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혈액학회, ICKSH 2025서 의료진 대상 설문조사 결과 발표
국내 혈액학 전문 인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대한혈액학회(이하 학회)는 지난 27일 '2025년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ICKSH 2025)' 기자간담회에서 의료진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분석한 국내 혈액학 분야의 인력 문제를 공론화했다.
김혜리 홍보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는 "현재 한국의 혈액학 분야는 심각한 의료진 부족 현상으로 임상 실무에서 겪는 어려움과, 그로 인한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며 "학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혈액학 관련 의료진의 현황을 평가하고, 그들의 직무 만족도, 업무에서 직면하는 어려움 및 개선이 필요한 영역을 조사하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설문조사에 앞서 학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혈액학 분야 의료진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심각하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그림1).
김혜리 홍보이사는 "현재 국내에는 혈액내과 전문의가 약 160명, 소아혈액 전문의가 약 74명, 진단검사의학과 골수 판독의가 약 82명, 병리과 혈액암 판독의가 약 55명으로 치료와 진단에서 모두 의료진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며 "특히 각 나라별 혈액학 인력은 영국이 10만 명당 2.92명, 미국이 0.707명, 일본이 1.109명인 반면 한국은 0.307명에 불과해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의 혈액학 전문 인력은 주로 서울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쏠림 현상 또한 심각했다(그림1).
김 홍보이사는 "더욱 문제되는 부분은 인력의 고령화인데, 현재 절반 이상의 인력이 50세 이상의 고령 전문의"라며 "한국은 인구 고령화와 함께 혈액암 환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혈액학 전문 인력의 부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혈액학 전문 인력의 연령 분포는 50세 이상이 혈액내과 전문의의 45%, 소아혈액 전문의의 53%, 병리과 전문의의 49%를 차지하고 있으며, 곧 은퇴를 앞둔 60세 이상도 혈액내과 전문의의 19%, 소아혈액 전문의의 26%, 병리과 전문의의 13%나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1).
뿐만 아니라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국내 혈액학 분야의 다양한 도전 과제들을 시사했다(그림2).
설문조사에 응답한 국내 혈액한 의료진은 총 149명이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근로 환경으로 인해 상당한 신체적, 정신적 부담을 토로했다.
김 홍보이사는 "응답자의 절반은 주당 근무시간이 '80시간 이상'이며, 월별 야간 당직을 '5회 이상' 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또한 대체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응답자의 80.5%는 야간 당직 다음날 쉴 수 없다고 응답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휴식 없는 장시간의 근무로 인해 응답자의 상당수는 우울, 수면 부족, 피로, 두통 등의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2).
김 홍보이사는 "또한 의료 소송, 불합리한 건강보험 구조, 비합리적인 보험 수가 삭감, 신규 혈액학 전문 인력 양성의 어려움 등 여러 문제로 인해 많은 혈액학 전문의들이 해당 분야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응답자의 32.9%는 의료 소송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 중 3건 이상 의료 소송을 경험한 응답자는 37.5%를 차지했다. 또한 응답자의 74.5%는 의료 소송이 임상 진료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그림2).
특히, 사직 혹은 이직 의사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74.5%에 달했으며, 10명중 7명 이상의 혈액학 전문의가 향후 5년 내 국내 혈액학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혈액학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로는 '근무 시간', '급여 문제', '의료의 자율성', '소송의 위험성', '의정 갈등' 등을 꼽았다(그림2).
김 홍보이사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복잡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양질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혈액학 전문 인력을 유지하고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인 개입이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날 학회는 혈액학 전문 인력 문제 해소를 방안으로 정부와 의료진의 소통 창구 마련, 후임 전문의 양성과 진료 지원 인력 확대, 수가 및 불합리한 삭감 문제 개선,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컨센서스와 법적 보호, 근무 여건/급여 개선 등을 제안했다.
이날 김석진 이사장(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은 "소송이나 불합리한 삭감 문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혈액학 전문의들 모두가 겪는 문제"라며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밀려오는 자괴감과 피로로 인해 환자 진료에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해당 설문조사에 대해 "학회가 생긴 이래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고민한 최초의 시도"라며 "학회는 앞으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긴 호흡을 가지고 하나씩 풀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는 ICKSH 2025 포스터 초록(제목: Addressing Workforce Challenges in Hematology: insights from a nationwide survey of medical practitioners in Korea)으로 동시 발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