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협 임진수 기획이사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파”
사직 후 집행부 합류에 비난도…“오해 풀고 소통하고 싶다”
세대 간 감정 골 깊지만 “벽 허물고 디딜 자리 넓히겠다”
"충격적이었다. 현실 인식부터 간극이 엄청났다. 대한의사협회가 정말 신뢰를 잃었구나, 통감했다."
의정 갈등이 5개월을 넘긴 가운데 의료계가 또 다른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다. 세대 갈등이다. 지난 11일 기자와 마주 앉은 의협 임진수 기획이사는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임 이사 역시 불과 한 달 전까지 "의협이 우리 몰래 허튼짓할지 모른다"던 사직 전공의였다. 그런데도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체감하는 건 전혀 달랐다"고 했다.
의협은 지금 의대생과 전공의, '젊은 의사'들과 골짜기 반대편에 서 있다. 그 골은 "충격적"으로 깊다. 끝내 의대생과 전공의 위원을 받지 못한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 문제만이 아니다. 수련병원을 사직한 전공의가 의협에 합류하자 '배신자'라는 비판에 직면할 정도다.
지난달 21일 기획이사 임명 직후 동료 전공의들에게 공유한 입장문에서 임 이사는 "모르고 당하면 억울할 거 같아서" 집행부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후회가 안 남을 것 같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거부한 올특위에 간사로 참여한 이유도 "전공의와 의대생이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라고 했다.
기획이사를 맡은 뒤로는 의대생·전공의 간담회를 기획하고 직접 전국을 돌며 젊은 의사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3주를 보냈다. 숙고 끝에 언론 앞에 선 이유도 절박감 때문이다. "앞에 나설 '적절한 시기'라는 게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의정 갈등의 시계를 보면서 "내 입장을 셈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결심을 굳혔다.
정부가 전공의 복귀 '데드라인'을 긋고 의학 교육 평가 개입을 서슴없이 논하는 와중에 "의협이 젊은 의사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젊은 의사들이 목소리 내길 주저하며 시간만 죽여선 안 된다"고 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있는데 하지 못하는 상황이 속상하다. 우리끼리 대화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올바르게 판단할 기회를 잃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올바르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느냐고 할 수도 있고 당장 눈앞에 선 내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돌려준다면 시도할 가치가 있다."
의협이 젊은 의사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고 여긴다면, 이전에 임 이사가 그랬듯 "우리 몰래 허튼짓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러면 함께 '젊은 의사의 의협'으로 바꿔나가자고 했다. 먼저 들어온 만큼 "젊은 의사에게 아직 높은 벽을 허물고 디딜 자리를 조금이라도 넓히겠다"고 했다.
청년의사는 지난 11일 의협 회관에서 임 이사를 만나 집행부에 합류한 사정과 의료계 갈등에 대한 의견을 자세히 들었다. 임 이사는 제35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을 지냈다. 강동성심병원 외과에서 수련하다 지난 2월 사직했다.
- 의협 집행부에 합류한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밖에서 볼 때와 다른 점이 보이나.
전에는 의협이 정부를 상대하면서 전공의 의견을 무시할지 모른다고 여겼다. 그래서 견제와 감시라는 이유를 들며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보니 젊은 의사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의협의 입장이라는 게 성립할 수 없더라. 게다가 모두 전공의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해하고 조금이라도 더 의견을 듣길 원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실감한다. 들어와서 더 크게 이야기해야겠구나 하고.
-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대공협 회장으로 일했다. 한 단체 회장으로서 회원을 보호하며 정부를 상대하는 일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의협 집행부 이사직을 맡는 데 망설임은 없었나(관련 기사: 지난 2년 무시됐던 공보의들이 목소리 내기를 그치지 않는 이유).
망설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회무라는 걸 해 보니 의협의 움직임을 한 번 더 보게 됐고 또 더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아예 신경을 안 쓰면 좋은데 자꾸 보였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차라리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야겠다 했다. 원체 마이웨이 못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이 탓에 협회라는 조직에 다시 들어간 것도 맞다.
- 기획이사로서 젊은 의사와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하고 있다. 업무는 어떤가.
아쉬운 점이 많다.
- 보통 좋은 점부터 꼽는데.
