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 최초 청각장애 아이돌 그룹
“다름은 장애 아닌 또 하나의 가능성”
HiPex 2025에서 만나는 찬연·PJ·지석
들을 수 없다고 노래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세계 최초 청각장애 아이돌 그룹 ‘빅오션(Big Ocean)’이 이를 증명한다. 해외에서도 “K팝의 장벽을 허물었다”며 빅오션을 주목한다. 단지 청각장애를 가진 가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성도 주목받는다. 빅오션은 미국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30인(30 Under 30)에도 이름을 올렸다. 데뷔한 지 1년만이다. 빅오션은 음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빅오션 멤버 세 명은 모두 청각장애가 있다. 지석(김지석)은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며, 찬연(이찬연)과 PJ(박현진)는 어린 시절 고열로 청력을 잃었다. 지석은 장애인 알파인 스키 선수였고, 찬연은 고려대안암병원에서 청각 재활을 돕는 청능사(청각사)였다. PJ는 유튜버로 활동하며 청각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썼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이들을 하나로 연결한 게 음악이다. 지석은 현 소속사인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하는 배리어프리 행사 ‘런웨이’를 통해 아이돌 그룹 연습생이 됐다. 찬연은 고대안암병원이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 트로이 코처(Troy Kotsur)를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갔다가 연습생으로 합류했다. 청각장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다룬 영상을 제작했던 PJ는 이를 계기로 EBS에도 출연하면서 소속사의 눈에 띄었다.
아이돌 그룹 데뷔도 기존의 틀을 깨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청각장애가 있는 이들은 소리 대신 진동으로 박자나 비트를 감지한다. 무대 바닥에 진동을 전달하는 스피커(서브우퍼)를 설치하거나 진동 스마트워치 등을 착용해 도움을 받는다. 타이밍 신호를 깜빡이는 빛 메트로놈도 활용한다. 보컬 트레이너 등 전문가와 함께 음정과 발음을 정확하게 내기 위해 노래 연습도 거듭한다. 이 과정을 소속사인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가 적극 지원한다.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는 장애 예술인의 대중문화 진출을 지원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빅오션은 이처럼 ‘소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연습’으로 무대를 완성한다. 이를 통해 “장애는 한계가 아닌 정체성”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빅오션 멤버 찬연, PJ, 지석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다름은 장애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과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빅오션은 ‘HiPex(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하이펙스) 2025’에서 그들의 경험을 공유한다. HiPex 2025는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된다. 빅오션은 마지막 날인 20일 무대에 오른다.
- 미국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30인(30 Under 30)’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데뷔한 지 1년 만에 이룬 성과입니다.
찬연: 빅오션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해 정말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좋은 노래들로 꾸준히 활동하겠습니다.
PJ: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했을 뿐인데, 그 진심이 큰 공감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감격스럽고 감사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순간 같습니다. 앞으로도 빅오션만의 방식으로, 경계를 넘고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지석: 과분한 사랑을 받기만 하지 않고 대중들의 관심에 책임을 지고 베풀 수 있는, 더 멋진 아티스트가 되겠습니다.
- ‘세계 최초 청각 장애 아이돌 그룹’을 넘어 가수 빅오션의 목표가 있다면?
찬연: 더 많은 사람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고 긍정 에너지를 퍼뜨리고 싶습니다. ‘나는 불가능해’가 아닌 ‘조금 어렵지만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PJ: 처음엔 ‘특별하다’는 시선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우리는 음악으로 마음을 울리는 팀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세상을 듣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치열한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빅오션’이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장르나 경계를 뛰어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연상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석: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어떤 목표든 실현할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어 주는 그룹이 되고 싶습니다.
- 청각장애인이 댄스 가수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지난 1년간 활동하면서 사회적 인식에도 변화가 있다고 느껴집니까?
