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법에 명문화해 의료 현장 두려움 풀어줘야"
'사과법' 논란을 불러온 의료사고 후 설명 법제화에 대한 현장 우려가 여전하다. 법조계는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했다가 소송에 불리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부터 해소해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 19일 '의료책임제한법 필요성과 문제점'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는 의료사고 후 의사의 사과 표현을 들러싼 '오해'와 현실이 주요 화두에 올랐다.
의료사고 설명 법제화는 지난 3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가 공개한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방안 중 하나다.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해 '중대 사고'에 한해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고 발생 경위와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설명 과정에서 나온 유감이나 사과 표현은 수사나 재판에서 증거 채택이 제한된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으로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황적화 공동대표는 "변호사는 패소 시 의뢰인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표하는 게 당연하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사과하면 소송에서 불리해진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위로의 뜻을 충분히 표하면서도, 법적 책임 부담까지 지지 않아도 되는 기준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 대표는 "변호사는 소송에서 지면 판사를 탓하거나 변명하기보다 사과부터 한다.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동이다. 의뢰인 또한 패소 책임을 물어 변호사를 고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의료 현장에서도 의사의 설명과 사과가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잡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일반 민사 소송처럼 의료사고 소송에서 사과를 '과실의 증거'로 인정하지 않도록 규정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현행 민사조정법 제23조는 소송에 앞서 조정 절차에서 나온 의견과 진술을 이후 소송에 원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 변호사는 "의료분쟁조정법에서 규정하지 않는 부분은 민사조정법을 따르도록 돼 있다. 애초부터 조정 절차나 전단계에서 의사가 사과를 표했다고 과실을 인정한 것이라 판단하면 안 됐다"며 "민형사 소송시 의사의 사과를 과실을 시인하는 증거로 삼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명확하게 추가해야 현장 오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의료사고 소송을 대하는 의료계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의료사고 소송 증가는 국민의 권리 의식이 성장하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사회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예전이면 운이 좋지 않았다고 넘어갈 일까지 소송을 건다'는 식으로만 받아들이면 접점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의료계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자체적인 예방 시스템 없이 사고가 난 뒤에 대책 위원회를 꾸리거나 환자 소송을 비난하는 행태로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했다.
의료계는 사과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은 "의료 현장은 의사가 사과했다가 소송에서 불리해졌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니, 진위를 떠나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의사가 개인적으로 환자에게 사과하고 싶어도 병원 차원에서 막기도 한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의료계로서도 이런 오해와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면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사과할 수 있게 돼 소송이 줄어드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길 바란다"고 했다.
아울러 "대학병원은 사고 사례 공유와 의료진 교육 등 예방 체계를 갖추고 있다. 똑같이 하기 어려운 소규모 의료기관은 의협이 관련 활동을 지원하고 있기는 하다"면서 "정부나 의협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례를 공유하는 관리 체계를 만들면 의료사고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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