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하버드의대 파시 안느 교수·삼성서울병원 이세훈 교수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 강조…"단독·병용 선택은 환자와의 '소통'이 관건"

지난 6~9일 세계폐암학회(WCLC 2025)에서 공개된 FLAURA2 연구의 최종 전체생존(OS) 데이터는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받았다.

이번 연구는 기존 글로벌 스탠다드인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 단독요법이 아닌 항암화학요법과의 병용 전략을 통해 환자의 생존기간을 약 4년까지 끌어올린 의미 있는 결과를 제시했다.

WCLC 2025 현장에서 만난 세계적인 폐암 석학 하버드 의과대학 파시 안느(Pasi A. Jänne)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세훈 교수는 이번 성과를 "폐암 치료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라 평가하며,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세훈 교수(좌)와 하버드 의과대학 파시 안느 교수(우)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세훈 교수(좌)와 하버드 의과대학 파시 안느 교수(우)

4년 생존 입증…폐암 치료의 새로운 지평

파시 안느 교수는 FLAURA2 연구의 최종 분석 결과에 대해 "매우 고무적인 데이터"라고 평가했다. 이어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전체생존기간을 약 4년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희망적인 소식"이라고 말했다.

기존 FLAURA 연구가 3세대 EGFR TKI 단독요법의 우수성을 입증하며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게 한 기반이었다면, FLAURA2 연구는 그 이상의 생존 혜택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세훈 교수 또한 "이번 결과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며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무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제 한국 진료 현장에서 이미 FLAURA2 치료 전략이 건강보험 부분 급여 항목으로 포함된 만큼, 치료 전략 변화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독요법 vs 병용요법,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두 교수는 공통적으로 환자 맞춤형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파시 교수는 "병용요법은 확실한 생존 이점을 제공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권고할 수는 없다"며 "환자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 치료 선호도를 반영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제 진료 경험을 전하며 "지난 석 달간 약 40명의 환자에게 병용요법을 적용했는데, 대부분 외래 진료 중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며 "특히 전신 상태가 양호한 환자일수록 병용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지만, 삶의 질을 중시하는 환자는 여전히 단독요법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병용요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환자군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다. 파시 교수는 ▲중추신경계(CNS) 전이 환자 ▲엑손21(L858R) 변이 환자 ▲종양 부담이 큰 환자군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특히 L858R 환자군은 타그리소 단독요법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병용 전략에서 더욱 두드러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임상 현장에서 CNS 전이 환자는 병용요법 효과가 명확히 확인된 집단"이라며 "L858R 환자의 경우 동반 변이가 많은 편이어서 단독요법보다는 병용 전략이 더 적합하다"고 부연했다.

그렇다고 병용 전략이 모든 환자의 답은 아니다. 파시 교수는 "타그리소 단독요법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인 환자군이 분명 존재한다"며 "종양이 흉부에 국한되거나 엑손 19 결손을 가진 경우, 단독요법으로도 높은 반응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령 환자나 전신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항암화학요법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단독 전략이 더 적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FLAURA2, 글로벌 치료 지침의 새 장 열어

FLAURA2 결과는 주요 국제 가이드라인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파시 교수는 "전체생존 개선은 임상 평가 지표의 골든 스탠다드이며, 이는 NCCN 가이드라인의 권고 수준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요소"라며 "타그리소 병용요법이 곧 선호 요법(preferred option)으로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 역시 "현재 유럽종양학회(ESMO)에서도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가이드라인 개정이 예상된다"며 "FLAURA2 연구의 OS 데이터는 ESMO를 포함한 주요 가이드라인의 개정의 근거가 될 만큼 의미있는 결과로, 앞으로 폐암 치료 전략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특히 FLAURA2 병용에 포함된 페메트렉시드는 안전성이 우수해, 실제 임상 적용 시 안정감 있는 조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FLAURA2 vs MARIPOSA, 섣부른 비교는 금물

