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안전망 방안에 醫 vs 환자단체 ‘극과 극’ 반응
이은영 이사 “의료사고 책임 지나치게 완화하는 방식”
이성순 교수 “불필요한 사법 절차 줄어들 것으로 기대”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환자단체는 정부의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에 우려를 표했다(ⓒ청년의사).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환자단체는 정부의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에 우려를 표했다(ⓒ청년의사).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 사법 리스크 완화 방안으로, 의료사고 시 기소는 환자 상태가 아닌 중대과실 여부로 판단하고 필수의료는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형 감경이나 면제가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자 환자단체 반발하고 나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과 보건복지부가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선 정부의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을 놓고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팽팽하게 대립했다.

복지부는 이날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한 추진과제로 ▲소통‧신뢰 중심 분쟁 해결 지원체계 확립 ▲신속‧충분한 배상을 위한 공적 배상체계 강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형사체계 개선 등을 제시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은영 이사는 “소통과 신뢰 중심의 분쟁 해결 지원체계 확립과 신속하고 충분한 배상을 위한 공적 배상체계 강화 방향성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형사체계 개선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모든 과실이 단순과실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의료사고 책임을 지나치게 완화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형사고소 없이도 울분을 해소하고 손해배상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이런 노력도 없는 상태에서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이유로 의료사고특례를 추진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덧붙였다.

사법리스크가 필수의료 붕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의료사고특례를 요구하는 의료계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도 했다.

이 이사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의사 기소가 연평균 754.8건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발간했지만 실제 연평균 의사 기소 건수는 30~40건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며 “정부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소에 연구의뢰한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 기소건수 등에 대한 용역이 발표되면 의료사고특례가 필요하다는 의료계 요구는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음 법률사무소 유현정 대표는 “의료사고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지만, 민사소송의 경우 지난 2013년 1,101건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4년 900건대를 유지하다 2021년 854건, 2022년 768건으로 감소 추세다. 계속해서 의료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정책을) 진행하는 것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정부에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의료 소송에 대한) 용역을 주고 조사 중인데 현실적으로 자료 입수가 쉽지 않고 분석도 어려운 상황이라 정확한 상계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의료사건의 형사사건화가 과장돼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팩트 체크가 정확히 이뤄진 상태에서 이를 전제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국내 의료사고로 인한 의사 형사기소 건수가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일산백병원 이성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의료사고 소송 관련해 뽑을 수 있는 통계는 검찰청의 업무상과실치사상 기소된 직업이 의사인 사람인데 1년 780건 정도”라며 “30~40건이라는 주장은 불기소, 기소 조정 등 합의를 다 빼고 나서 판결문이 나온 횟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을 보면 1년 내 형사로 기소되는 의사 소송건수는 3~4건인데 우리나라는 500건 이상으로만 잡더라도 큰 차이가 난다”면서 “우리나라 의사들이 외국 의사보다 게으르고 실수가 많은지 의문을 가질 수 있고, 우리나라가 과도하게 형사입건 건수가 많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고양시의 경우 인구 100만명이 넘는데 이대목동병원 사건 이후 신생아중환자실은 5곳 중 단 1곳만 남았다.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기소된 사건으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악순환의 고리로 의사들과 국민들 모두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민사소송의 경우 환자가 피해 입은 부분에 대해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형사소송은 700건 정도가 되면 경찰서나 검찰로 의사들이 불려가 4~5시간씩 두 차례 정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부담이 큰 것”이라며 “이런 부분은 개선돼야 한다. 의료사고심의위에서 과실 여부 등을 파악해 심의에서 걸러주면 불필요한 사법 절차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복지부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수사나 소송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겪는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했다.

권민정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사고심의위를 통해 중과실 여부를 심의하게 되면 환자와의료진 모두에게 사실관계를 규명하는데 도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존 사법체계를 해하는 방향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모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심의위원회 구성이나 입법 과정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정교화하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과장은 “수사리스크라는 게 단순히 소송 건수가 많은 것 뿐 아니라 소송과 수사 과정에서 의료진 뿐 아니라 환자가 겪는 어려움도 굉장히 클 것”이라며 “그런 과정에서 어려움을 조금 덜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도록 추진됐으면 한다. 국가도 필요한 부분에서 공적 지원을 확대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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