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의학회, 의료개혁 과정서 ‘중환자’ 제외 지적
홍석경 이사 “대체인력 없는 지방 ‘번 아웃’에 사직 늘어”
조재화 회장 “질적 도약 이뤄내도록 국가적 투자 必 ”
중환자의료를 담당하는 전문의들이 ‘번 아웃’으로 중환자실을 떠나고 있다. 전공의 사직 이후 인력 충원이 더뎌지면서 이탈 속도도 빨라졌다. 중환자실 의사들은 중환자실 업무 부담은 커지고 있지만 정부가 ‘병상 확충’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늦기 전에 중환자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25일 코엑스마곡 컨벤션센터에서 제25회 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KSCCM-ACCC 2025) 기자간담회를 열고 의료개혁 과정에서 중환자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한 포괄적인 논의가 철저히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홍석경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는 “대학병원은 지난해 2월 이후 수술이 많이 줄고 진료 범위가 축소됐지만 중환자실은 계속해서 운영되고 있다”며 “중환자실은 전공의 인력 의존이 높고 의사가 빠질 수 없는 공간이다 보니 고강도 노동인력이 필요해 교수들이 모두 당직을 서고 있다”고 말했다.
홍 기획이사는 “다른 진료과는 비전이 없어 그만 두는 사람들이 많지만, 중환자실은 더는 버티지 못해서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는 상황이 심각해 3일에 한 번 당직을 섰다. 중환자실은 업무 부담이 커 한 번 당직을 서면 한 숨도 못 잔다”며 “상황은 이런데 대체인력이 없다보니 열악한 지방부터 이탈하는 교수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박성훈 총무이사(한림대성심병원)는 “중환자실은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반면 의료진 일은 더 많다”며 “환자 생명과 직결된 곳이니 콜이 계속 돼 일반병실 당직과는 차이가 있다. 학술대회에 1,200명이 넘게 참여하고 있지만 마음 편히한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특히 중환자의학회는 의료개혁 과정에서 중환자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한 포괄적인 논의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인력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병원마다 ‘최소 기준’만 충족시키는 중환자실 병상 확충만 이뤄지고 있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중환자의학회는 의정 갈등으로 중단된 중환자의료체계 개선 논의가 재개돼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홍 기획이사는 “중환자의학회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중환자실 수가가 많이 인상됐다. 낙후된 수가를 현실화한 이후, 요양병원과 상급종합병원 등 종별 중환자실 등급화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의정 갈등으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환자실 기준은 최소 기준인데 기준 개선 없이 중환자 병실을 늘리자고 한다”며 “인적, 시설, 장비 등 인프라는 최소 기준을 따르기 때문에 (양적으로 늘리는 것에 대해) 걱정이 다. 의료개혁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닌 눈에 띄는 것부터 개혁하다보니 중환자는 배제됐다”고 토로했다.
중환자의학회는 외향적 확장만으로는 선진국 수준의 중환자의료체계의 질적 개선은 담보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중환자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로 ▲전담전문인력 절대적 부족 ▲진료 표준화 미비 ▲다학제 협력 등 한계 등을 꼽기도 했다.
조재화 회장(강남세브란스병원)은 “중환자 진료는 병상과 장비의 숫자로만 해결되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국가 차원의 강력한 정책 개임과 개혁과제가 시급하다”고 했다.
중환자의학회는 개혁 과제로 ▲중환자의료 전담 전문의 인력 양성과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지원 확대 ▲전국 단위 중환자 진료 표준화와 질 관리 체계 수립 ▲다학제 기반 협진과 중환자 재활 연계 포함한 통합 진료체계 구축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중환자의료 정책 수립과 예산 지원 강화 등을 제시했다.
조 회장은 “의료개혁 방향 속에서 중환자의료체계 강화가 제외된다면 앞으로 10년 이상 우리나라 중환자 진료 수준은 지금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중환자의료체계가 단순 병상 수 확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이뤄낼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정책 전환과 국가적 투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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