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한칼토크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논의 사항 가운데 환자-의료진 모두가 신뢰하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이 있어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얼핏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주로 환자 안전과 관련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의료 현장에서 환자 안전이 수시로 무시되고, 그로 인한 의료사고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가 드디어 국가적 의제로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라? 내용은 그게 아니다. 핵심은 의료사고를 예방하자는 안은 쏙 빠지고 의료사고 시 빠른 해결에만 주안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왜 안전망 구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슨 안전을 말하는 것일까? 굳이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필수 의료 분야의 의료사고는 될 수 있는 대로 의료진에게 형사 기소 등의 절차에서 예외적으로 배려한다는 것인데,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필수 의료 전공 기피 현상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이슈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즉 젊은 의사들이 필수 의료 전공을 꺼리는 원인으로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이 큰 분야이고 사고 시 처벌 등의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런 논의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목을 의료사고 시 합리적인 대책, 뭐 이렇게 돼야 하지 않을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우선 환자와 의료진의 소통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말해 뭐하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의개특위가 논의하고 있는 내용을 보니 의료사고 시 사고 발생 경위 및 상황에 대한 설명, 소통을 법제화한다는 것이다. 의료사고가 났는데 설명 않는 의사도 있나. 뭐 아무튼 그렇다. 강제로 대화시키겠다고 하니, 이혼 조정도 아니고 실효가 있을까. 법으로 대화를 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한데 그렇단다.
그리고 환자 측이 인정할 수 있는 절차적 도움, 방식 그리고 의료진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사건별 세세한 분류를 통해 아주 복잡한 시스템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말고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두는데 여기서는 사고의 내용을 분석해서 향후 어떠한 절차를 갈지를 가늠하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필자는 의개특위가 논의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분야가 필수 의료 분야니까 가급적 배려하자? 이런 게 아니라 환자 안전을 위해 의료진이 지켜야 할 과정을 잘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건은 곧바로 형사 기소 같은 절차에서 예외로 해 달라는 것이지, 필수 의료 분야 사고라서 예외로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전제는 어떻게 됐든 의료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으로 발전해야지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환자-의료진이 모두가 신뢰하는 의료사고 안전망이라는 것은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정상참작(情狀參酌)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분야별로 배려를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환자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위험하게 진료를 하는 것조차도 보호해달라고 어느 의료진이 말했을까.
한편 생각해보면 의료사고의 해결 방안은 사법부가 현명하게 처리해주고, 의료진과 환자 간의 소통이 원활하다면 굳이 이런 논의를 할 이유도 없다. 의료사고 시 일단 의료진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사법 당국의 편견, 그로 인한 지나친 처벌과 과정,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지만, 아직도 미숙한 의료진과 환자 간의 원만한 해결 등은 이것이 과연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 해결될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흔한 우가 어떤 것이냐, 제도 만능주의다.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환자-의료진 모두가 신뢰하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이라는 제도를 보노라면 아, 수많은 변호사 일자리가 만들어지겠다는 생각만 든다. 일자리 창출하는 것도 아니고.
박종훈 지난 1989년 고려의대를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로 근무 중이다. 고려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 싱크탱크인 재단법인 한국병원정책연구원 원장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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