할수록 아쉬움이 맺혀서 그렇다. 홍보 부족이라면 홍보 부족이고 내 마음 문제라면 마음 문제다. 일정 자체가 촉박하기도 했지만 내가 너무 조급했다. 지금 얼마나 큰 위기가 닥쳤고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아니까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서 마음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자꾸 '한 사람만 더', '한 번만 더'하고 재촉하게 됐다.
- 노력에 비해 현장 호응이 따라주지 않고 있다.
너무 안일하게 여겼다. 의협에 덧씌워진 이미지까지 염두에 두지 못했다. 내가 만나자고 하면 누구든 만나러 올 거라고 여긴 면이 있다. 돌이켜보면 이 지점이 제일 아쉽다. 현재로서는 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신뢰 회복은 시간이 오 걸린다. 계속 만남을 타진하고 있다. 더 돌아다니려고 한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싶다.
- 앞으로 더 해보고자 하는 게 있다면.
간담회 상시화를 고려하고 있다. 유튜브 라이브는 어떨까. 회관에 스튜디오를 꾸미고 매일 10시간 이상 라이브 방송을 하는 거다. 스튜디오 출입은 자유다. 나는 카메라 앞에 있고 방문객은 카메라 뒤에서 문의든 건의든 질타든 하고픈 말 다 하고 가면 된다.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든다. 매일은 못 해도 유튜브 라이브는 해볼까 한다. 의협과 의대협·대전협 관계에도 불구하고 의대생과 전공의가 의협에 직접 묻거나 말하고자 하는 게 있을 테니까.
단일 대오 유지하되 새로운 작전 짤 때
-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의협은 오해라고 하지만 젊은 의사들은 의협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가 '3대 요구안'이다. 최근 올특위가 전권을 젊은 의사에게 넘기겠다고 선언했는데 변화가 있을까.
의대생과 전공의가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올특위 선언은 이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수준이다. 의협은 최전선에 선 이들을 지원할 따름이다. 의협은 어떤 조건을 달거나 가로막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 결정은 의대생과 전공의가 하고 의협은 따를 뿐이라는 말인데 동시에 의대생과 전공의가 움직여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맞다. 지금 우리는 '마지노선'에 있다. 비유로서의 마지노선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의 마지노선이다. 프랑스군이 사력을 다해 구축한 전선을 독일군이 우회 돌파하려는 상황이다. 우회로를 이용해 후방으로 진격하는 적군을 포착했다. 그럼 우리도 전략을 점검하고 새로운 작전을 펼쳐야 한다.
- 전략의 수정은 어떤 시점이든 어떤 조직에서든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말해야 한다. 속은 쓰려도 우리의 마지노선이 진짜 마지노선이 될 순 없으니까.
- 전략 수정 방향을 제시한다면.
일선이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각자 판단과 결심으로 병원을 떠났듯 이제 또 한 번의 판단과 결심이 필요하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최소한 억울하거나 너무 괴로운 선택은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최대한 많은 정보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서로 가진 걸 나눠주고 공유하고 궁리해야 한다.
- 단일 대오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텐데.
단일 대오는 깨져선 안 된다. 그러나 다 함께 공유하는 인식이 있었기에 단일 대오가 유지됐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이대로면 대한민국 의료는 붕괴한다.' 이건 누가 묻지 않아도 모두 안다. 단일 대오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만큼 우리 안의 의구심도 없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협에 대한 불신으로 현실 인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 의협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로 2020년 의료계 단체행동을 든다.
2020년 문제는 예컨대 우리가 계속 꺼내보고 참고하는 족보다. 동시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코끼리 다리'이기도 하다. 각자 본인 경험이라는 코끼리 다리로 2020년을 돌아보고 현재를 판단한다. 내가 손댄 코끼리 다리는 소통 문제다. 그 당시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정보를 제때 공유받지 못한 이들은 선택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배신감도 더 커졌다.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지금 소통하자고 하는 이유이자 이 상황을 제대로 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젊은 의사의 의협' 함께 만들 수 있다면
- 사직 전 필수의료과로 불리는 외과 전공의였다. 전공 선택 이유는.
