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교육 질 보장’ 장담에 의학계 ‘황당’
“강당에 모아 놓고 학원 강의하듯 하란 것”
“임상실습·전공의수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교육 질 저하는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의학교육 현장에서는 부실 교육 우려가 커지고 있다(ⓒ청년의사).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교육 질 저하는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의학교육 현장에서는 부실 교육 우려가 커지고 있다(ⓒ청년의사).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도 교육 질 저하는 없다고 단언했지만 전문가들은 “의학교육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며 어이없어했다.

정부가 그 근거로 제시한 의학교육평가인증은 현재 정원이 기준이며 기초의학 교수 등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예과 2년 동안 보완하면 된다는 주장도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정원이 대폭 증원된 의대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에 주요변화계획서를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2,000명이라는 숫자만 발표하고 이들을 어떻게 교육 시킬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임상실습을 진행하는 교육병원과 전공의를 양성하는 수련병원 인프라도 문제다. 기초의학 교수는 물론 임상의학 교수가 부족한 의대도 있는 게 현실이다(관련 기사: 의대 정원 늘려도 교육여건 충분? 임상교수마저 부족한 곳도 있다).

“학원 강의하듯 하라는 정책”
의학교육 부실·후퇴 우려 커져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과 의평원장을 지낸 안덕선 고려의대 명예교수는 “강당에 모아 놓고 학원 강의하듯이 하는 게 의학교육이라고 생각해야 나올 수 있는 정책”이라며 “의학계에서는 소규모 토론수업 등 역량 바탕 의학교육(Competency Based Medical Education)을 고민하고 있는데 정부는 반대로 가려 한다”고 꼬집었다. 안 교수는 “어떤 의료를 그리고 있는지 그 형태에 대한 계획 자체가 없으니 내놓을 수 있는 정책”이라고도 했다.

안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의료정책포럼’ 최신호에 기고한 ‘의대 정원 확대에 필요한 교육적 논의’를 통해서도 정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은 응급의료체계 개선으로 극복할 수 있고 ‘소아과 오픈런’은 저출산과 불합리한 의료환경으로 인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이탈이 문제인데도 “의사 부족을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의대 교수 1인당 담당 학생 수가 평균 1.6명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7.6명, 약대 14.9명에 비해 많다며 교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도 의학교육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라고 했다. 미국 하버드 의대는 학생 정원이 160명이지만 2022년 기준 교수는 1만2,304명으로, 임상교수를 제외한 조·부·정교수가 6,000명이 넘는다. 교수 1인당 학생이 아닌, 학생 1인당 교수가 14.6명이다.

안 교수는 “의대가 교수대 학생 비율이 월등히 높아 보이는 이유는 의대 교수 교육 대상은 학생 정원보다 훨씬 많은 인턴, 전공의, 대학원생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이라며 “의사양성을 위한 의학교육은 의사면허 취득 전 학생 교육과 인턴, 전공의로 이어지는 졸업후 교육과 석·박사 대학원 교육, 의사로서 법정이수 의무가 있는 평생전문직업성개발(보수교육)까지 연속적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하버드 의대 교수가 많다고 해서 섣불리 정원 확대 논의는 없다. 의학교육 특성을 무시한 채 단순히 다른 단과대학 학생 대비 교수 비율 비교는 전문지식이 부족한 정치인과 국민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며 “아마도 교육이란 강의실이나 실험실에서 진행하는 단순한 의미로 축소된 것 같다”고 했다.

의대 정원 확대로 전공의 정원도 늘어나지만 이들을 양성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의사양성 비용 추계 및 공공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공의 1인당 평균 수련비용은 최소 11억1,188만원에서 최대 18억7,900만원이다.

안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대학 투자’라는 의미가 다른 선진국과 같이 의학교육에 공공성 의미를 부여해 의대생이나 전공의에 대한 정부 공적 자금 지원을 포함하는지 궁금하다”며 “교육(수련)병원이 전공의 급여를 부담하는 현재 제도는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나 필수 전문과목 인력 조달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의사 양성을 위한 교육 투자란 임상 교육에서 교육 규범과 교육 분화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물리적 시설뿐만 아니라 교육 관련 전문 인력 투입과 교육 전문부서, 다양한 교육 행사를 위한 예산이 필요하고 제도적으로 정착돼야 한다”며 “만성적인 부실 인턴교육과 학생실습 그리고 시대착오적인 전공의 교육을 개선하는 게 의대 정원 확대와 연계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두고도 의대 의견은 배제됐다는 지적이 나왔다(ⓒ청년의사).
정부가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두고도 의대 의견은 배제됐다는 지적이 나왔다(ⓒ청년의사).

“부풀려진 의대 정원 수요조사”
“정치 압박 투영된 총선 대비용”

의대들도 정원 증원을 원한다며 정부가 발표한 수요조사 결과도 ‘엉터리’라는 비판이 이어진다.

복지부는 지난해 10월 27일부터 11월 9일까지 2주간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정원 확대 수요조사를 실시한 결과, 2025학년도 증원 수요가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이라고 했다. 또한 대학들이 오는 2030학년도까지 최소 2,738명에서 최대 3,953명을 추가 증원하기를 원했다고 했다.

하지만 수요조사 과정에서 교육 당사자인 의대는 배제됐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달 9일 350명 증원이 적정하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지역별, 임상과목별, 질환별, 부족 인력에 대한 추계가 의대 정원 확대의 기본자료가 돼야 한다”며 “복지부가 증원에 필요한 기준을 제시해 각 대학이 기준에 따른 정원 증가분을 산출한 게 아니라 각 대학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증가분을 제시한 초보적 희망 정원 조사에 불과하다. 이를 국가적 의사 인력 수요조사로 둔갑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나 포퓰리즘에 의한 다급한 압박을 받았을 때 보여주는 정책 혼돈과 미숙함이 그대로 투영돼 나타난 총선 대비용 정책”이라고도 했다.

지방 소재 모 의대 A교수는 “교육부와 복지부는 대학에만 의대 정원을 어느 정도 증원하면 수용 가능한지 물었다. 의대는 최대 증설 가능 강의실 규모로 대학에 보고했고 최대한 많이 적었지만 총장과 이사장 등이 정부에 제출할 때는 이마저도 부풀려 보고했다”며 “의대에서 최대 30명 가능하다고 보고했는데 총장과 이사장이 300~400명으로 정부에 보고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정원이 500명만 증원돼도 예산 수천억원이 필요한데 2,000명이면 부실 교육이거나 대기업이 주인인 수도권 사립의대들만 증원에 따른 투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B원장은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렸을 때 의학교육 가능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조직한 현장 실사 점검반을 통해 이미 가능 여부를 타진했고 국민 대다수가 의대 증원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근거로 그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실사한 자료는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의대 이후 전공의 수련교육에 대한 논의도 한 적 없다. 정부 주장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실사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평원 의학교육평가인증 기준에 세세하게 적혀 있다. 학생 1인당 교실 면적 등도 기준에 명시돼 있는데 이 기준에 맞춰 의학교육을 내실 있게 준비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학생들이 수련병원으로 실습을 돌아야 하는데 수련병원에는 늘어난 인원을 수용할 공간도 교육할 여력도 없다. 수련병원에 대한 지원책도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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