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린 티블몽 교수 "소브라이어티, 환자를 위한 선택과 집중"

CAR-T 치료제의 등장으로 혈액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고가 치료제의 도입만으로는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치료 성과는 의료 시스템과 인력, 제도적 기반 위에 세워진다. 이에 본지는 최근 진행된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5) 참석차 방한한 세인트루이스병원 혈액종양내과 카트린 티블몽(Catherine Thieblemont) 교수를 만나 프랑스의 선진화된 CAR-T 치료 환경과 그 속에서 의료진의 역량이 어떻게 집중되고 보호받는지를 살펴보고, 국내 임상 현장에서 마주한 혈액암 치료 인력 고갈과 번아웃 문제를 2편에 걸쳐 조명하고자 한다.

세인트루이스병원 혈액종양내과 카트린 티블몽(Catherine Thieblemont) 교수
세인트루이스병원 혈액종양내과 카트린 티블몽(Catherine Thieblemont) 교수

지난 10여 년, 면역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 암세포를 직접 타격하는 CAR-T 치료제는 혈액암 치료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들이 완전관해에 도달하고, 장기 생존의 길이 열리면서 ‘치료 불가능’의 경계를 허물어온 것이다.

CAR-T 치료제 중 최초로 상용화된 노바티스의 '킴리아(성분명 티사젠렉류셀)'는 특히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에 이어 소포성 림프종(FL) 영역에서 놀라운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카트린 티블몽 교수는 “FL은 비교적 예후가 좋은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재발을 반복하는 만성적인 특성 때문에 환자의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며 "킴리아는 이러한 환자들에게 단 한 번의 치료로 장기 생존가능성을 넘어 완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기존 치료 대비 전체 치료 과정에서 소요되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절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치료제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티블몽 교수가 발표에 참여한 ELARA 임상연구의 4년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재발성 또는 불응성 소포성 림프종(R/R FL) 성인 환자 97명 중 완전관해(CR)율은 69%,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은 53.3개월에 달했다. 특히 측정 가능한 미세잔존질환(MRD)이 있는 환자 중 90% 이상이 MRD 음성을 달성했고, 이는 장기 생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예측 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티블몽 교수는 "이번 장기 추적관찰 연구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킴리아가 전신치료 후 24개월 이내 질병이 진행된(POD24) 환자, 국제 소포성림프종 예후지수(FLIPI)가 높은 환자, 이중 불응성 및 높은 종양 부담을 가진 환자 등 고위험 환자군에서도 일관된 치료 효과와 안전성 프로파일을 확인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CAR-T 치료에서 보기 드문 수준의 장기 치료 효과를 보여주는 결과여서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CAR-T 치료는 이처럼 기존 치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치료법이지만, 그 적용과 성공에는 정교한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프랑스는 한국이 주목할 만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의료 소진을 막는 구조, 프랑스가 택한 전략적 절제

프랑스는 CAR-T 치료제의 도입 초기부터 병원 중심의 자율적 운영 구조를 채택했다. CAR-T 치료가 가능한 센터는 2025년 현재 42곳에 달하며, 지정 방식은 한국과 다소 다르다.

정부가 센터를 지정·관리하는 방식이 아닌, 제약사가 각 병원의 자격 요건을 자체 평가해 치료기관을 승인하는 제약사 주도형 모델을 운영한다. 이는 병원 입장에서는 신속한 진입이 가능하고, 제약사 입장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치료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티블몽 교수는 "프랑스는 CAR-T 치료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하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며 "킴리아를 비롯한 CAR-T 치료제 도입 후 환자 관리에 대한 임상의들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및 프랑스 내 의료진 간 지속적인 CAR-T 치료 사례 공유 및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티블몽 교수는 "프랑스 의료계에서는 '소브라이어티(sobriety)'라는 개념을 적용하고 있다"며 "이는 의료진이 환자에게 실질적인 이점을 줄 수 있는 활동에 최대한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다양한 행정적 업무나 부수적인 작업들로 인해 의료진의 역량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고 집중된 에너지를 환자 진료에 보다 투입하겠다는 일종의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티블몽 교수는 이어 "예컨대, 환자의 상태가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을 경우, 불필요한 진료를 진행하지 않고 반대로 환자가 재발하거나 상태가 악화됐을 경우 의료진의 역량과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방향성"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현재 한국은 정부 인증제를 통해 2025년 기준 14개 센터에서만 CAR-T 치료가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절차적 지연과 치료 시기 상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예후 마커 활용한 적극적인 모니터링과 가교요법 시행

