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산부인과학회·의사회 간담회 열고 의견 청취
정부 대책 현실성 떨어진다는 지적…"저수가부터 해결'
10억원 소송 이어지는 현실…완전한 국가 책임제 필요

산부인과가 무너지는 분만 인프라를 되살리기 위해 저수가와 의료소송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개선책을 촉구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만으로는 한계라는 지적이다.

지난 8일 오후 보건복지부가 박민수 2차관 주재로 진행한 산부인과 간담회에서 분만 인프라 보호와 필수의료 현안 해결을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간담회는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가칭)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구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가 참석했다.

정부는 연초 필수의료 지원대책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정책수가 도입과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산부인과는 의료 현장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아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산부인과 정책수가 중 하나로 지역가산제를 마련 중이다. 대상 지역은 분만 수가를 100% 가산한다. 그러나 분만 건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울과 광역시·도는 제외됐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대도시는 분만 건수가 많으니까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서울 강남구에 분만병원이 한 곳도 없다. 분만 수가가 낮아서 강남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 못 한다. 오히려 대도시 중심지에서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대도시는 제외하고 지역별로 차등을 두는 지역가산 개념보다는 분만 관련 필수의료 비용을 함께 인상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상 수준도 100%가 아니라 300~500% 정도 돼야 한다"며 "분만 인프라 위기는 저수가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고 했다.

산부인과 관계자들은 저수가로 젊은 의사는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고 병원이 해당 과를 축소·폐쇄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으로 분만 현장에 가길 원하는 의사들이 많지만 "갈 곳이 없다"고도 했다. 현재 수가 수준으로는 "한국 의료기관이 산부인과 의사를 고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부인과 관련 수가를 전체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했다. 우선 응급실이 아니라 분만실에서 진료하는 경우도 응급관리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위험산모·태아집중치료실(MFICU) 수가도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산부인과 특수성을 고려해 토요일 오전 분만·수술도 공휴일 가산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복지부는 산부인과 요청을 받아들여 지역수가 지원 방안을 수정·보완하기로 했다. 대학병원 MFICU와 고위험 수술 보상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와 신생아 집중치료 지역센터를 각각 중증모자의료센터, 일반모자의료센터(가칭)으로 개편하고 고위험 분만과 신생아 치료 인프라를 확충하기로 했다. 행위별 수가 인상과 함께 추가적인 보상 제도도 모색한다.

보건복지부는 8일 산부인과 학회·의사회와 간담회를 갖고 분만 인프라 보호와 필수의료 회생 방안을 찾았다.
보건복지부는 8일 산부인과 학회·의사회와 간담회를 갖고 분만 인프라 보호와 필수의료 회생 방안을 찾았다.

의료사고 민사 소송 국가 책임제…"조속한 정책으로 인프라 지켜야"

산부인과 최대 현안인 의료사고 소송 문제도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형사 재판에서 특례를 주기보다 민사 소송에서 의사·의료기관 부담을 더는 방향이다.

산부인과는 의료사고 민사 소송에서 국가가 배상액 전반을 지급하는 완전한 '국가 책임제'를 바라고 있다. 10억원대 소송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가 보상 상한은 수년째 3,000만원에 묶여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국가 배상 규모를 수가 수준과 연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산부인과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 책임 '수가 연동' 추진")

의료사고 민사소송에서 의사 과실 여부를 가늠하는 복지부 가이드라인 수립도 제안됐다. 법적 구속력이 없어도 의사·의료기관 입장에서 방어책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 의료행위에 대한 사법부 이해를 넓히는 효과도 기대했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의사 개인이 보상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실과 무과실을 가르기보다 필수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쁜 결과는 국가가 책임지고 배상한다는 인식 하에 보상 체계를 두텁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선제산부인과개원의사회 김재유 회장은 "수가 인상도 중요하지만 사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 무리한 판결도 필수의료가 붕괴하는 원인이다. 의사의 민형사상 과실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면 의사와 사법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아울러 "전공의 진료 범위와 권한을 확대하고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응급 상황에서 전공의가 사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으로 위축되지 않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산부인과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조속한 정책 시행이 중요하다고 했다. 상당수 분만 의료기관과 산부인과 의사들이 정부 지원 정책을 기대하며 현장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필수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때보다 견고한 만큼 위기를 기회로 삼을 때"라고 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분만 인프라를 비롯해 필수의료 분야를 되살릴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했다.

박민수 차관은 "안전한 임신·출산을 위한 진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의료질 향상을 위해 현장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이번 간담회 이후로도 의료계 다양한 단체와 간담회를 지속해 나가며 추가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