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변호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의료기관 법인화’ 방안을 담은 정책 현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한국형 의료전문법인’ 모델을 제안했다. 설립 주체를 의사로 제한하고 법인의 법적 성격을 민법상 사단 혹은 재단법인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에 앞서, 전문법인 제안의 배경이 된 현행 ‘의료법인’ 제도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현 의료법인제도는 1973년 일본 의료법인을 모델로 도입돼 반세기 이상 운영됐고, 그간 많은 제도적 한계에 봉착해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태생적으로 1973년 이전 합법이었던 이른바 비의료인 개설 사무장병원을 제도적으로 금지하면서 이들의 퇴로의 기능도 담당했기 때문에, 모델로 된 일본 의료법인 제도와는 다르게 출발했다.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대표변호사

일본은 의료법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설립자에게 출자 지분을 인정해 청산 시 잔여 재산을 지분 비율대로 분배받을 수 있는 사단형 의료법인도 허용했다. 이를 통해 설립자는 운영 중 배당은 받을 수 없지만 해산 시 출자 재산을 회수할 수 있어 재산권을 제한적으로 보호받았다. 이런 이유로 일본 의료법인은 지분 보유가 가능한 사단형이 주를 이룬다.

반면 한국은 재산 처분을 극도로 제한하는 재단형 의료법인만 고집했다.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고 본다. 이후 주무관청의 허가 규제로, 잔여재산 귀속을 유사 단체 혹은 국고귀속으로 제한하는 정관만 허가하는 관행을 유지해 왔다. 그 결과, 한계에 이른 의료법인은 해산·청산 시 잔여 재산이 남더라도 이를 설립자 등에게 귀속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부 의료법인은 경영상 한계에 봉착하더라도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적으로 해산하지 않고, 음성적으로 법인을 매매 대상으로 삼거나 사실상 활동이 중단된 채 ‘좀비’처럼 존재하게 됐다. 이러한 사례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정책연구원의 제안내용으로 돌아와 살펴보면, 우선 의사로 구성된 전문직 법인을 신설하는 방안에는 찬성한다. 다만, 제안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의료법인의 현 문제점을 직시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방향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특히, 지분에 따른 배당 불가가 공공성 유지의 본질적 요소라는 의견은 보다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그 논의 대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입법론적 근거의 부재다. 의료정책연구원의 제안 중 ‘지분배당 금지’ 내용은 국내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등 전문직 법인은 물론, 다른 선진국의 전문직 법인 입법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례적인 규정이다. 이는 독창적이라기보다 제도 구조 설계가 잘못된 사례에 가깝다. 구조 자체가 잘못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편법 배당은 계속될 것이며 또 다른 불법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지분배당 금지를 공공성의 핵심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이를 공공성 유지의 본질적 요소로 본다면, 제안된 ‘한국형 의료전문법인’이 현행 의료법인과 무엇이 다른지 불분명하다. 현 의료법인에 이사회를 의사만으로 구성한다면, 의료정책연구원이 제안한 전문법인제도와 실질적 차이가 없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입법 필요성이나 유인이 사라진다.

셋째, 지분배당의 세제 효과 제한이다. 현행 세법상 배당은 2,000만원 이하에 대해서만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그 이상의 배당금은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므로, 실제로는 배당 제도가 있어도 이를 활용하지 않고 고액 성과급이나 상여금으로 보상하면 배당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고액 보상 제도가 가능함에도 단지 배당 제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성이 유지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넷째, 전문직 법인의 법적 성격 문제다. 일반적으로 전문직 법인은 전문직들이 동업하거나 유한·합자 형태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회사법적 개념이다. 그런데 이를 전혀 다른 법적 성격인 민법상 재단 또는 사단법인으로 한정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현재도 의사들이 의료법인, 사단법인, 재단법인을 설립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있으며, 이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근거는 없다. 다만 주무관청이나 보건복지부의 행정 방침에 따라 의료법인 외의 민법상 재단·사단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을 불허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법리적 문제가 아니라 행정목적을 위한 허가 재량의 문제다. 결국 성격에 맞지 않는 제도적 ‘옷’을 강제로 입히는 격이어서 지속 가능성이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설립 요건의 과도한 부담 가능성이다. 전문직 법인을 사단 또는 재단형으로 한정하면, 인허가 관청은 의료업의 안정적 지속을 명목으로 현행 의료법인과 마찬가지로 일정 규모 이상(통상 100병상 이상)의 의료기관용 부동산 확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막대한 자금을 들여 부동산을 매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임차를 통한 병원 개설 허용 등 이를 완화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면, 전문직 법인 신설은 현실적으로 현행 의료법인 신규 설립만큼이나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 전문직 법인에 관한 논의는 ‘의무법인제도’ 등 이름을 달리하며 수십 년째 이어져 왔다. 현재 단독 개설 외에도 2인 이상의 의사가 동업 형태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법인 전환이 필요한 경우도 단독 경영보다는 이러한 동업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역시 세법상 개인사업자이므로, 동업 개인사업자를 법인 사업자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허가제로 운영할 경우 행정규제에 따른 위험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이미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운영돼 온 유사 전문법인 제도인 법무법인 등의 설립 규정을 원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

의사들이 병원을 공익적으로 운영하고자 한다면, 현행 의료법의 의료법인 제도나 민법상 비영리법인을 활용하면 된다. 그 외의 방식은 유사 전문직 법인 제도처럼 상법을 준용해 규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동업으로 운영되는 병원이 비영리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가 없듯이, 의사 간 동업을 그 본래 성격을 유지한 채 법인화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비영리로만 운영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설령 그러한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실제 활용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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