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비자 65% 의대 증원 찬성, 42% 2천명 과학적 근거 '부정적'
의료계 "의료소비자 원하는 대책, 원점부터 논의해야"
의료소비자 측 "정부-의료계, 의료소비자에 대한 교육 필요"
政 "의료계,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라…의료소비자 교육도 추진"
의정갈등이 7개월 째 이어지자, 의료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의료개혁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의료소비자들이 모여 원점부터 논의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의료계는 의료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고 했으며, 의료소비자들은 정부와 의료계에 의료소비자에 대한 교육과 정보 공유를 요청했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녹소연)·한국YWCA연합회·대한가정의학회는 지난 23일 국회에서 '의료소비자가 제안하는 의료개혁방안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녹소연이 회원과 일반인 총 608명을 대상으로 한 ‘의료소비자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설문은 지난 7월 8일부터 17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설문 결과, 의료 소비자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했지만 2,000명을 늘리는 게 과학적 근거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또 정부 정책에 의료소비자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봤다.
응답자의 65.6%는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한다고 했다. 다만 정원을 2,000명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38.2%만이 찬성했으며 37.0%는 반대, 24.8%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2,000명 증원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42.4%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30.6%는 긍정적이었으며 27.0%는 ‘보통’이었다.
정부와 의료계 대응에 대해 물었을 때에는 의료계에 조금 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의료소비자 중 69.4%는 교수 휴진 등 ‘교수 집단 행동’에 반대했으며, 전공의 사직 등 ‘전공의 집단 행동’에도 69.4%, 대한의사협회 대응 방식에 대해서도 68.4%가 부정적이었다. 보건복지부 대응 방식에 대해선 47.2%가 반대했으며, ‘보통’이라는 답변은 33.7%였다.
의료 소비자들은 의료기관 이용 시 가장 불편한 사항을 4점 척도로 선택했을 때, 심야(오후 10시부터 오전 8시) 외래 의료 이용이 평균 2.79점으로 가장 불편한 사항으로 꼽았다. 이어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응답은 평균 2.61점이었으며 ▲병원 입원 이용(2.52점) ▲병·의원 방문을 위한 교통 상태(2.44점) ▲병·의원 외래 이용(2.34점) 순이었다.
또 20.4%가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어 ▲어려운 예약(14.5%) ▲ 긴 대기시간(11.7%) ▲불필요한 검사(6.6%) ▲의료비(3.3%) 순으로 이어졌다.
의료소비자들은 건강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의료인이 아닌 주로 포털사이트와 TV, SNS에 의존했다. 건강 관리에 필요한 정보 획득 경로를 물었을 때, 27.3%가 포털사이트라고 답했으며 이어 TV(22.2%), SNS(10.9%) 순이었다. 반면 의료인에게서 정보를 얻는다는 응답은 5.6%에 불과했다.
복지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높았다. 복지부가 정책을 정할 때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지 여부를 묻자, 과반이 넘은 51.5%가 부정적으로 답했으며, ‘보통’은 31.3%, 긍정적인 답변은 17.2%에 불과했다.
설문 결과를 발표한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이주열 교수는 “의료개혁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의료개혁의 목표를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며 “국민은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 건강을 관리해 건강하길 바란다. 또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나 불편 없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현재 정부 정책은 예방 쪽에는 관심이 적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 소비자 중심의 의료개혁 목표로 ▲개인 의료비 감소 ▲의료접근성 향상 ▲과잉진료와 불필요한 검사 축소 ▲자기건강관리 능력 향상을 제시했다.
"정부-의료계-의료소비자, 한 테이블에 앉아 문제 풀어가야"
이어진 토론에서는 의료소비자와 의료계가 의료개혁을 바라보는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했다. 또한 의료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의료개혁안에 대한 정부, 의료계, 의료소비자 간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강희경 비상대책위원장은 의료인의 민·형사 소송에 대한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강 위원장은 “의료계 내 민·형사 소송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의료 특성상 진료 결과가 항상 만족스럽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며 “최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발의한 응급의료에 대한 의료사고 피해 구제와 관련해 발의한 법안 내용을 모든 의료행위의 결과에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의사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료해 의료분쟁이 감소할 것이며 필수의료 의사들도 현장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 의료는 개발도상국 시절 만들어진 체계를 토대로 정권과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으로 땜질되며 지금에 이르렀다”며 “이제라도 의료소비자와 공급자, 정부가 한 테이블에 앉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어떻게 풀어갈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 모든 논의의 과정 또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박종혁 이사는 의료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의료소비자가 진정 원하는 의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된 내용이 없다"며 "예를 들어 주치의 제도의 경우 관료 입장에선 효율적이다. 그러나 의료소비자 입장에선 의료선택권을 제한당할 수 있다. 과잉진료에 대한 우려도 나왔는데, 보통 급여 기준을 넘기면 과잉진료라고 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질병을 좀 더 손쉽게 치료할 수 있다면 비급여 치료를 쉽게 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어 “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크게 중요한 이슈는 아니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받을 때 보통 의사 수가 아닌 제때 진료를 잘 받을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게 소비자 입장”이라며 “의료소비자가 정말로 원하는 부분에 대해 원점부터 고려해야 한다. 의사가 잘나서가 아니라 의료현장에 있기에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소비자 측에서도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송기민 보건의료위원장은 정부가 의료개혁으로 추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서 피의자가 과실이 없음을 증명하도록 입증 책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또 국가가 의료사고 피해자에 배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의료행위 자체에는 내재된 위험이 있다. 그러나 당연지정제로 의사는 환자를 거부할 수 없으며 수가도 국가가 지급하고 있다. 공적인 부분이 큰 것”이라며 “그렇다면 의료행위 수가 내 위험도로 산정한 부분을 뺀 후 그 돈으로 정부가 의료사고에 대해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녹소연 유미화 상임대표는 의료소비자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의 교육을 강조했다.
유 대표는 “정부도 의료계도 의료개혁을 논하면서 의료소비자에게는 묻지 않는다. 그러면서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고만 한다”며 “의료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유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재정이 고갈되고 있다는 데 의료소비자에게 얼마나 보험료를 내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지도 알려줘야 한다. 의료소비자에 투자하고 양성하라”고 했다.
이에 정부는 “이제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며 의료계에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참여를 당부했다. 또한 의료소비자 교육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의료개혁추진단 강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의료계는 의개특위의 논의에 ‘답이 정해져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판에서 치열하게 논쟁해 결론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며 “과거처럼 무늬만 특위가 되지 않도록 성과를 내야 하며, 그 안에서 의료계와 의료소비자 모두 솔직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돼야한다”고 했다.
이어 “예방과 의료소비자 교육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있다”며 “현재 당장 급한 중증·응급진료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의개특위의 종료 시점이 없는 만큼 예방과 의료소비자 교육도 함께 다루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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