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욱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많은 사람이 희귀질환 지정과 희귀질환 산정특례를 혼동한다. 두 제도 모두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그 목적과 운영 방식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희귀질환 지정이 질병의 '이름’을 목록에 올리는 것이라면, 산정특례는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지원’이라는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희귀질환 지정은 희귀질환관리법에 근거하여 이뤄진다. 유병인구 기준(2만명 이하)과 질환의 중증도, 진단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희귀질환을 지정한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목록에 추가하는 것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해당 질환에 대한 통계를 집계하고, 연구 및 정책 개발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즉, 희귀질환 지정은 해당 질환에 대한 '인지’와 '관리’의 시작을 의미한다.

유한욱 분당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유한욱 분당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반면, 산정특례는 건강보험법에 근거하여 운영되는 제도다. 이는 희귀질환을 포함한 중증 질환(암, 중증치매, 중증화상, 결핵,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중증외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액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경제적 지원책이다. 산정특례 대상질환으로 등록되면, 환자는 해당 질환으로 인한 진료 시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을 대폭 경감 받게 된다.

희귀질환 지정은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가 주관한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희귀질환을 지정하고, 그 결과를 공고한다. 산정특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체적으로 운영한다. 그러나 실제 대상 질환을 확대하거나 새로 지정할 때에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등 관계 기관과 공동으로 검토하는 협력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정특례 대상 질환의 등록 및 관리, 의료비 지원 등의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희귀질환지정제도는 2015년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체계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고 산정특례제도는 2009년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사실 희귀질환의 지정은 질병관리청의 의료비 지원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질환들을 지정하면서 2001년도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고셔병’이라는 희귀질환 치료제가 연간 수억원에 달한다 것이 알려지면서 국가적인 의료비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산정특례제도로 정착하게 됐다.

희귀질환으로 지정 받기 위해서는 환자나 의료진이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정보-희귀질환지정신청’ 시스템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 신청은 수시로 가능하다. 그러면 여러 단계의 지정 검토 절차가 진행된다. 예를 들면 질환에 대한 기초조사, 자료보완 및 학회 등의 전문가 검토, 유관기관과의 산정특례기준 적합성 논의, 통계청의 검토, 희귀질환전문위원 및 관리위원회 심의 후 공고하게 된다.

산정특례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심의 및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희귀질환 환자를 진단한 담당의사는 확진 및 등록기준 충족여부를 확인 한 후 건강보험 산정특례 등록 신청서를 발급한다. 환자가 서명한 등록 신청서를 병원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등록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신청서와 전산 내역을 확인한 후 산정특례 등록을 완료하게 된다. 이후 SMS, 이메일, 알림톡 등으로 결과를 통보한다. 산정특례가 적용되는 환자는 해당 희귀질환 및 그 합병증 치료를 위해 진료받을 때 5년간 산정특례 혜택(급여항목의 본인부담률 10%)을 받게 된다.

이렇게 장황하게 두 제도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게 된 이유는 필자가 오랜 기간 동안 희귀질환관리위원회와 산정특례위원회의 위원 또는 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많은 갈등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희귀질환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산정특례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희귀질환 지정은 질병의 희소성과 진단 기준 등을 고려하는 반면, 산정특례 적용은 치료 효과, 의료비 부담 정도, 사회적 형평성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따라서 특정 질환이 희귀질환으로 지정됐다 하더라도, 산정특례 적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임상현장에서의 현실은 희귀질환으로 지정되면 대개 산정특례의 혜택을 받게 되고 환자와 의료진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심지어는 질환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의학적 문제까지 산정특례의 적용을 확대해 달라는 도덕적 해이 현상까지 발생한다. 2025년도 현재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으로 지정된 질환의 종류는 1,300여 종이다. 또한 산정특례 및 의료비 지원대상이 되는 희귀질환의 종류는 오히려 더 많아서 1,330여 종이다. 최근에는 유전체분석 기술이 발달, 특별한 치료약제가 없는 지적 및 발달 장애의 유전학적 진단이 가능하게 되면서 질환의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향후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지정 심의를 위해 질환들에 관한 문헌자료와 전문학회의 의견을 취합해 전문가 자문위원들과 산정특례제도의 주관기관이라 할 수 있는 건강보험공단 담당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다. 건강보험공단 측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과도한 부담과 다른 질환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가능하면 희귀질환으로 지정하는 질병의 종류를 엄격하게 제한해 줄 것을 암묵적으로 요청한다.

반면에 희귀질환을 진료하는 전문가그룹과 학회에서는 아무리 그 숫자가 많더라도 환자의 수가 희소하고 진단기준이 명확하면 현재 가역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더라도, 통계를 집계하고, 연구(향후 약물개발 및 임상시험 등) 및 정책 개발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귀질환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회의 내내 주장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들이다.

양 위원회에 모두 관련된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의견을 존중한다. 또한 이런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우선 국가에서 관리하는 희귀질환의 숫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생색내기(?) 홍보보다는 희귀질환지정제도와 산정특례제도의 차이를 국민들과 의료진들에게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 환자와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들여 여러가지 서류작업을 통해서 기껏 희귀질환지정을 받았는데 의료비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희귀질환으로 등록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산정특례가 되지는 않더라도 진단받기 위해 소요된 유전자 진단 비용 정도를 소급해 주는 방안도 있다. 최근에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과제에서 진단 받는 환자들이 많아 이들을 제외하면 국가의 재정부담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희귀질환들은 재활, 인지치료들이 필요한데 비급여 부분이 대부분이어서 환자 가족들의 부담이 크다. 이러한 것들의 급여화를 점차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산정특례제도와는 별도로 희귀질환의 연구와 국내외에서 임상시험중인 고가의 약품을 사용하기 위한 특별한 기금의 마련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산정특례제도는 희귀질환 환자 및 중증 질환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자리 잡았으나, 관리 체계의 미비, 비급여 제외, 질환 별 형평성 문제 (희귀질환은 질환의 종류는 많고 환자수는 적은 특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등 여러 한계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 완화와 재정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세밀한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청년의사 자매지 코리아헬스로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유한욱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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