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의 정책 딥 마이닝

최근 일차 의료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일차의료 강화특별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발의안에 따르면 일차의료란 국민이 가장 먼저 접하는 의료로 지역 주민에게 흔한 질병의 치료와 관리,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 등 의료서비스를 지속적이고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일차의료 기능 정착을 위해 ‘지역별 일차의료지원센터’를 운영토록 하고 있다.

이 법안에서 지자체는 개인이 주치의로부터 예방·치료·관리 등 포괄적인 건강관리를 받는 ‘건강주치의제도’를 시행한다. 발의 이유인즉 “우리나라는 일차 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보건의료 체계가 확립되지 못해 의료자원 배분의 불균형과 비효율을 심화시키고 있다”라고 주장, “일차 의료가 보건의료 체계에 있어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이 특별법 추진 배경”이라고 밝히고 있다.

터부시돼 온 영국식 인두제 연상케 하는 일차의료강화특별법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

발의 내용에는 어떤 의사가 주치의 역할을 할 것인지와 주치의에게 문지기 역할을(gate keeping) 부여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주치의제도라면 언뜻 영국의 의료제도를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 의료계에 영국식 주치의제도 혹은 ‘인두제’라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매우 터부시됐다. 주치의제도에 대한 학술적 논의 자체도 상당 부분 불편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주치의제 이면에는 ‘인두제(capitation)’라는 지불제도에 대한 큰 변화를 담고 있는 듯해 이에 대한 거부감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차의료 강화라는 구호에 반대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나 우리나라 주치의제도는 우리나라의 사정에 맞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인두제 형태의 지불 방식에는 크게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저수가 제도가 당장 의료 붕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이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미진해 보이면서 인두제 도입과 동시에 인두당 비용 지급 역시 기상천외한 저수가 정책을 고수할 것 같은 조짐에 불안함이 앞선 것이다. 그동안의 행태로 봐서는 당연한 우려로 와닿는다.

영국은 주치의 1명에게 최대 2,000명 정도의 환자를 등록시킬 것을 권한다. 간혹 이 기준을 넘는 주치의도 있다. 그리고 주치의에게 등록된 환자는 1인당 연간 164.64파운드(한화 약 30만원) 정도가 지급된다. 다만 지역과 성과에 따라 약간 조정될 수는 있다. 1년 동안 등록 환자가 주치의에게 1회 방문하든 10회 이상 진료를 받든 고정된 비용이 책정돼 지급된다. 이론적으로 1명의 주치의에 NHS 권장 수주인 환자 2,000명 등록 요건이면 기본 연 매출 6억원 정도 발생한다. 여기에 주치의의 임상 활동에 따라 ‘행위별 수가제’로 정산되는 부분은 별도로 산정한다. 영국은 특히 1인 단독개원보다 다수의 공동개원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봉직 형태의 주치의 급여는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자영 방식의 주치의 수입은 고소득 수준인 연간 5억~7억원 규모가 되면서 관심을 끌고 화제가 된 경우도 있다.

영국·캐나다식 주치의 문지기 역할, 우리나라 초·재진 비용으론 불가능

캐나다는 인두제나(capitation) 행위별 수가제(fee for service)를 강제하지 않고 개인 의사의 선택사항으로 운영한다. 두 제도의 운영비용은 결과적으로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과 캐나다처럼 주치의가 의료 소비의 일정 부분 통제 역할을 위한 ‘문지기 역할’을 하려면 현재 우리나라의 초·재진 비용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환자에게 어떤 검사나 처치에 대한 자제와 기다려 보자는 설득이 가능하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 만일 대기나 관찰로 시간을 보내다 무언가 부정적인 의료 결과가 나타나면 이로 인한 폭력과 형사고발이 난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배상제도는 아직 발달단계에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현재의 의료 환경에서 의사들의 문지기 역할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최근 OECD 보고서(How Do Health System Features Influence Health System Performance? : OECD/The Health Foundation 2025)에 의하면, 문지기 역할을 하는 나라나 하지 않는 나라 모두 의료성과는 동일하다는 보고를 내놓았다. 프랑스는 최근 L’Académie de médecine(의학한림원)에서 의료사막화와 의료대기 시간의 완화를 위해서는 주치의를 경유하지 않고 환자가 직접 전문의를 볼 수 있도록 제도적 완화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출간했다. 아마도 주치의에 의한 문지기 역할은 점차 소멸되는 추세로 보인다.

의료붕괴 현실에서 보상 체계 없는 주치의제보다 지속성 더 고민해야

우리나라에서 많은 전문의가 자신의 전문과목이 아닌 일반과 진료로 개원하고 있다. 인적 자원의 측면에서 영국식 일차의료 제공과 영국식 주치의 역할은 우리나라 의료 환경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전문의 주치의가 차 상위 의료기관과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의 취약점인 의료의 지속성을 개선해 보기를 추진해 볼 수 있다. 의료의 지속성 유지에는 의사 자신의 전문과목과 일치하지 않는 문제도 상담을 통해서 타 의원이나 병원으로 의뢰는 가능해 보이는데, 이런 면담과 의뢰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 줘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꼽으라면 주치의제도 결여에서 오는 진료의 지속성이다. 지속성이 담보돼야 의사의 조언에 순응도가 높아지고 신뢰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높은 신뢰도는 불필요한 입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이번 OECD 보고서에서 불필요한 입원에 대한 부분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것이 주치의제도로 해결될지 매우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입원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고 입원비 자체가 워낙 낮아 원거리에서 통원진료를 받기보다는 입원을 선호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병실을 활발한 의료 활동의 장이 아닌 환자와 환자 보호자가 안정적인 가료를 추구하는 장소로 인식하는 문화도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가 뉴스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듯이 정치인이 골치 아픈 일을 당하면 이들은 곧장 병원으로 잠적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령화 시대 한국형 주치의 일차의료 육성책 솔직한 담론 형성 필요시기

고령화 시대를 맞아 최근 회자되는 ‘통합돌봄’에서 의사의 역할이나 재택진료, 방문진료 등도 일차진료 의사를 필요로 한다. 세계 최고의 수진율에도 비대면 진료를 위한 법안이 이미 여러 번 발의돼 있다. 실제로 비대면 진료가 제한된 조건과 범위 내에서 국제적으로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주치의제도 없이 전문의에 의한 일차진료 제공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접근성과 효율성은 타 국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병상도 세계 최고 수준이니 입원율도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형 일차의료와 주치의제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논의 자체를 정책 수용으로 비난해서도 안 된다. 제도적 반대에도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 속에서 한국형 주치의와 일차의료를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지 함께 고민해 볼 시기는 됐다.

참고문헌
1. NHS Payments to General Practice, England 2022/23
2. How Do Health System Features Influence Health System Performance? : OECD/The Health Foundation 2025
3. L’Académie de médecine veut assouplir les accès directs à certains spécialistes pour réduire les délais | Le Quotidien du Médecin | Libéral / Soins de ville

안덕선 성형외과 전문의이면서 의학교육 전문가. 한국의학교육학회장,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을 지냈으며 서태평양의학교육협회장과 세계의학교육협회(WFME)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의대 명예교수이며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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