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경남·전남·제주 등 4곳 7월부터 시범사업 돌입
의정 갈등·엇갈린 전문의 채용 시기 등으로 시작부터 고전
복지부 ‘기존 인력 전환·필수과 외 선발’ 허용 등 유연한 접근
절실한 지자체 “어렵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의사 수급…최선 다할 것”
젊은 의사들이 지역의료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역근무수당과 정주 여건 등을 제공하는 ‘지역필수의사제’가 시행됐지만 의료계 우려처럼 지원자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시범사업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등 대상 의사 ‘모시기’에 총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시범사업을 실시하는 강원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다른 지역과 경쟁을 통해 참여를 결정했지만 신규 전문의 채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시범사업 성공 방안 찾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상황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복지부와 지자체가 지역필수의사제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지역의사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건 다해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4개 지자체 뛰어든 지역필수의사제, 현 상황은
지역 필수의료분야 종사 의사들에게 지역근무수당과 정주 여건 등을 지원하는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는 7월부터 강원, 경남, 전남, 제주 등 4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됐다.
시범사업은 의료개혁 과제 중 하나로 의사가 종합병원급 이상 지역의료기관에서 필수과목을 진료하며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지역근무수당과 정주 여건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상 필수과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등이다.
복지부가 지난 2월 11일부터 3월 7일까지 실시한 공모를 통해 참여한 4개 지자체는 지역 여건에 맞게 지역필수의사가 근무할 의료기관을 선정하고 각종 정착 수당 지원 및 의료기관과 연계한 정주를 포함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각 지자체가 연계한 의료기관을 살펴보면 강원도는 ▲강원대병원 ▲한림대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강릉아산병원, 경상남도는 ▲양산부산대병원 ▲삼성창원병원 ▲경상국립대병원, 전라남도는 ▲목포한국병원 ▲목포시의료원 ▲성가롤로병원 ▲순천의료원,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대병원 ▲서귀포의료원 ▲한라병원 ▲한국병원 ▲중앙병원 ▲한마음병원 등이다.
복지부는 특히 해당 시범사업을 통해 지자체가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해 사업계획서를 수립하고 지역 상황에 맞는 지원체계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입장이다.
안그래도 어려운데…의정 갈등까지
현 상황에서 시범사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지자체는 경남도다. 경남도는 다른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전입하는 경우 1인당 200만원을 환영금으로 지급하고, 전입 6개월 후부터 계약 만료 전까지 미취학 자녀와 경남 소재 초·중·고를 6개월 이상 다니는 자녀에게 1인당 50만원이 매월 지급한다. 경남을 선택한 의사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더 하겠다는 것이지만,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이 정도의 경제적 지원이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은 인지하는 바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아직 계약 완료 대상자가 없다. 하지만 논의 중인 의사들은 있다. 올해까지 대상 인원 24명을 모두 채용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이라며 “의사들이 움직이기에는 적은 재정 지원이라는 것은 알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도를 제외한 나머지 참여 지자체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에서는 각 지자체에 지역필수의사제 시행을 위해 구체적 안을 요구한 상태인데, 지역 어려움을 고려해 ‘언제까지 제출하라’는 기한은 정하지 않은 상태다.
시범사업 시행이 어려움을 겪은 요인 중 하나로 의정 갈등도 꼽힌다. 안그래도 의사가 부족한데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수련 현장을 떠나면서 전문의 배출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정 갈등으로 전문의 배출이 줄면서 전문의가 더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면 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전문의 배출이 더 줄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토로했다.
시범사업을 시작한 시기가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는 지역필수의사제 참여 지자체 공고를 지난 2월에 내고 4월에 선정해 7월부터 시작했다. 통상 3월에 의사 채용이 많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자리를 찾는 의사들이 자리를 잡았을 시기에 시범사업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복지부에서는 신규 채용을 권장하고 있는데, 시범사업 시작과 전문의 이동 시기가 맞지 않는 부분이 가장 어렵다”며 “지금 상황이라면 오는 9월 일부 의사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연초에 준비해 전문의들이 많이 움직이는 3월에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며 “7월에 사업을 시작하니 늦은 감이 있다. 지금은 채용 대상 자체가 전국적으로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존 인력 전환·8개과 외 인력 채용도 허용…성공 위한 안간힘
복지부도 지역의 이같은 현실을 외면하진 않고 있다. 당초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 순증을 목표로하는 시범사업 취지를 고려해, 신규 채용만 시범사업 대상 인력으로 허용하고 기존에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의를 지역필수의사제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던 입장을 바꾼 것이다.
시범사업 참여 지자체들에 따르면, 복지부는 신규 의사 채용이 어려울 경우 올 상반기 채용 전문의를 시범사업 대상자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를 통해 시범사업 참여를 결정한 의사도 1명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 상반기 이전에 지역 의료기관과 계약한 전문의라도 시범사업 진행을 위해 운영 중인 자문단 논의를 거쳐 시범사업 참여 대상자로 계약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의사 순증도 중요하지만 ‘현재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의사들이 계약 만료 후 외부로 다시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자체 의견이 반영된 결정이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지역에서는 의사 유입이 필요하지만, 의사 유출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복지부에 (기존 인력 전환 인정을) 건의했고, 복지부도 신규 채용을 권장하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 자문단 논의를 거쳐 기존 인력 전환을 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전남도청 관계자 역시 “복지부 원칙은 신규 채용이지만 전문의 이동이 거의 없고 배출도 없는 상황”이라며 “이같은 상황에서 기존 인력 전환이라도 해야한다. 아마 복지부도 당초 계획에서는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기존 인력 전환과 함께 채용 대상으로 지정한 8개과 외 전문의도 자문단 논의를 거쳐 채용할 수 있도록 사실상 허용했다. 복지부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등을 대상 과목으로 지정했지만 ‘농촌에서는 피부과도 필수진료과다’라는 지자체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다만 복지부는 ‘전문의 취득 후 5년 내’라는 기준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복지부도 현장 방문까지 하며 지자체 의견을 듣고 있기 때문에 사업 추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이 취득 후 5년을 확대해 ‘10년 이내’로 늘려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사업 취지에 너무 어긋난다고 반영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 입장은 10년 정도면 지역에 안착한 것이니 그런 인력까지 지역 수당을 줘서 사업에 참여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지만, 지자체 입장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늘려줘야 신청이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처음 사업 계획할 때는 전문의 취득 후 3년이었는데 지자체 건의로 5년으로 늘린 것”이라며 “복지부도 지자체 의견을 많이 반영해준 것이긴 한데, 그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자체들 "그럼에도 ‘지역필수의사제’는 해야 한다"
정부가 지역필수의사제 계획을 공개했을 때부터 의료계 내에서는 효과를 보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적잖았다. 사업 시작 후 현 상황은 이같은 지적이 틀리지 않으느 모습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각 지자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필수의사제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어려움이 많고 힘들다. 그래도 지역에서는 의사 채용을 위해 중요한 시도이기 때문에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며 “첫 사업이니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어려움을 넘어 사업을 시작하고 효과를 보면 확대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남도는 사업 추진 외 다양한 연구 등을 통해 기회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원도청 관계자도 “이제 시작단계기 때문에 (성공 여부를)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한다. 지방은 의사 수급이 워낙 어렵다보니 지역필수의사제를 주요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당 외 강원도에서 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준비해 차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남도청 관계자는 “시범사업은 시작했지만 원칙대로만 하면 사업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만큼 어렵다. 참여 시도에서 의견을 주면 복지부가 검토해 완화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며 “사업 취지는 좋지만 여러 상황과 영향으로 힘들다. 하지만 지역 의사 확보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