멋있으니까. 속된 말로 '간지'가 나니까 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이 사실을 곱씹을 때면 행복했다. 고작 1년이었지만 외과 전공의로 일하며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한다는 보람이 정말 컸다.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를 이대로 놔두면 좋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 사명감은 '바이탈'의 기본이다. 너무 당연해서 되새겨주지 않아도 됐다. 그 자부심도 자존심도 이번에 무너졌다. 정부로 인해 평생을 바쳐 수천수만의 생명을 살렸을 의사를 너무 많이 잃었다. 이 사실이 너무 분하다.
- 의료계와 정부의 인식 차가 너무 크다.
우리가 너무 순진한 기대를 했을지도 모른다. 의사에게 사명감이란 기본 중의 기본이니 우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아니란 걸 알았다.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 의료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다. '때가 되면 누군가 우리 이야기를 들어 줄 거야'는 너무 순진하다. 의협 입장에서도 우리 젊은 의사 입장에서도 똑같다.
- 그래서 더 의협과 젊은 의사의 소통을 강조하나.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처럼 의협 집행부에 들어오는 젊은 의사가 늘면 좋겠다. 집행부 평균 나이가 30대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지금이 제일 좋은 기회다. 모두가 젊은 의사 의견을 귀담아듣고 그 의견을 중시하고 우리 하고픈 대로 하라지 않나.
- 그러니까 '우리 같이 의협을 접수하자?'
말이 그렇게 되나? 거창하게 표현하면 세대교체고 소박하게 말하면 전공의들이 함께 일하자는 거다. 그리고 내 역할은 전공의들이 부담 없이 의협 회무에 참여하고 논의할 기회를 늘려나가는 거다. 준비 중인 강연이나 정책 공모전도 그 일환이다.
- 전공의들이 의협에 들어오면 그만큼 의협 안에서 임 이사의 역할이 커질 텐데. 지금보다 더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전공의들이 의협에 들어오면 떠나려고 한다. 내 할 일은 다한 셈이다. 그리고 이게 내 진심을 증명할 길이다.
- 그 뒤로 세운 계획이 있나. 이번 사태가 정리되면 할 일이라든지.
일단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려 한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라,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겠다.
- 지금까지 동료 전공의에게, 정부에게, 선배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의협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협에 말하기보다는 의협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의협이 개원가 단체라는 지적이 많다. 의협 안에서 개원가 목소리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협이 교수 중심으로 돌아간다고들 한다. 역시 교수들이 가장 활발하게 목소리 내서다. 그럼 전공의 중심 의협 또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의협에서 우리 목소리가 제일 커지면 의협은 우리를 위해 일한다.
- 결국 돌아와서 다시 전공의들에게 하는 말이 됐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라 그런가보다. 이번에 전국 간담회 홍보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이렇게 썼다. 오지 않아도 된다. 내가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 그러니 만나자.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관련기사
- 투쟁·협상 전권 의대생·전공의에게로…의협 "우린 서포트"
- 의대생·전공의에게 문 연 올특위…3차 회의부터 '참관'
- 밖으로 막말, 안으로 갈등…의료계 '최대 리스크'된 임현택 회장
- 의협 합류 사직전공의들 “대전협 패싱? 아니 의협 견제”
- 의협 집행부에 젊은 의사들 합류…노환규 전 회장은 한특위원장
- 지난 2년 무시됐던 공보의들이 목소리 내기를 그치지 않는 이유
- 의대 교수들 “수련병원장들 전공의 보호 책임 있다’”
- 서울대병원 전공의 예상 복귀율 5%…"폭압적 조치 멈추라"
- "올특위 중단·좌초·해산? 사실 아냐" 적극 방어 나선 의협
- 의협 올특위 '존속' 가닥 잡았지만…파행 운영 불가피
- 올특위, 예정대로 26일 대토론회 개최…해체 여부는 "논의 중"
- 의협, 올특위 '중단' 결정…26일 대토론회가 마지막 활동
- 醫 "올특위 해체 아냐…전공의 독자 협의체 구성되면 지원"
- 의협 의료정책 공모전 대상 '경증 스크리닝 시스템'
- 의정 갈등 장기화 속 "잘못된 의료정책 우리 손으로 고치자"
- 醫 "젊은의사정책자문단, 대정부 협상 기구 아냐"
- 박단 "전공의 괴뢰 집단" 발언에 임진수 "분란 조장은 누구" 반박
- 사직전공의 절반 이상 ‘의원급’ 재취업…‘서울-일반의’ 多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