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한칼토크

진료 전달 체계의 완성은 우리 의료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개혁의 지향점이 분명하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입원 환자 중심으로, 2차 종합병원은 경증과 중등도의 입원 환자 중심 그리고 1차 의료기관은 외래 중심 구도가 그것이다. 언제부터 문제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가장 큰 개혁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그런데 이게 말로는 단 두 줄인데, 실제는 정말 가능할지 의문이다. 자잘한 병으로도 대형병원을 찾는 우리나라 환자들이 갑자기 달라질까. 뭐 그건 어떻게든 된다고 치자.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병상 수를 강제로 감축시키고, 중증 질환 위주로 진료하는지 적극 모니터링하고 그에 따른 조처를 하겠다고 하면 그만일 것이다. 한동안 지표는 그럴싸하게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일단 살짝 비켜 가는 것에는 도가 튼 병원들이니까 그렇기는 한데, 만일 제대로 하려고 한다면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일단 상급종합병원의 교수 가운데 경증질환이 많은 분야의 교수들, 그러니까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같은 분야 교수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진료하지 말까. 진료 안 해도 월급 주려나. 아마 병원 측에서 꼼수를 찾기 전까지 수술을 줄이라고 할 것이다. 교수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전공의 수련을 위해서라도 경증이라고 환자를 안 볼 수가 없다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대학병원에서 중증 질환만 진료한다면 제대로 된 교육수련이 될 수가 없다.

상급종합병원의 상황은 그렇고, 그동안 대학병원이 중등도 질환도 싹쓸이하는 바람에 2차 병원은 중등도 질환의 수술을 할 여력도 노하우도 없고, 의료 인력도 없다. 그런데 보지 않던 중등도 환자가 한순간에 증가하면 감당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보낼 상급종합병원은 보낼 수 없다 하고, 받아야 할 2차 병원은 받을 수 없다 하는데 어떻게 전달 체계를 확보하겠다는 것일까.

디테일이 없는 개혁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런 정도의 아이디어는 어떨까.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질환을 주로 담당하는 교수는 2차 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양측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중증환자는 여전히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하고, 대부분의 경증은 본인이 근무할 2차 병원에서 진료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 중심으로 전환이 용이할 것이고, 2차 병원은 그동안 부족했던 전문 인력의 확충과 함께 환자 진료 역량이 커지지 않을까. 급여는 양쪽에서 조정해 받으니 병원 부담도 줄고 교수들은 좀 번거롭기는 해도 아무래도 수익이 올라갈 것이니 만족할 것이다. 당연히 전공의도 교수와 함께 2차 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양쪽에서 수련을 받는 것이니 원칙에도 맞다. 가상의 안이지만 이 정도의 탄력적인 정책의 안배가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모든 상황을 꼼짝 못 하게 하고서 하루아침에 대대적인 개혁을 하겠다고 한다? 과연 성공할까. 디테일이 없는 개혁이라면 늘상 떠들던 안 그대로인데 정권이 바뀌었으니 살짝 새로운 몇 가지(공공의료 확충 등)만 섞어서 ‘박스갈이’ 한 개혁안이라고 보일 수도 있다. 내용은 전 정권과 같은데 봉투는 현 정권에서 만든 것처럼 말이다.

박종훈 지난 1989년 고려의대를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로 근무 중이다. 고려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 싱크탱크인 재단법인 한국병원정책연구원 원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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