CAR-T 치료의 전제는 환자의 상태가 치료에 적합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CAR-T 치료제 제조에는 약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이 기간 중 질병이 급속히 악화될 경우 치료 효과가 크게 감소하거나, 투여 자체가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의료진은 이를 고려해 '총 암대사부피(total metabolic tumor volume, TMTV)'을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필요 시 '가교요법(bridging therapy)'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티블몽 교수는 "CAR-T 치료는 제조 과정 동안 환자 상태를 면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CAR-T 치료 전 'TMTV'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치료 전단계에서 TMTV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키려는 치료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티블몽 교수에 따르면, TMTV는 FL 치료에 있어 환자 예후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진다. 연구에 따르면, 높은 TMTV는 높은 재발율과 불량한 치료 예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티블몽 교수는 "CAR-T 치료제의 제조 및 배송 기간 동안 환자의 전반적인 임상 상태와 무관하게 TMTV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며, 종양부피 감소를 위한 치료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CAR-T 치료 반응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후속 모니터링 체계에 일반의와 전문의 역할 분담 명확

CAR-T 치료는 투여 이후 환자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치료 반응의 지속 여부, 이상반응 발생, MRD 상태 등을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이 과정을 '일반의(GP)'와 '전문의'의 역할을 명확히 나누어 수행한다. 환자가 안정적일 경우 GP가 1차적으로 관리하고,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전문의로 전원하여 대응하는 '역할 기반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CAR-T 치료 후 일정 기간 입원 치료를 마친 뒤 외래 중심의 관찰로 전환되며, 정기 추적은 1, 3, 6, 12, 18, 24개월, 이후에는 연 1회로 이어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환자 부담을 줄이면서도 치료 지속 효과를 면밀히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실효성 중심의 급여 시스템…DESCAR-T 레지스트리로 해결

프랑스는 CAR-T 치료제를 전액 국가 급여로 제공하지만, 그 전제는 명확하다. 모든 치료 데이터는 국가 차원의 DESCAR-T 레지스트리에 등록돼야 하며, 이를 통해 치료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검증한다.

티블몽 교수는 "CAR-T 치료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의료진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환자에 대해서는 모두 급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라며 "다만 CAR-T 치료제는 고가의 약제이기 때문에, 해당 치료제가 실제 임상연구에서 보고된 수준의 효과를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재현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티블몽 교수는 "CAR-T 치료제는 제조 및 치료 기간까지의 일정 지연이 불가피하다"며 "때문에 의료진 입장에서 고가의 치료제를 환자에게 처방할 때 ▲제조기간 동안 환자의 질병진행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CAR-T 치료 이후 재발이 자명하게 예상되는지 등을 면밀히 고려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킴리아는 프랑스 진료 현장에서 임상연구와 유사한 수준의 치료 효과 및 안전성 프로파일을 확인했는데, 티블몽 교수는 "이와 같은 데이터는 킴리아의 처방 근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티블몽 교수는 "한국에서도 프랑스 등 유럽 국가와 같이 급여 결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레지스터리(Registry)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구축하는 등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CAR-T 치료, 기술이 아닌 시스템으로 완성된다

CAR-T 치료제는 단순한 약제가 아니다. 이는 환자 선별, 맞춤형 사전 치료, 세포 제조, 투여 후 장기 추적까지 수 주에 걸쳐 다양한 치료 단계가 통합된 복합적 치료 전략이며, 각 단계에서 의료진의 임상적 판단과 유연한 결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의료진 중심의 치료 결정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CAR-T 치료는 정부 인증을 받은 센터에서만 진행 가능하며, 치료 대상 선정이나 가교요법 시행, 급여 적용 여부 등 대부분의 치료 과정이 정책 중심 혹은 행정적 판단에 의존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티블몽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CAR-T 치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정답'을 고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유동적으로 치료 과정을 설계할 수 있는 자율성과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위험 환자의 경우, TMTV 감소 전략이나 가교요법 시행 여부 등을 임상의의 경험과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CAR-T 치료의 급여 기준이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정형화돼 있어,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치료조차 급여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환자의 치료 기회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고가의 CAR-T 치료제 자체에 대한 접근성을 현저히 낮추는 결과로 이어진다.

CAR-T 치료는 전통적 항암요법과 달리 환자 맞춤형 치료이며, 그 효과는 ‘적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치료 전 준비 단계부터 환자에 따라 ▲가교요법 시행 여부 ▲림프구 고갈요법의 강도 ▲투여 시점 조정 등이 융통성 있게 운영돼야 하지만, 국내는 여전히 획일적인 표준 절차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이 구조를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임상시험과 유사한 수준의 치료 효과를 실제 진료 현장에서 구현해냈다. 이제는 한국도 CAR-T 치료의 실질적 성과를 위해 '누가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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