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과중한 업무…혈액암 치료 최전선이 무너진다
프랑스와 한국의 CAR-T 치료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CAR-T 치료제의 등장으로 혈액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고가 치료제의 도입만으로는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치료 성과는 의료 시스템과 인력, 제도적 기반 위에 세워진다. 이에 본지는 최근 진행된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5) 참석차 방한한 세인트루이스병원 혈액종양내과 카트린 티블몽(Catherine Thieblemont) 교수를 만나 프랑스의 선진화된 CAR-T 치료 환경과 그 속에서 의료진의 역량이 어떻게 집중되고 보호받는지를 살펴보고, 국내 임상 현장에서 마주한 혈액암 치료 인력 고갈과 번아웃 문제를 2편에 걸쳐 조명하고자 한다.

"CAR-T 치료 이후 환자 상태가 안정적인 경우, 프랑스에서는 1차 진료의인 GP가 일정 수준까지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전문의는 재발이나 이상반응 등 고위험 상황에 집중한다. 의료진의 역량과 시간을 가장 필요한 순간에 쓰기 위한 전략이다."

앞서 카트린 티블몽 교수는 CAR-T 치료 이후 환자 추적 관리의 ‘선택과 집중’ 모델을 설명하며 '소브라이어티(sobriety)'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이는 프랑스의 경우 의료진이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진료에만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설계돼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실상은 참담한 수준이다. CAR-T 치료의 전 과정을 혈액내과 전문의가 도맡고 있다. 혈액암 환자가 병원을 찾는 순간부터 치료 후 관리까지 혈액내과 주치의가 전담하는 구조로 환자가 늘수록 업무는 차곡차곡 누적된다.

대한혈액학회가 ICKSH 2025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구조적 격차는 단순한 시스템 문제를 넘어 ‘인력의 양적 격차’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프랑스의 경우 혈액학 전문의 수는 인구 10만 명당 1.02명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0.307명에 불과하다. 단순한 업무량의 차이가 아닌 '구조적 과부하 상태'임을 방증한다.

더욱이 한국은 혈액학 전문의의 절반 이상이 50세 이상으로 인력의 고령화 문제도 수반하고 있어, 그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그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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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로 인해 국내 혈액암 환자 수는 증가 추세에 있는데, 이를 치료하는 전문 인력은 십년 내 절반 이상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인력 부족의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게 뻔한 상황.

실제로 혈액학 전문 인력의 연령 분포는 50세 이상이 혈액내과 전문의의 45%, 소아혈액 전문의의 53%, 병리과 전문의의 49%를 차지하고 있으며, 곧 은퇴를 앞둔 60세 이상도 혈액내과 전문의의 19%, 소아혈액 전문의의 26%, 병리과 전문의의 13%나 차지하고 있다(그림1).

번아웃의 구조: 수가, 소송, 그리고 감정노동

CAR-T 치료는 단순한 약제 투여가 아니다. 환자 교육부터 치료 적합성 평가, 가교요법 유무 판단, 보험 보고 문서 작성 등 행정성 업무가 진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노동은 수가 체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의료진이 법적·행정적 책임을 떠안게 되는 구조도 문제다. 소송이나 삭감에 대한 위험에 상시 노출됨으로써 받는 스트레스로 국내 혈액 전문가들의 치료 의지는 꺽이고 있다.

대한혈액학회가 총 149명의 혈액학 전문의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2.9%는 '의료 소송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74.5%는 '의료 소송이 임상 진료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또한 대한혈액학회 김석진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은 "소송이나 불합리한 삭감 문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혈액학 전문의들 모두가 겪는 문제"라며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밀려오는 자괴감과 피로로 인해 환자 진료에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석진 이사장은 이날 CAR-T 치료의 삭감 문제를 지적하며 "고가의 비용이 드는 만큼 CAR-T 치료 후 삭감이 발생하면, 그 책임과 부담은 오로시 의료진과 병원이 감당해야 한다"며 "정작 환자는 치료 후 일상생활로 복귀해 잘 살고 있는데, 의료진은 남은 삭감 이슈로 고통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세인트루이스병원 혈액종양내과 카트린 티블몽 교수
세인트루이스병원 혈액종양내과 카트린 티블몽 교수

이 같은 국내 의료진의 현실을 들은 티블몽 교수는 같은 임상의 입장으로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환자 상태를 평가한 의료진의 판단을 중심으로 CAR-T 치료 여부를 결정하고, 그 치료의 결과를 DESCAR-T 레지스트리로 검증한다"며 "즉, 결정은 임상의가 하고, 검증은 시스템이 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도입도 못하는 CAR-T 치료제들…치료 격차는 생존 격차로

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 CAR-T 치료 옵션이 현저히 적은 국내 상황도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떨어뜨린다.

현재 국내에서 환자들이 급여로 치료 받을 수 있는 CAR-T 치료제는 '킴리아' 한 종류뿐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예스카타(성분명 악시캅타진실로류셀)'와 '브레얀지(성분명 리소캅타진 마라류셀)'가 앞선 치료 단계에 널리 쓰이고 있지만, 한국에는 도입조차 되지 않았다.

또한 이미 글로벌 시장엔 7개의 CAR-T 치료제가 림프종이나 백혈병, 다발골수종 등에 허가 받아 출시돼 있지만, 국내에 도입된 치료제는 단 2개에 불과하다(표1).

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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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명확하다. 고가 신약에 대한 급여 결정 지연 때문이다. 고가 의약품에 대한 급여 지연은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제약사가 다양한 신규 CAR-T 치료 옵션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실제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혈액학회는 "이런 혁신적 기전의 신약들이 급여 등재 지연으로 임상 현장에서 사용되지 못하는 현실은 환자의 생존 기회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지금은 시스템이 필요할 때

CAR-T 치료는 이미 국내에 상륙했고, 환자들의 삶을 바꾸는 혁신적 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있는 의료진은 점점 지쳐가고 있고, 그들이 기댈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과도한 업무, 부족한 인력, 법적 리스크, 낮은 수가, 그리고 구조화되지 않은 행정 시스템까지. CAR-T 치료를 가능케 해야 할 제도가 오히려 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고가 신약에 대한 급여 지연이 제약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전세계 곳곳에서 CAR-T 치료제들이 허가를 받고 치료에 활용되고 있지만, 한국의 환자와 의료진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이런 치료 격차는 결국 생존 격차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자원의 차이가 아니다. '누가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누가 지지하는가'에 대한 철학의 차이일 것이다.

의료진이 책임지는 구조에서, 의료진을 지원하는 구조로의 전환 없이는 고갈되는 혈액암 전문 인력을 막을 길이 없다. CAR-T를 비롯한 어떠한 혁신 기술도 치료를 시행하는 인력 없이는 버티지 못한다.

의료의 진보는 단순히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이제는 정부가 정책으로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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