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밥그릇 싸움 아냐…재정 안정 위한 사회적 정책"
조원준 수석전문위원 "법안 필요하지만 처벌 조항 '입법 과잉'"
복지부 "직역 갈등 아닌 협력 필요…국민 신뢰 우선 확보해야"

정부 여당은 성분명 처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제도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청년의사)
정부 여당은 성분명 처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제도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청년의사)

성분명 처방을 둘러싼 의료계와 약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제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특히 필수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한약사회 이광민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성분명 처방 한국형 모델 도입 정책토론회'에서 "성분명 처방이 의사와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 의약분업 취지를 완성하고 국민 건강 증진과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성분명 처방 제도가 ▲고가 제네릭 의약품 사용을 유도하고 ▲경제적 이익에 따라 처방 행태가 왜곡될 수 있으며 ▲의료기관과 약국 간 담합 구조를 고착화시켜 대체조제를 저해하는 등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환자들이 특정 의료기관 인근 약국에 얽매이지 않고 거주지나 직장 근처 '단골 약국'을 이용을 통해 일원화된 조제와 복약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더라도 단골 약국에서 약물 이력을 통합 관리하면 약물 부작용을 예방하고 복약 순응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중복약이나 배합금기약, 부작용으로 인한 추가 처방약 등을 조정하고 복약이행도를 높이게 되면 환자 건강은 증진되고 불필요한 의약품 사용을 줄여 건강보험 재정도 절감할 수 있다"며 "지역 단골 약국 이용으로 처방의약품 뿐 아니라 평소 복용하는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을 포함한 적절한 약물 사용과 건강 전반에 관한 관리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성분명 처방 도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와 갈등에 대해서도 "의협과 약사회가 싸우고 싶지 않다"며 "정부와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단순한 의사와 약사 간 밥그릇 싸움으로 인식하고 방관해 왔다. 의약분업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금도 개선된 게 없다. 성분명 처방은 보건의료 재정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국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도 했다.

시민단체는 성분명 처방 도입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환자의 알 권리와 안전이 최우선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오선영 정책국장은 "환자가 먹는 약을 결정하도록 환자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보인다. 또 성분명 처방을 하게 되면 브랜드 의존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전문 지식이 부족한 환자들에게 충분한 정보 없이 가격만으로 약을 선택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 국장은 "제네릭이 성분 등이 모두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환자가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기 때문에 환자들이 이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부담을 환자에게 줘서는 안 된다. 충분한 정보 제공과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며 "의사와 약사 간 복약 정보를 원활히 공유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도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성분명 처방을 두고 의사들의 반발이 엄청나다. (제도 도입을 위해) 의사 협조도 필요한데 (법으로) 강제하는 게 최선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처방권을 아주 빼앗기는 것도 아닌데 (의사와 약사가) 자존심 대결을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더 합리적이고 환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지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정부·여당, 성분명 처방 의무화 경계 "국민 중심·합리적 제도 추진 필요"

더불어민주당은 성분명 처방 도입은 반복적인 필수 의약품 수급 불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종합 대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하며, 제도 설계 최우선 목표는 '국민 이익'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민주당 조원준 보건의료수석전문위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19 팬데믹 경험을 언급하며 "마스크, 백신 대란에 이어 타이레놀 대란을 겪으며 성분명 처방 논의가 있었지만 의료계 반발에 대한 부담으로 끝내 추진되지 못했다"며 "다음 정책에서는 명확하게 제도로 만들어져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 부분이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조 수석전문위원은 필수 의약품 수급 불안 해소를 위해 성분명 처방과 대체 조제 활성화 외에도 ▲적정 보상 기반 마련 ▲원료 의약품 안정성 확보 ▲정부 직접 개입을 통한 공적 공급 체계 마련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이 함께 검토되고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다만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이 제도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일부 법안에 포함된 의무 조항이나 처벌 조항은 '법적 과잉'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앞서 민주당 장종태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지정할 경우 의사가 해당 의약품을 처방할 때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개정안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조 수석전문위원은 "법률에서 성분명 처방 도입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의무화하거나 처벌 조항을 과도하게 두는 것은 법적 과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추진한다면 오히려 제도 동력을 잃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성분명 처방 정책 목표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만 초점이 맞춰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 수석전문위원은 "보험 재정 절감은 제도를 추진한 뒤 나타나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라며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명확히 설명하고 합리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제도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도가 특정 직역 이해관계 다툼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국민 중심 설계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정부는 필수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해 '제한적 성분명 처방'부터 단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또 성분명 처방 논의가 의사와 약사 간 직역 갈등으로 비춰지는 점을 경계하며 소통을 통해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강준혁 약무정책과장은 "이 사안을 직역 간 대립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과정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생동성 시험이나 안전성 데이터를 공개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국민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 과장은 정부의 정책 추진 계획도 언급했다. 그는 "새 정부 공약에 따라 우선은 수급 불안정 의약품 대응 차원에서 제한적 성분명 처방과 대체 조제 활성화를 준비 중"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의사와 약사 간 사후 통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장 어려움을 줄이는 등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어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고 미이행 시 처벌하는 해외 사례는 찾기 어렵다"면서 "우리 제도 설계 과정에서도 무리하게 강제화하기 보다 단계적이고 합리적인 제도 추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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