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폐암환우회 조정일 회장 “조기진단 위한 검진체계 개선 시급”
여성 폐암 환자 90%가 비흡연자…“현 흡연자 중심 검진으론 한계”

조정일 한국폐암환우회장.
조정일 한국폐암환우회장.

“폐암 예방은 치료보다 훨씬 쉽고 효과가 큽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이를 전담하는 조직도, 관심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지난 7일 싱가포르 선텍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연례학술대회(ESMO Asia 2024) 현장에서 만난 조정일 한국폐암환우회장은 한국의 폐암 관리 체계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조 회장은 이번 학회 환자 서밋에 참석하며, 국제 무대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폐암 환우회 활동을 소개했다. “다른 나라의 환우회 활동을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폐암 환자 치료 현실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은 부분이 있었죠.” 현지에서 만난 조 회장의 시선은 ‘폐암 예방’이라는 한 단어에 집중되어 있었다.

“현재 국가건강검진에서는 단순히 엑스레이만 찍고 정상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추가 정밀검사를 받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흉부 엑스레이만으로는 폐암의 병변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발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 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선량 CT 도입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취임 이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저선량 CT 도입의 필요성을 설파한 끝에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건강검진 통지서에 ‘흉부 엑스레이 검사는 폐결핵 진단 검사이며, 폐암 선별 검사는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명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나라 폐암 환자의 38%가 비흡연자다. 여성 폐암 환자의 경우 90%가 비흡연자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국가 폐암 검진은 여전히 흡연자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많은 비흡연자 환자가 조기 진단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6년간의 투병 끝에 아내를 잃은 조 회장은 “흡연이 주된 원인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원인으로도 폐암이 발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대만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만에서는 1촌 이내에 폐암 가족력이 있는 비흡연자를 대상으로 저선량 흉부 CT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 덕분에 대만의 조기 진단율은 50%에 달하는데, 우리는 40%에 그칩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9위 경제 대국인데 왜 국민의 생명 보호에는 이리 인색한가요?” 조 회장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특히 조 회장은 경제적 격차가 생존의 격차로 이어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사비를 들여 정밀검사를 받아 초기에 발견하지만, 국가 검진에 의존하는 분들은 진단이 늦어져 치료 기회를 놓칩니다. 신약이 허가된 이후 보험 적용까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조 회장은 언론의 역할도 강조했다. “간혹 잘못된 정보로 환자가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언론은 환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조 회장은 특히 임상시험 정보나 신약 관련 보도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의료 대란으로 수술받을 의사를 찾기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조 회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환자들의 정보 접근성도 문제다. “임상시험 정보를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나 관련 기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지방 환자들은 정보가 더욱 제한적이에요.”

폐암환우회는 현재 ‘폐암 제로 캠페인’을 진행하며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조 회장은 이번 ESMO Asia에서 만난 호주 환자단체 대표의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고 한다.

“딸을 폐암으로 잃은 분이었어요. 손주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아내처럼 늦게 발견돼 고통받는 환자가 없는 세상, 그것이 제 작은 꿈입니다.”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조 회장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희망입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치료의 시작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할 때입니다. 폐암 예방을 위한 더 적극적인 정책과 지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