PJ: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엔 ‘가능하다고?’라는 시선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게 어떻게 가능했지?’로 바뀌고 있거든요. 그 변화 자체가 사회 인식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석: 빅오션을 통해 삶의 동기부여나 원동력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곤 합니다. 말보다 우리의 활동을 통해 많은 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 ‘장애가 있어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찬연: ‘내가 할 수 있는 걸 보여 줄거야’ 라는 자신감입니다. 모든 사람이 지닌 원석을 장애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포기하기보다 여러 방법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PJ: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걸 증명해내는 꾸준한 연습입니다. 무대는 결국 진심과 노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설득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석: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입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당당함을 표현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빅오션은 소리를 듣는 대신 진동이나 시각 신호로 보고 느끼며 무대를 완성합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요?
PJ: 우리는 듣는 소리의 정도나 박자를 인지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소통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진동 시계나 빛 메트로놈 같은 보조장치도 큰 도움이 됐지만, 결국 실전 무대에서는 장치에 의존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멤버들끼리 시선을 맞추고, 안무 타이밍을 몸에 익히기 위해 거울 앞에서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했습니다. 또 각자 느끼는 박자를 소리 내어 직접 공유하고 리듬을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으로 감각을 맞춰갔어요.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빅오션 퍼포먼스가 가능했습니다.
- 완벽한 팀워크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찬연: 합숙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팀워크를 키워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각자가 잘하는 부분이 있기에 다른 멤버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려는 배려가 팀워크를 크게 향상시켰다고 생각합니다.
PJ: 말보다 눈빛, 표정, 몸짓으로 소통하는 게 우리 팀만의 방식이에요. 작은 제스처 하나도 대화가 되고 서로를 믿는 마음이 팀워크의 핵심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연일체가 되는 듯합니다.
지석: 서로 연습할 때 얘기를 많이 나누며 약속을 합니다. 다 같이 춤출 때는 제가 주도적으로 이끕니다. 서로 맞춰가려는 노력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데뷔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찬연: 최근 진행한 유럽 투어 중 파리에서 한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해 파리를 방문했을 때 73세 ‘파도’(빅오션 팬덤명) 어르신이 날짜를 착각해서 팬미팅에 못오셨는데 우리가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나자고 따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방문하게 된 파리에서 그 메시지를 들고 ‘혹시 나를 기억하느냐’ 하시는데 우리 셋 다 한눈에 알아봤어요. 연로하신데도 우리 무대를 끝까지 봐주시고 또 호응도 잘해주셔서 뭉클했습니다. ‘멀리 있어도 언제나 마음만은 곁에 있을게’라는 해외 팬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PJ: 올해 4월 말 유럽 투어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주간 수많은 파도분들의 감정과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제 솔로곡 ‘Sinking’ 무대에서 한 팬이 울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던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그 모습을 보고 무대에서 내려가 직접 눈물을 닦아드리고 싶었지만 대신 “내가 네 옆에 있을게”라고 말해주었어요. 팬들의 사랑을 뒤로하고 떠나야 하는 순간 같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무대마다 자주 듣는 말도 있어요. 그중 “You are my life and sunshine. Never give up and keep going. I’m so proud of you.”(너는 나의 삶이자 햇살이야.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라는 말이 특히 기억이 남아요. 단순한 응원을 넘어서, 우리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이런 말들이 우리를 계속 무대에 서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지석: 2집 앨범으로 컴백하고 1집과는 다른 콘셉트로 팬들을 만났을 때 입니다.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좋아해주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파도들의 뜨거운 환호성과 즐기는 모습이 아직도 하나하나 기억납니다. 원래 음악에 관심 없었는데 빅오션을 통해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던 팬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음악을 통해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는 말이 저에게도 힘이 됩니다.
- 찬연은 환자의 입장에서 소리를 ‘선물’했던 청능사에서, 이제는 자신이 직접 무대에서 소리를 ‘표현하는’ 아티스트가 됐습니다. 그 전환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찬연: 제가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질문에 담겨 있습니다. 제가 듣고 느꼈던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직업에서 이제 들은 소리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여주는 아티스트가 됐습니다. 음악을 표현하고, 공유하고, 함께 즐기는 행동을 통해 공감의 매개체를 원했구나를 느끼고 있습니다.
