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선영 교수, 신약 병용요법 등장으로 심화된 현 급여제도의 맹점 지적
최근 4기 위암 1차 치료 분야에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가 연이어 등장하며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지만, 이런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국내 환자들은 급여 사각지대에서 신약 사용에 제한을 받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항 PD-1 면역항암제와 클라우딘 18.2(Claudin 18.2)' 표적항암제의 등장으로 최근 국내 4기 위암 환자의 1차 치료 지형이 재개편됐다.
HER2 양성 환자라면 PD-L1 발현 여부에 따라 음성에선 기존 플루오로피리미딘계 및 백금 화학요법과 트라스투주맙 병용요법을, 양성에선 여기에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까지 더한 3제요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HER2 음성 환자라면 PD-L1 발현 여부와 상관 없이 기존 플루오로피리미딘계 및 백금 화학요법에 '키트루다' 혹은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 병용요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만일 환자가 클라우딘 18.2 양성이라면 면역항암제 대신 '빌로이(성분명 졸베툭시맙)' 병용요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사항에 따른 분류다. 현재 국내 4기 위암 환자들이라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설정한 급여기준에 따라 1차 치료 전략이 좀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먼저 HER2 양성 환자들은 아직 키트루다를 사용하기 힘들다. 키트루다 병용요법이 급여 적용 전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치료법인 '화학요법과 트라스투주맙' 2제 병용요법을 사용해야 한다. 허가사항에 따라 환자 본인분담률 100%로 치료를 받을 순 있지만, 이 경우 기존에 급여가 적용되고 있던 화학요법과 트라스투주맙 병용요법까지 비급여로 전환되기 때문에 환자의 치료비용 부담은 더욱 커진다.
이 같은 상황은 HER2 음성 환자에서도 동일하다. 현재 옵디보 병용요법에 급여가 적용되고는 있지만, 급여기준에 따라 PD-L1 'CPS 5 이상'인 환자에서만 유효하다. 결국 'CPS 5' 미만인 환자들이 옵디보 병용요법을 쓰고 싶으면 기존에 급여 적용되는 화학요법까지 전부 본인이 부담해야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국내에서 허가 받은 빌로이 병용요법도 마찬가지다. 클라우딘 18.2 양성을 진단 받은 환자가 빌로이 병용요법을 쓰려면, 화학요법까지도 비급여로 전환된다.
최근 대한암학회는 'CPS 5' 미만인 환자들이 옵디보 병용요법을 쓸 경우 기존 화학요법 급여는 그대로 두고 옵디보 비용만 환자 본인이 100% 부담할 수 있도록 급여 확대 민원을 넣었지만, 지난 8월 말 열린 6차 암질환심의위원회는 이마저도 거절한 상황이다.
현재 대한암학회 이사장이자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위암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는 지난 9월 열린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 2024) 현장에서 이 같은 급여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라 교수는 다른 암종과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했다. 일례로 최근 담도암에서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가 환자 본인부담 100% 조건 하에 '젬시타빈/시스플라틴(이하 'GemCis')'과 병용할 수 있도록 풀린 것을 빗댄 것이다.
담도암뿐만 아니라 실제 기존 치료법에 신약이 추가될 경우 급여가 적용되고 있는 기존 치료법은 그대로 두고, 신약만 환자 본인부담 100%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사례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HER2 양성 조기 유방암에서 '캐싸일라(성분명 트라스투주맙엠탄신)' 병용이나 다발골수종 1차 치료에 '다잘렉스(성분명 다라투무맙)' 병용이 그 대표적인 예다.
라 교수는 "암종간 형평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신약 병용에 대한 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회가 나서 앞으로도 계속 정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라 교수는 "HER2 양성 환자에서 키트루다 병용요법이 특히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HER2 음성의 경우 면역항암제 옵션에 키트루다와 옵디보 2개 옵션이 있지만, HER2 양성 환자에서는 키트루다가 유일한 면역치료 옵션이라는 것.
당시 ESMO 2024에서는 HER2 양성 환자에서 키트루다 병용요법을 평가한 3상 임상 KEYNOTE-811 연구의 전체생존(OS) 데이터가 발표돼 주목 받았는데, 라 교수는 해당 데이터를 평가하며 "이제 HER2 양성이면서 PD-L1 양성인 환자에서 트라스투주맙과 펨브롤리주맙은 필수가 됐다"며 "이 두 약을 쓰지 않는다면 그건 의료적으로 옳지 않은 선택이며, 환자에게 큰 손해"라고 강조했다.
실제 KEYNOTE-811 연구는 HER2 양성 환자에서 면역항암제를 평가하고 OS 데이터까지 얻는 최초이자 유일한 연구로 꼽힌다. 이번 학회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PD-L1 'CPS 1 이상'인 환자군에서 키트루다 병용군의 OS 중앙값은 20.1개월, 대조군은 15.7개월로 나타나 기존 화학요법에 더해 키트루다를 병용하는 것이 환자의 사망 위험을 21% 낮춘다는 것을 입증했다(HR 0.79).
다만 HER 양성 환자에서 키트루다 급여는 현 급여제도의 맹점과 맞물려 좀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1년이 훌쩍 넘도록 정체돼 있는 키트루다의 급여심사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
한국MSD는 작년 6월 그 동안 늘어난 키트루다 적응증을 한꺼번에 급여 신청해 심사를 받았지만, 아직 국내에는 적응증별 약가제도 등 다적응증 약제를 수용할 수 있는 급여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사실상 일괄 급여 신청은 실패로 돌아갔다.
암질환심의위원회는 한국MSD가 신청한 15개 적응증 중 임상적 니즈가 가장 높은 일부 적응증을 추려 심사했지만, 그마저도 지난 4월 3차 회의에서 '급여기준 미설정'으로 결론냈다. 당시 암질심은 '재정분담(안) 추가 제출 시 급여기준 설정 여부를 재논의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10월이 된 현재까지도 해당 논의에는 진전이 전혀 없는 상황.
이런 가운데 한국MSD는 키트루다의 4기 위암 1차 치료 적응증 2개(HER2 양성 및 HER2 음성)을 추가적으로 급여 신청한 것이다. 앞서 신청한 안건들이 암질심 문턱도 넘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적응증을 추가로 신청한 것이다.
한국MSD 측은 "정부가 새롭게 추가 신청한 2개 위암 적응증을 현재 심사 중인 안건에 합쳐줄지 여부도 전혀 알 수 없다"며 깜깜이 심사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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