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의료 붕괴 가시화…교수들 “만나면 사직 이야기”
인력 부족에 치료 성적 하락…수술 대기 기본 3개월

지방 대학병원 교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역 의료전달체계 붕괴 우려도 커지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지방 대학병원 교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역 의료전달체계 붕괴 우려도 커지고 있다(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전공의들의 복귀가 무산되면서 지방 의료 붕괴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시작한 의료개혁이 오히려 지역의료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 후 1년여 간 번 아웃된 교수들의 사명감은 제자들이 돌아올 거란 희망이 꺾이며 말라버렸다. 이제 교수들은 “만나면 사직 이야기”다.

전북지역 대학병원 정형외과 A교수는 “사직하는 교수들이 늘고 있다. 전체 교수 150여명 중 20%인 30여명이 이미 나갔다”며 “이미 옮길 곳이 정해져 나가겠다는 이들도 있고 옮길 곳을 찾고 있는 교수들도 있다. 전공의 복귀가 이뤄지지 않으면 2~3월 교수 사직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직한 교수들의 공석을 채울 수도 없다. 이미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지방 대학병원들은 자포자기 심정이다.

A교수는 “채용공고를 아무리 올려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연봉을 높여도 소용이 없다”며 “주말, 연휴 할 것 없이 일주일에 두 번씩 당직을 서며 1년을 보내다 보니 다들 자포자기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 요즘 교수들은 눈만 마주치면 사직 이야기다.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같은 교수 인력 이탈은 치료 성적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마취과 전문의 부족에 입원환자 전담 인력조차 부족하다 보니 수술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지방에서는 암 수술 대기는 3~4개월이 기본이다. 지방 대학병원 진료 대기에 환자들의 발걸음은 빅5병원을 향하고 있다.

부산지역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B교수는 “지방은 의료 붕괴 직전이다. 마취과 교수가 없어 수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점은 빅5병원도 마찬가지지만 지방 사정은 더 심각하다”며 “위암의 경우 기본적으로 수술이 3~4개월씩 밀려 있다. 수술 대기가 반년 이상 밀려 안 되겠다 싶은 환자들이 서울 빅5병원으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B교수는 “수술이 어렵다 보니 과거 수술로 종양 부위를 먼저 줄인 후 항암 치료를 했다면 요즘은 종양이 애매한 경우 항암 치료를 먼저 하고 이후 수술을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면서 “인력 부족에 다음 날 외래가 있는 경우 모두 쉬쉬하고 있지만 밤 10시 이후에는 어지간한 응급환자 아니고서는 입원환자를 받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정부의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이 지역 의료전달체계를 더 세게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대로 지방 대학병원 교수 이탈이 가속화되면 의료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의 배출이 불가능한 지금 상황에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은 “의미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B교수는 “당장 대학병원에서 중소병원으로 이직한 교수들 입에서 열심히 하고 싶어도 복합질환은 손도 못 대고 다시 대학병원으로 전원시켜야 하는 경우가 많아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다고들 한다”며 “숙련된 교수들이 옮겨 갔다 하더라도 대학병원과 다른 환경에서 한계는 분명히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B교수는 “그간 지역의료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에 버텨 왔지만 제자들도, 후배들도 이곳을 떠나 서울로 가고 있다”며 “대학병원들도 연구나 교육 업무를 줄여 환자 진료를 볼 수 있도록 기준을 낮추고 있다. 점점 대학병원 교수 역량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의료전달체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빅5병원 흉부외과 C교수는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을 하겠다고 전문의 채용을 늘린다지만 전공의가 없어 전문의 배출이 막힌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은 다른 병원 교수를 빼 오는 방법밖에 없다”며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교수들도 힘들다고 나가는 아사리판에 들어올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C교수는 “지방 대학병원 그만두고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교수들도 많다. 정부가 수도권과 지역의료 격차만 벌려놨다. 지방에서 빅5병원으로 암 수술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며 “그나마 굴러가던 의료 시스템을 정부가 깨뜨려버렸다. 이대로는 수습조차 불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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