- 장애가 있지만 가수나 연습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찬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절대 낮추지 않고 달리면 언젠가는 꿈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PJ: 타인의 기준으로 가능성과 한계를 단정 짓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만의 방식과 속도로 꿈을 향해 나아가면 돼요. 무엇보다도 꾸준한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우리도 그 사실을 증명해나가고 있습니다. 함께 파이팅해요!
지석: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좋겠어요. 순간의 좌절감으로 꿈을 접지 않길 바라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무대에서 만나요!
- 청각 장애를 가진 분들이 공연이나 콘텐츠를 즐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향후 ‘배리어프리 공연 환경’을 만드는 데 있어 어떤 기술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까?
찬연: 저의 경우에는 자극을 눈으로 가장 먼저 인지하기 때문에 노래의 정확한 가사 자막이나 수어 통역사처럼 시각적인 요소를 추가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PJ: 실시간 자막, 수어 통역, 진동 시스템, 시각적 메트로놈 같은 기술이 더 넓게 보편적으로 보급돼야 합니다. 또 모두가 같은 순간을 함께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석: 서로 어떤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작은 부분이 하나하나 이해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K-팝 산업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함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인 문화'로 나아가려면,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할까요?
PJ: 기술적인 접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봐요.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환영하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연습 시스템이나 무대 제작에서 더 열린 구조가 자리 잡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지석: 무언가를 더 해내어 보여준다면 정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저는 빅오션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만으로 새로운 기회가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 HiPex 2025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찬연: 개인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건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그만 발걸음에도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무대에서 ‘나는 만약 장애가 있다면 어떻게 견뎌냈을까, 나는 장애가 없었다면 어떻게 생활했을까’ 하고 서로의 입장과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PJ: HiPex 철학이 우리 팀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었어요. 다름은 장애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과 경험이라는 메시지를 무대 위에서 전달하고 싶습니다.
지석: 모두가 분명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여러분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바위처럼 끝까지 버텨 주길 바랍니다.
- 의료진과 환자 모두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환자 경험에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빅오션이 보여주는 무대는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보나요?
찬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 다름을 존중하는 조율의 시작점이 빅오션이 보여주는 무대였으면 합니다.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을 위해서 서로가 어떤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가를 한 번 더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PJ: 우리는 모두 다르고, 그 다름은 오히려 특별한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 결국 더 나은 경험을 만들고, 더 성장할 수 있는 사회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우리 무대로 그런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지석: 빅오션은 겉으로 보기엔 ‘다름’이 없어 보이지만 어떤 그룹인지 알고 나면 달라 보입니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꿈을 향한 용기가 되길 바랍니다.
관련기사
- '2분 더 투자'가 불러온 변화…공유의사결정의 힘
- 고작 문진 시스템?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 해운대백병원이 3년째 ‘하이펙스’를 찾는 이유
- 한림대성심병원 '로봇엄마'가 동지를 모집합니다
- 의료에 AI를 입히다…종양내과 교수가 의료솔루션 개발하는 이유
- 독보적 ‘환자경험·서비스디자인’ 공유의 장 ‘HiPex’, 올해 화두는?
- ‘모바일·현장·진심·로봇’ 병원 혁신의 길을 찾는 다양한 방법
- 주치의 말보다 유튜브서 위안 찾는 환자들…환자경험이 위험하다
- 진단·치료 한계 여전한 AI…병원은 어디에 활용해야 할까
- 의사·환자 치료법 함께 찾는 ‘공유의사결정’, 한국도 가능할까
- EMR 연동 안되는 DTx…개방형 플랫폼으로 처방 걸림돌 해소
- 56위→ 9위…"아주 작고 깜찍하게" 시작한 해운대백병원의 도약
- 병원 혁신 열기, 부산으로…‘HiPex 2025 해운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