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조건부’ 제안에 수련병원 교수들 ‘분노’…“비정상적”
서울아산병원 교수 “政, 전공의 사직 해결의지 없고 협박만”
전공의 사직 처리를 두고 고민에 빠진 수련병원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전공의 사직 시점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결정해야 하는 수련병원들의 혼란만 커진 모양새다.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0일 진료과장들이 모여 전공의 사직서 수리 여부 등 현안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수련병원 8곳도 수련교육부장회의를 열고 사직서 수리 여부와 처리 절차 등 전반적인 사항을 논의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날 회의를 진행한 수련병원들은 별다른 대응 방안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톨릭의대 A교수는 이날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각 대학별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가톨릭의료원 산하 8개 병원 수련교육부장 회의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대응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A교수는 “정부가 (전공의들을 갈라치는) 비겁한 일을 하고 있다”면서 “일선 교수들은 9월 전공의 모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사직 수리는 ‘병원-전공의 당사자 간 법률관계’로 정부가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사직 수리시점에 대한 결정권을 병원과 전공의에게 넘겼다. 그러나 동시에 ‘6월 4일’을 사직서 수리 시점이라는 원칙도 강조했다.
더불어 복지부의 ‘조건부’ 제안도 수련병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전공의 사직 시점이 2월로 정해지면 1년 뒤인 2025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 지원이 가능해지지만, 복지부가 오는 9월 복귀 전공의에게만 수련 특례를 적용하도록 하면서 오히려 전공의들의 수련 선택권을 박탈했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사직 전공의가 재응시하면 수련 특례를 적용해 다른 병원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에게는 사직 후 1년 이내 동일 전공·연차 복귀 금지 지침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하반기 모집에도 지원하지 않는 미복귀 전공의들에게는 기존 지침대로 사직 후 1년 이내 동일 전공·연차 복귀가 금지된다. 수련 특례도 없다고 했다. 결국 2월 사직서 처리가 되더라도 9월 복귀자에게만 적용되는 조건부 특례인 셈이다.
이에 전공의 사직 책임을 일선 수련병원에 전가한 것은 물론 전공의들의 수련 선택권을 박탈한 정부를 향한 교수들의 분노도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B교수는 “내부적으로 사직서 처리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논의보다는 이같은 조치에 대한 정부 의도가 무엇인지 진위 파악 중”이라며 “정부는 전공의 사직 문제 해결의지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B교수는 “전공의들을 갈라 쳐서 복귀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지방에서 서울로 전공의들 이동을 유도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비정상적인 방법이라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B교수는 “2월 사직서를 수리하더라도 (미복귀 전공의들은) 2년 동안 돌아올 수도 없다. 정부가 마치 특례를 주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결국은 사직서를 수리하더라도 복귀 전공의들에게만 적용해주겠다는 거니 이는 협박”이라고도 했다.
세브란스병원 C교수도 정부가 내놓은 전공의 복귀대책이 “명백한 전공의 갈라치기”라고 비판했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또 필수과에서 인기과로 전공의 이동을 조장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얼마나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인기과 전공의들은 자리를 모두 채울 것 같고 만약 인기과 전공의 자리가 나면 필수과 전공의가 그 자리를 메우겠다고 자원할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전공의 사직 수리부터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결정까지 수련병원 책임만 커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B교수는 “병원장들은 제자를 둔 스승으로서 사안을 바라볼 것인지, 병원장으로서 사직서를 수리할 것인지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며 “지금으로선 정부가 수련병원에 모든 짐을 넘겼다. 무슨 방법이 있겠나”고 한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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