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규모 축소 발표 이어 교수 사망 소식, 의료계 뒤흔들어
필수과 교수들 사직 움직임 ‘완강’…대학병원 ‘셧 다운’ 우려도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 “한 달간 환자들 많이 정리…사직한다”
전의교비 최창민 비대위원장 “남은 해결책, 원점 재논의 뿐”

전공의 사직 이후 병원을 지켜오던 필수과 교수들이 사직을 결심했다. 
전공의 사직 이후 병원을 지켜오던 필수과 교수들이 사직을 결심했다.

전공의 사직 이후 병원을 지켜오던 필수과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000명을 최대 50% 범위에서 줄여 뽑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안을 발표한데 더해 당직을 서던 교수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이 교수 사회를 뒤흔든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에서 환자를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밤샘 당직에도 눈을 부비며 외래 환자 치료에 매달려 왔지만 앞서 세상을 떠난 동료 교수들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이대로 버티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부의 대책 없는 대응에 오히려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세게 왔다. 한 마디로 ‘체념’했다.

이에 지난달 25일 제출한 사직서가 오는 25일부터 효력을 갖게 되면서 교수들의 대학병원 이탈이 현실화 될 전망이다. 오히려 필수과 교수들의 사직 움직임은 더 완강하다. 이미 의료대란이지만 이대로라면 상급병원의 중증환자 진료가 ‘셧 다운’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의료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는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정말로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한숨 쉬었다. 최 교수는 “의료현장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의대생들과 전공의들도 지금은 체념한 것 같다”면서 “한국의료와 정부에 대한 체념”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정부는 전공의 없이 전문의 중심 의료로 가면 되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며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당장 할 수 없다는 걸 누구나 다 안다. 전공의들의 인력 규모나 그들이 현장에서 쏟아 부었던 노력을 다른 의료로 대체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안다. 지금도 그 파급력을 현장에서 겪고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지금 사태를 4~5월 안으로 어떻게든 막아보자며 간절함으로 사직서를 냈지만 정말 나라를 흔드는 고집”이라며 “사직서를 내고 당장은 환자들 때문에 (병원을) 못 나가겠지만 사직을 결심한 교수들은 지난 한 달 간 많이 정리했다. 나도 사직할 수 있는 준비를 많이 해놨다”고도 했다.

필수과 교수들의 사직 결심은 확고해졌다. 해외 어느 나라를 나가서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박살”난 상황에서 교수직 유지가 의미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막무가내 대응에 피해는 환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교수들의 사직 결심은 확고하다. 특히 지금 완강하게 사직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필수과 교수들”이라며 “간당간당하게 버티고 있던 이들이 정부 대응과 환자들로부터 받는 소송, 급기야 동료 교수의 사망 소식이 들리니 삶을 갈아 넣어가며 버티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상급병원에서만 치료 할 수 있는 환자들이 있는데 어렵고 급한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고 있다. 이미 신규 환자를 막은 지 오래됐다. 이 환자들을 어떻게 하겠나. 이미 의료대란”이라며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 힘들다. 모두가 괴로워한다. 슬프고 답답하다”고 했다.

최 교수는 “책임감으로 그 많은 환자들을 진료했던 교수들이 사직서를 냈다. 정부가 이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며 “정말 필수의료가 하고 싶고, 수술한 다음 좋아지는 환자들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그럼에도 사직서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젠 국민들이 나서줘야 한다”고도 했다.

분노 키운 정부 발표…“남은 건 원점 재논의”

스러져간 故 고원중 교수 떠올라 “괴로움 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최창민 교수도 사직을 결심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의료대란에 ‘번 아웃’된 의료현실을 보며 5년 전 세상을 떠난 선배인 결핵·비결핵항산균(NTM) 분야 권위자였던 고원중 교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최 교수는 “분당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의 부고를 듣고 고 교수님이 사망하셨을 때가 생각났다”며 “고 교수님이 돌아가셨을 때가 지금의 내 나이다. 번 아웃 되고 꽤나 힘든 상황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가족들이 떠올랐다”며 “고 교수님은 아직까지 산재 인정도 못 받고 있다. 그런 걸 보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교수는 교수는 포기하지만 환자는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학병원 교수직에서 물러나지만 임상으로 돌아가 필수의료 환자들 진료를 계속 이어 나가겠다고도 했다.

최 교수는 “굳이 이렇게 교수를 계속 하고 있어야 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계속 하는 게 옳은 것 같지도 않다”며 “그 동안 시간을 되돌아볼 시기가 된 것 같다. 교수를 포기하고 임상으로 가 환자를 보자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의대 정원 증원 절차를 중지한 ‘원점 재논의’라고 했다. 정부를 향한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단순히 의대 증원 규모를 줄이는 것만으로 의대생과 전공의에 이어 사직을 결심한 교수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려울 거라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정부가 신뢰를 잃었다.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가 있고 확신을 갖는다면 1년 정도 유예해 의대생과 전공의 마음을 돌려 보겠다는데 어떻게든 사태를 무마해 넘어가려 하니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며 “원점 재논의밖에 해결책은 없다. 사회적 협의체가 아닌 의정협의체를 만들어 논의 하겠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의대생과 전공의들 없이 살아나가야 하는데 교수들도 답답하다.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다”며 “민법이 보장된 교수들에게 정부가 어떤 명령도 내리지 못한다. 이렇게 해결이 안 될 게 분명하다면 교수로서 모든 걸 다 포기하는 게 책임감 있는 모습인 것 같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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