 하위규정도 이에 맞추고, 반대로 전문의약품을 중심으로 전환한다면 약사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둘째,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각각 독립적으로 정의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순환논리를 해소하고, 각 범주의 본질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다.

셋째 '오용', '남용', '중대한 부작용' 등 주요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 일관된 판단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분류의 다양화와 동적관리 문제도 함께 검토될 필요가 있다. 현행 이분법 체계(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만으로는 현실을 담기 어렵다. 일본의 ‘요지도의약품’이나 영국의 ‘약사관리의약품’처럼, 약사의 상담을 전제로 판매 가능한 중간 범주의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재분류(switch)에 관한 명확한 절차와 요건을 규정해야 한다. 미국은 시판 후 안전성 자료, 소비자 이해도 조사 등 과학적 근거를 통해 전환 여부를 판단한다. 우리도 합리적이고 투명한 전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기초를 바로 세울 때

성분명 처방이냐 브랜드 처방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논쟁의 전제가 되는 기본 개념들이 제대로 정의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법적 명확성은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규제의 예측가능성을 담보하고, 실무의 혼란을 줄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 조건이다. 전문의약품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그것을 어떻게 처방하고 조제하고 판매해야 하는지에 관한 모든 규제가 불안정해진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우리 약사법의 의약품 분류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개선해야 할 때다. 기초가 튼튼해야 그 위에 세워지는 모든 것이 안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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