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치상 금고형 집행유예에 민사 일부 배상 판결
"한의학적 한계로 한의사 책임까지 축소되진 않아"

유방암 환자에게 7년 동안 침·뜸 시술만 한 한의사가 과실치상 유죄에 민사 일부 배상 판결을 받았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유방암 환자에게 7년 동안 침·뜸 시술만 한 한의사가 과실치상 유죄에 민사 일부 배상 판결을 받았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단골 환자가 유방암에 걸렸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7년 동안 침·뜸 시술만 한 한의사가 과실치상 유죄에 민사 일부 배상 판결을 받았다. 초음파 등 진단검사를 할 수 없는 "한의학적 한계"를 들었지만 책임을 면하지 못했다.

한의사 A씨는 지난 2012년 운영하는 한의원 단골 환자 B씨의 '우측 유방에 멍울이 졌다'는 말을 듣고 촉진으로 유방 신생물을 확인했다. A씨는 혈액 순환 문제라 설명하고 2019년 7월까지 약 7년간 뜸과 침 시술을 하고, 한약을 처방했다. 그 사이 B씨의 상태가 악화돼 환부 통증과 출혈이 발생했고 2018년경에는 유방 모양이 사라졌다. 지난 2019년 8월 B씨는 호흡곤란 증세로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종양은 폐와 간, 흉막, 골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검찰은 A씨가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B씨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보고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A씨는 한의사로서 유방암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하고, 한의원에 (B씨 유방의) 신생물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검사 장비도 구비하지 않았다"면서 "A씨는 진료 경과에 따라 환자에게 신생물 상태에 대한 추정 진단을 밝히고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단받게 하는 등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지 않도록 신속하게 조치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A씨는 이를 '혈액순환 문제'로 판단하고 "다른 의료기관에서 혈액·조직병리검사나 영상 진단을 받도록 권유하지 않았다"면서 "신생물을 확인했을 때부터 (B씨가 대학병원 응급실을 내원하기 전인) 2019년 7월까지 침과 뜸 치료만 한 과실로 환자의 폐, 간, 방광뼈, 발목뼈, 등에까지 (종양이) 전이되게 했다"고 했다.

A씨 측은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당시 "한의사로서 허용된 의료행위만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설령 주의의무를 위반했더라도 B씨의 상해와 상당인과관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만 수사기관 조사에서는 처음 촉진했을 당시 "(B씨의 증세가) 유방암이라고 의심했다"고 진술했다.

"유방암 가능성 인지하고도 계속 침·뜸 시술" 과실치상 유죄

지난 2021년 5월 이 사건 형사 재판을 담당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A씨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한의사로서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고, A씨 과실과 B씨 상해 간 상당인과관계도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비록 한방 의료행위 외에 유방초음파 촬영이나 조직검사 등을 직접 할 수 없었더라도 A씨는 한의사로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히 조치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B씨는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라거나 유방암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A씨는 오히려 '침과 뜸으로 치료받으면 없어지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진료에서도 '치료 다 해주고 형제들과 여행 가게 해주겠다'고만 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B씨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고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명백하게 유방암으로 의심할 만한 상태"인 환자를 7년 동안 치료하고 "환자의 유방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알리거나 다른 기관 진료를 권유하지 않은 것은 한의사로서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A씨가 조기에 이를 알려 유방암이 발견됐다면 B씨는 암세포 전이로 인한 유방암 4기에 이르는 상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 과실에도 불구하고 환자 역시 "한의사만 믿고 건강검진 등 기본적인 조치를 하지 않은 과실"이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

A씨에 대한 금고형 집행유예는 양측 모두 상소하지 않으면서 확정됐다.

"한의학적 한계 있다고 한의사로서 책임까지 축소되지 않아"

이어서 최근 열린 민사 재판에서는 A씨가 위자료 2,000만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 외 손해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4민사부는 A씨의 치료가 "한의사에게 허용된 의료행위"에 들고, 환자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상태 호전을 위해 A씨가 그 외 해야 했을 적절한 한방 의료행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침과 뜸 시술 그 자체로 유방암 4기라는 악결과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치료상 과실이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반면, 전원 의무와 설명 의무를 어겼다는 주장은 받아들였다.

민사 재판부는 "(유방 모양이 사라진) 2018년경에는 A씨의 증상을 적절히 치료할 수 없게 됐으므로 신속히 전원 조치를 해야 할 주의의무가 발생한다"며 "당시 A씨가 환자에게 한방 의료행위의 한계 등을 정확하게 설명했다면 환자는 유방 상태를 확실하게 진단받기 위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의사와 한의사 의료행위를 구별한 현행법상 "한의사에게 허용된 한방 의료행위만으로 유방암 진단과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A씨의 주장은 수긍가는 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시술에도 불구하고 환자 상태가 악화됐다면 B씨에게 즉시 (의사 진료 등) 다른 방법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거나 전원 조치를 하는 것이 (한의사로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조치"라고 지적했다.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한의사의 책임 범위가 한의학상 진단·치료 가능한 범위로 축소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본인 치료 경험·신념, 환자 이익에 앞세워"…위자료 일부 인정

전원 의무와 설명 의무를 지켰다면 조기에 유방암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란 점은 위자료 책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 더해 재판부는 환자가 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인데도 A씨가 "(한의사로서)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 아니라 한의학적 암 치료에 관한 자신의 경험이나 신념을 우위에 뒀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B씨가 유방 신생물 외 다른 증상으로 타 의료기관 진료를 받은 적이 있고 "정확한 진단 검사로 유방 상태를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도 정년퇴직 후 유방 건강검진을 모두 회피"한 점은 불리하게 작용했다. 또한 재판부는 한의사 A씨가 환자 선택권을 적극적으로 제한하지도 않았고 "나름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 치료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치료·개호비 관련 손해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A씨 과실로 유방암 진단·치료가 늦어진 것이 "암의 진행이나 전이 속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환자는 기왕증이 있었고, 암의 진행이나 전이 속도는 연령과 성별, 체질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2012년경 환자 우측 유방에 생긴 신생물과 현재 존재하는 악성 종양 사이의 관계, 유방암이 발병한 구체적인 시기, 암의 진행이나 전이 과정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며 "한의사의 전원 의무 위반 또는 설명 의무 불이행으로 환자가 유방암 4기에 이르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B씨가 제기한 손해 배상금 총 3억7,491만4,341원 가운데 위자료 2,000만원만 인정하고 나머지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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