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학회, '세계 비만의 날' 맞아 비만병 치료 중요성 강조
비만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의료적 접근이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인식하고, 비만 치료와 관리의 체계적인 개선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대한비만학회(이하 학회)는 지난 4일 '세계 비만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 임상적 비만병 실태 및 사회경제적 부담-효과적 관리를 위한 정책적 대응 전략'을 주제로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세계 비만의 날(매년 3월 4일)'은 2015년에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와 세계비만연맹(World Obesity Federation)에 의해 제정된 날로, 비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촉진하고, 예방과 치료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이다. 올해의 캠페인 주제는 'Changing Systems, Healthier Lives: 제도적 변화를 통한 더 건강한 삶'으로, 비만을 유발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김민선 이사장(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은 개회사를 통해 "비만병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의료적 접근이 필요한 질환이자, 신체 기능의 이상을 유발하는 만성질환 그 자체"라며 "우리는 이제 비만을 여러 장기에 기능 장애를 동반한 '비만병'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김 이사장은 "비만 치료 대상을 명확히 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의료 환경 개선과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비만 치료 급여화 확대, 의료진 교육 강화, 질환 데이터 통합 관리 등을 통해 보다 체계적인 비만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상적 비만병', 새로운 진단 모델의 도입
이날 발제를 맡은 이준혁 대외협력정책간사(을지의대 가정의학과)는 2025년 1월 국제 학술지 란셋(Lancet)에 발표된 새로운 비만 진단 및 관리 모델을 소개하며, 기존의 체질량지수(BMI) 중심의 평가 방식에 대한 한계를 지적했다.
이 간사는 "과거에는 비만을 BMI를 기준으로 판단했으나, 이 접근법은 개별 환자의 건강 상태나 장기 기능 저하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지속됐다"며 "비만을 단순히 다른 질병과 연관된 현상이나 위험인자가 아닌, 기관 기능의 변화를 유발하고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성질환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란셋 보고서는 비만이 단순히 체중 증가나 지방 축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추신경계, 호흡기, 심혈관계, 대사, 간 및 신장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존의 BMI 중심 평가 방식을 넘어 임상적 근거에 기반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중심으로 비만을 진단한다. 첫째, 과도한 체지방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BMI 외에도 DEXA(이중에너지 X선 흡수법), 생체전기저항분석(BIA), 허리둘레, 허리-엉덩이 비율 등 다양한 측정 방법을 활용한다. 둘째, 주요 장기의 기능 장애와 일상 활동 제한 여부를 기준으로 '임상적 비만병 전단계'와 '임상적 비만병'을 구분한다. 전단계는 과도한 체지방이 있으나 아직 기능 장애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고, 임상적 비만병은 여러 기관에 장애를 일으켜 삶의 질을 저하시킨 상태를 의미한다.
이준혁 간사는 "임상적 비만병의 개념은 비만 관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며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를 통해 개별 환자 상태에 맞는 치료 전략을 세우고, 필요하면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비만 관련 합병증을 줄이며 전반적인 건강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만병을 만성질환으로 보고, 공정한 치료 접근성과 낙인 완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함께 이루어질 때 건강한 사회 환경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인의 73%, "비만 관리 책임 개인에게 있어"
학회는 이날 의료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비만 진료 및 관리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2025년 2월 7일부터 12일까지 의료진 404명과 과체중 이상(BMI 23 이상)인 만 20~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비만병 치료와 관리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정책적 과제를 탐색하기 위해 실시됐다.
조사 결과, 의료진의 90%는 비만 치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95%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실제로 비만 치료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의료진은 68%에 그쳤다. 또한, 83%는 비만 치료제가 효과적이라고 평가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처방하는 비율은 63%에 불과했다. 의료진이 비만 치료에 소극적인 이유로는 높은 치료비와 적절한 상담수가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반면, 일반인 응답자의 경우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낮았다. 응답자의 28%만이 BMI 25 이상을 비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63%는 비만이 개인의 의지로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또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고 인식한 비율은 38%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족함을 보여준다.
또한 일반인의 78%는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병원을 방문해 비만 치료를 시도한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높은 치료비와 약물 부작용에 대한 우려였다.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 비율은 25%, 의료진으로부터 비만 관련 차별을 경험한 비율도 15%에 달했다.
이날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허양임 언론-홍보이사(차의과대 가정의학과)는 "특히, 비만 예방의 가장 주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질문에서, 일반인 응답자의 73%가 '개인의 노력과 선택'이라고 답했다"면서 "비만 관리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인식이 여전히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그림).
무엇보다 의료진(68%)과 일반인(60%) 모두 비만 치료에 대한 급여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급여화가 필요한 이유로 '환자의 비용 부담 완화'와 '만성질환 예방 효과'를 주요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현재 비만 치료제 처방 중단율은 44%로, 2022년 대비 증가했으며, 이는 환자들의 '비용 부담'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비만 치료의 임상적 필요성과 일반인의 인식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제안들이 논의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비만 관련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사회경제적 비용 산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비만 치료를 위한 전문 의료 인력 및 협력 체계가 부족하고, 의료진의 진료수가가 적절히 책정되지 않은 문제도 함께 논의됐다.
학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학 연구와 일차의료 중심의 포괄적인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만 관리에 대한 종합 법률 제정을 통해 전문가와 보건당국이 협력해 장기적인 비만관리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비만 진료 및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비만 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민선 이사장은 "오늘 간담회에서 제언한 정책 과제를 바탕으로, 정부가 비만 관리법 제정 및 종합 관리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학회가 적극적으로 앞장서 나가겠다"고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