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염 걱정에 치료 포기?…이대로면 '본말전도'
"문진 없는 비만약 처방은 '의료'가 아닌 '소비'"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 사용이 급증하면서 오남용과 부작용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의료계는 과도한 우려를 경계했다. 치료 효과가 입증된 약인데도 일부 과장된 공포와 부정확한 정보가 환자의 접근성을 되레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GLP-1 비만치료제의 오남용 실태와 안전성 우려' 심포지엄에서 집중 제기됐다. 대한비만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자리에는 학회 관계자, 정부 관계자, 언론계 전문가가 모여 위고비 사용의 현황과 해법을 논의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의료계는 '비만은 단순한 외형 문제가 아닌, 만성적이고 재발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GLP-1 계열 치료제의 '명과 암'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시에 무분별한 처방에 대한 의료계의 자정 노력도 강조했다. 비대면 진료를 통해 문진이나 상담 등 의학적 판단 없이 약이 쉽게 유통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우려다.

의료계는 위고비와 같은 전문의약품이 의학적 판단 없이 소비 중심으로 유통되는 현상은 '의료'가 아닌 단순한 '거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적정 사용을 위한 진료 기반의 처방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비만학회 허양임 언론홍보이사(왼쪽)와 박정환 정책이사는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GLP-1 비만치료제의 오남용 실태와 안전성 우려' 심포지엄에서 위고비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경계했다(ⓒ청년의사).
대한비만학회 허양임 언론홍보이사(왼쪽)와 박정환 정책이사는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GLP-1 비만치료제의 오남용 실태와 안전성 우려' 심포지엄에서 위고비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경계했다(ⓒ청년의사).

"필요한 환자가 약을 못 쓴다"…의료계의 경고

"급성 췌장염은 고령, 비만, 당뇨, 흡연 등 다양한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고, 대부분은 경증입니다. 망막병증 역시 일부 당뇨병 환자의 혈당이 급격히 떨어질 때 생기는 특수한 상황이지, 일반 환자에게서 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비만학회 허양임 언론홍보이사(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는 위고비의 중대한 부작용으로 알려진 급성 췌장염과 망막병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허 이사는 "이들 부작용은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것으로, 케이스 리포트 수준"이라며 "지나친 부작용 공포가 의료적으로 적절한 치료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고비는 단순한 체중 감량제가 아니라,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입증된 대사질환 치료제입니다. 일부 환자에게는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선택지임에도, 부정확한 정보로 접근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위고비는 최근 비만치료제로 승인된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약물로, 평균 체중의 15%, 일부 환자에선 20% 이상 감량 효과를 보여 '기적의 비만약'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급성 췌장염이나 실명을 부르는 망막병증 등 중증 부작용 사례가 해외에서 보도되며 공포가 확산됐고, 국내에서도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허 이사는 "비만은 단기 약물치료로 끝나는 병이 아니라 생활습관 개선, 식이요법과 병행이 필요한 만성 질환"이라며 "모든 약은 부작용이 존재하지만, 효과가 이를 상회하기 때문에 처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문가의 판단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만 인식 개선 및 국내 맞춤형 기준 필요해

두 번째 발표를 맡은 대한비만학회 박정환 정책이사(한양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고, 이를 개인의 책임이나 나태함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크다"며 "정확한 질병 인식을 바탕으로 한 정책 수립과 맞춤형 연구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는 특히 현재 위고비의 처방 기준이 'BMI 30 이상' 또는 'BMI 27 이상 + 동반질환'이어서 실제 비만 진단 기준과 불일치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비만 진단 기준 'BMI 25 이상'과 위고비 처방 기준이 달라 '그레이 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최대용량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연령, 성별, 허리둘레, 대사 상태 등 개별적 요인에 따라 맞춤형 감량 목표와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인구 집단에 최적화된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국내 부작용 데이터도 체계적으로 수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이사는 비만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주장하며 "급여 체계 밖에서는 적정 사용 여부에 대한 감시와 평가가 어렵다. 건강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며 경제적 여건에 따른 치료 불균형은 사회적 불공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부작용, 국제 임상시험과 유사…불법 유통 단속 강화할 것"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 김영림 연구관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 김영림 연구관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 김영림 연구관은 "현재까지 위고비 사용과 관련해 보고된 이상반응 사례는 대부분 임상시험에서 이미 확인된 수준의 위장관 장애에 해당한다"며 "위고비가 출시된 지난해 10월 이후 집계된 이상사례는 총 143건"이라고 밝혔다.

다만 "자발 보고된 이상반응 사례에서 약물과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판단하기는 어렵고, 향후 더 많은 자료와 심도 있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을 통한 비정상적 유통 경로에 대해서는 "불법 판매 및 광고 행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모니터링 중이며,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비만 치료제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의료인과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며 "정보 전달 강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한편, 비만학회는 이번 심포지엄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제약사와 협력해 안전 사용 가이드라인 수립 ▲모니터링 및 이상반응 보고 체계 강화 ▲환자·의료진 대상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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