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조차 지키기 어려운데 공공의대가 해결책 되겠나"
의대 신설 대신 지역의료 현실 맞춘 수련 제도 개선 제안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약으로 공공의료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지만 오랫동안 지역·공공의료 분야에서 일한 의사들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공공의대가 '해결책'으로 뜰수록 수 십 년간 이어진 문제는 가려지기 때문이다.
순천의료원장을 지낸 김대연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장은 지난 19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연 '공공의대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 포럼 토론 패널로 나와 "봉사하고자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대학 진학 시점에 공공의대가 있었다면 진학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20년 넘게 공직과 공직 유관 분야에서 의사로 일하면서도 일한 만큼 대우도 보람도 없어 몸서리치도록 가슴 아프다"고 털어놨다.
김 원장은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는 처음부터 금전적인 면을 포기하고 환자를 돌보겠다는 사명감으로 임한다. 하지만 이들이 자꾸 처량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다. 어디에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며 "이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떠난다. 공공의료를 하는 사람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순천의료원장 재직 시절을 들어 "순천의료원은 병상이 지역 수요에 비해 많았다. 민간 의료기관과 경쟁해야 하는데 투자도 공격적으로 할 수 없고 (병원 운영) 수익보다 공익성부터 요구받았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입원 환자를 소개하고 코로나19 대응에 나섰던 의료원들이 이제 지역 환자가 찾지 않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민간 의료기관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민간에는) 금전적 보상을 해주고 민간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공공의료기관은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코로나19 진료에서) 그대로 빠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에서 "지역에 공공의대와 공공병원을 새로 세우고 공공의료 하는 의사를 키운다고 실질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면서 "이미 대만과 일본 공공의대 모델이 기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들의 실패를 우리까지 나서서 경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50년 지나도 여전한 지역의료…'멀티 플레이어' 양성을
이날 포럼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조백환 진안군의료원장은 지역의료 문제 해결책을 공공의대 신설이 아닌 수련 제도 개선에서 찾았다. 과별 전문의와 별개로 지역의료 현장에 더 맞는 '멀티 플레이어'를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북대병원 교수직 은퇴 후 진안군의료원으로 부임한 조 원장은 "50년 전 수련의 시절 무의촌 파견 의사로 근무한 곳에 돌아와 일하고 있다"면서 "50년이 흘렀는데도 지방의 의료 문제는 그대로"라고 토로했다. 수도권 집중이 의사 인력 수급 불균형을 초래했다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병상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도 수도권은 대학병원을 추가로 세워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고 지방은 공공의대를 신설해야 한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외과 전문의인 조 원장은 "수련의 시절 비뇨의학과와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다른 분야 교육을 받은 경험이 전북대병원 장기 이식 분야를 개척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또한 의료원에 피부과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명예교수가 수년간 피부과 전문 지식을 전수해줘 이제 의료원장 일을 하면서 피부과 외래 진료도 큰 무리 없이 담당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방 의료 격차 문제 해결 주체는 국가가 돼야 하며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근본적인 부분을 개선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했다. 수련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되 다빈도 치료나 시술을 집중적으로 익히는" 교육 과정을 운영하자고 했다. 여기 더해 "조심스럽지만 일정 기간 취약지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멀티플레이어 즉, 다과 전문의가 되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공공의대 1~2개는 신설될 것…무조건 반대 능사 아냐"
공공의대 신설 반대가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조승연 전 인천의료원장은 "대선 공약까지 했으니 (이 후보가 당선하면) 어떤 형태로든 공공의대 1~2개는 설립된다"면서 "무조건 반대한다고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처음부터 (공공의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전 원장은 "공공의대 논의도 처음에는 서울의대 같은 국립의대를 공공의대로 전환하자는 논의였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기존 시스템을 전환해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처음부터 공공의대 모델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조 전 원장은 "국립의대는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장학 사업을 한다. 그런데 과연 공공(의료를 지향하는) 마음을 품은 의대생을 키워낼 역량과 의지는 있었느냐. 의대를 다니면서 한 번도 '의사들이 지방이나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지금 (국립의대를 포함해) 40개 의대에서 양성하는 의사 인력 중 사명감을 품고 지역에서 일하려는 의사들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의료계가 (공공의대를) 하면 안 되는 이유 수백 가지를 대지만 정책은 (반대해도) 해야 하는 이유 한두 가지로 된다. 비전이고 미션이기 때문"이라면서 "공공의대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의협과 의료계가 해야 하는 일은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고 (정책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의견을 내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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