최근 업계에서는 FLAURA2와 MARIPOSA 연구 결과를 나란히 비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두 교수는 이 부분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버드 의과대학 파시 안느 교수
하버드 의과대학 파시 안느 교수

파시 교수는 "FLAURA2 연구는 이미 최종 OS 데이터가 발표된 상태지만, MARIPOSA 연구의 OS 데이터는 아직 최종 결과가 아닌 예측치(projection)에 기반한 상황"이라며 "예측치는 향후 실제 데이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지금 당장 두 연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OS은 임상시험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표이자 골든 스탠다드이기 때문에, MARIPOSA 연구의 실제 최종 결과가 공개되면 그때 두 연구를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도 "대중이나 환자 입장에서는 수치만 보고 치료 전략을 단순 비교할 수 있지만, 연구 설계 배경과 평가 방식까지 고려해야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며 "의료진이 환자에게 단순 수치가 아니라 임상 연구의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 100만원의 치료비, 빠른 임상 적용으로 이어져

한국 진료 현장에서 FLAURA2 치료 전략은 예상보다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세훈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세훈 교수

이 교수는 "올해 6월 정부가 항암제 병용요법 급여 개정을 추진하면서 타그리소 병용 전략의 현실성이 크게 높아졌다"며 "타그리소는 부분급여(5/100)로 인정되고, 병용되는 항암화학요법은 환자가 전액 부담하지만 한 달 약 100만원 수준이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비용 구조는 다른 고가 항암제와 비교했을 때 환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며 "결국 많은 환자들이 접근 가능한 옵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이 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삼성서울병원에서는 급여 개정 이후 석 달간 40명가량의 환자가 FLAURA2 치료법을 선택했으며, 이는 진료실에서 환자가 빠르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환자에게 치료 옵션을 제시하면 대부분 긴 고민 없이 병용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는 생존 연장 효과와 더불어 현실적으로 감당 가능한 비용 구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변화를 "임상 현장에 의미 있는 전환점"이라 평가하며, 앞으로도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통이 핵심…데이터 너머의 의미 전달이 중요해

환자 치료 과정에서 '소통'은 양 교수가 공통으로 강조한 키워드였다. 파시 교수는 "FLAURA2 연구의 최종 OS 데이터는 환자에게 반드시 설명해야 할 핵심 요소"라며 "환자의 가치관에 따라 치료 선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환자들은 단순한 수치보다는 의료진이 전달하는 설명을 통해 치료 전략을 이해한다"며 "이번 데이터는 설득력 있는 근거로, 진료실에서 설명 시간이 다소 길어지는 부담은 있겠지만 의료진에게도 환자들에게도 행복한 고민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타그리소 단독요법이 95점짜리 전략이었다면, FLAURA2 병용요법은 98점에 해당하는 한층 진일보한 결과"라며 "치료 옵션이 다양해진 만큼 환자 선택 과정은 더 복잡해졌지만, 이는 곧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안할 수 있는 기회이자 행복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생존 연장과 삶의 질, 두 축을 동시에

이날 두 교수는 공통적으로 "치료의 최종 목적은 단순히 생존 기간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파시 교수는 "생존 연장은 분명 중요한 가치이지만, 환자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똑같이 중요하다"며 "병용 전략을 적용하더라도 환자의 일상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독성 관리를 통해 치료와 삶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 역시 "실제 임상에서 환자들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사느냐'를 묻는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FLAURA2 치료 전략은 단순히 4년 생존이라는 수치로만 해석될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을 설계하는 데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WCLC 2025에서 발표된 FLAURA2 연구의 최종 OS 데이터는 EGFR 변이 폐암 치료에 있어 새로운 표준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자리매김했다.

두 석학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단독이든 병용이든 정답은 없으며, 환자의 삶의 방식과 선호를 존중하는 맞춤형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타그리소를 중심으로 한 병용 전략은 앞으로도 진화할 것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생존 기간 연장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점에서 두 교수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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