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정부 위촉 변호사, 환자 앞에서 의료계 대변 못할 것” 지적
政 “환자 대변인, 변호사 영업활동 못하고 절차 조력만 가능” 강조

정부가 의료분야 경험이 있는 변호사 50명을 환자 대변인으로 위촉해 의료사고분쟁에 나선 환자와 보호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의료계 내에서 의료분쟁 조정 활성화가 아니라 소송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정부가 의료분야 경험이 있는 변호사 50명을 환자 대변인으로 위촉해 의료사고분쟁에 나선 환자와 보호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의료계 내에서 의료분쟁 조정 활성화가 아니라 소송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의료분쟁조정제도 활성화를 위해 도입되는 ‘환자 대변인’제도가 오히려 소송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 위촉을 받은 변호사 출신 환자 대변인들이 의료사고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환자와 보호자들 앞에서 객관적으로 의료계 편을 들어주기 어렵고, 이 과정에서 조정사건이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4일 환자 대변인제도 도입계획을 공개했다. 환자 대변인은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등의 중대한 의료사고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분쟁 조정을 희망하는 경우 감정과 조정 전 단계에 걸쳐 전문적 조력을 제공한다.

환자 대변인은 의료사고 분야에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변호사 중 50인 내외를 선발해 운영하며, 정부는 이들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법률 상담과 자문을 하고 자료 제출 및 쟁점 검토 등을 도와 의료인과 환자 모두가 만족하는 조정에 이르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 위촉 변호사들이 의료사고 분쟁 조정 과정에서 환자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의료계 내 우려가 크다.

수도권 한 중소병원 원장은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정부는 환자 대변인제도를 통해 분쟁 조정을 활성화하겠다고 하지만 정부 위촉 변호사들이 의료사고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결과는 좋지 않지만 의학적으로 의사가 잘못한 것은 없어 보인다’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 변호사는 어떤 의미에서 국선변호사와 비슷한데, 화가 많이 난 환자와 보호자들 앞에서 ‘의사도 어쩔 수 없었다. 의사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 보다는 ‘뭐가 궁금하냐. 이런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등의 말을 하게 될 것”이라며 “목적은 어떨지 모르지만 분쟁에서 선한 중재자가 되기 보다는 (소송) 가이드를 해주는 변호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의료분쟁 조정ㆍ중재 조력을 위한 환자 대변인 위촉계획 공고’를 보면 환자 대변인은 지원 신청자에 ▲조정 및 중재 관련 법률 자문 및 상담 ▲당사자가 제출한 조정 신청서ㆍ자료에 대한 검토 및 보완 ▲분쟁 쟁점 검토, 감정서 및 조정서 등에 대한 의견 ▲감정ㆍ조정 과정에서 법적 조력이 필요한 사안 등을 지원한다.

그는 “변호사 출신 환자 대변인을 통해 조정과 중재를 지원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모르겠다. 분쟁 상황에 따른 객관이고 의학적인 조력은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의사는 의사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 의료감정을 해주는 의사들도 많다. 차라리 익명으로 객관적 의료감정을 해주는 의사 풀을 넓혀 환자와 보호자를 지원하는 방안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어 “변호사를 통한 환자 대변인제도는 의료분쟁 조정과 중재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지만 결국 소송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취지는 이해하지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의료계 한 관계자 역시 변호사를 통한 환자 대변인 제도는 분쟁 조정이나 중재를 소송으로 키울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도를 보면 결국 정부가 의료분야 경험이 있는 변호사를 모으고 예산을 투입해 분쟁 조정과 중재에 나선 환자들에 변호사를 매칭해주는 것”이라며 “사실상 의료분야 국선변호사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변호사 특성상 환자나 보호자를 대상으로 법률 중심 자문을 할 것인데, 결국 지원받은 환자나 보호자들이 분쟁 조정이나 중재보다 소송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복지부는 의료계 이같은 우려에 대해 환자 대변인은 분쟁 조정이나 중재 과정에서 절차조력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일반 변호사와 환자 대변인은 같은 변호사지만 다르다. 환자 변호사는 일반 변호사처럼 환자와 보호자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는다”며 “분쟁 조정이나 중재 과정에서 절차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방노동위원회에도 절차 조력 변호사들이 있는데, 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며 “일각에서 환자 대변인을 매칭해주면 이들이 소위 ‘영업’을 할 것이란 우려를 하는데, 환자 대변인은 변호사로서 영업활동을 하지 못하고 순수하게 절차 조력만 하도록 업무범위를 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도를 운영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불분명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5월부터 시작하는 제도는)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하며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의료계에서는 의료인도 (환자나 보호자와) 마찬가지로 법적 부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어 이 부분도 제도 시행 과정에서 들여다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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