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찰청 “의료진,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 거부”
이경원 공보이사 "응급의학과 전문의 하지 말라는 신호탄"
김주성 변호사 “지난해 의정 사태 고려해 판단해야”
이마 열상 환자를 받았지만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원 조치했던 대구 지역 응급의학과 전문의들과 응급구조사들이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가운데, 경찰 측은 기본적인 응급의료 처치 없는 환자 이송을 ‘응급의료 거부’로 봤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지난해 4월 의정 사태 당시 상황을 고려해 폭넓은 재판부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대구경찰청은 대구 A정신병원에서 관자놀이 부위 열상을 입은 환자가 응급실을 돌다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대구 지역 종합병원 1곳과 상급종합병원 2곳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4명, 응급구조사 2명에 대해 지난달 22일 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대구 경찰은 B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과 상급종합병원인 C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 응급구조사 1명, D대학병원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 응급구조사 1명 등 총 6명에 대해 응급의료법 제6조 ‘응급의료 거부 금지’ 위반을 적용했지만 ‘업무상 과실 치사’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환자 사망에 대한 병원 간 책임 소재를 가리기 불명확한 데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도 불충분해 해당 의료진에게 업무상 과실 치사는 없다고 판단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경찰이 밝힌 사인은 ‘열상 등으로 인한 과다 출혈’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의료진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했다고 봤다.
경찰 관계자는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할 순 없다”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응급처치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봤다”고 말했다. 응급구조사도 같이 검찰에 송치한 이유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경찰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응급의료법 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도 “수사 과정에서 참고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사건으로 1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 의료진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사 과정이 길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응급의료법 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에 따르면 응급의료법 제6조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는 응급환자에 대한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가 포함됐다. 또 인력·시설·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의 가용 현황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 등도 진료 거부·기피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 "환자 사망할 때마다 의사 처벌 옳은 일인가"
대한응급의학회는 적절한 응급의료를 제공할 수 없어 ‘정당한 진료 거부’를 했음에도 무리한 수사로 의료진을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적 판단에 따라 해당 분야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한 조치가 최선이었다는 지적이다.
또 환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문진에 응할 정도로 기도, 호흡, 순환이 유지되는 상태였다는 점도 강조했다. 경찰의 부검 소견 결과 열상 등으로 인한 과다 출혈이 사망 원인이지만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던 당시 혈액검사 상, 혈색소(Hemoglobin) 수치가 10d/dL로 빈혈 상태지만 급하게 수혈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고도 했다.
응급의학회 이경원 공보이사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10d/dL이다. 과다출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40대 환자가 사망했으니 이런 식으로 책임을 지우겠다는 건데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이게 끝이 아니다. 민·형사 소송이 이어진다. 환자가 사망할 때마다 이렇게 의사들을 처벌하는 게 옳은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이 공보이사는 “경찰에서도 업무상 과실치사는 아니라고 봤다. 결국 응급의료법 위반이라고 보는 건 응급처치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인데 앞뒤가 맞지가 않는다”면서 “이는 젊은 의사들에게 응급의학과 의사는 하지 말라는 신호탄 같은 거다. 검찰에서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기소 여부 쟁점…법조계 "의정 사태 고려 必"
환자를 직접 대면해 상태를 살폈던 B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기소 여부도 쟁점이다. C·D대학병원은 각 병원 환자 분류단계에서 응급구조사가 중증도 분류를 시행했으며, 이를 토대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수용 거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환자를 진료했던 B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책임을 물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2023년 3월 대구에서 발생한 10대 중증외상 환자 사망사건에서 당시 해당 환자를 첫 번째로 진료한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기소 심의를 받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대구파티마병원 측이 항소해 심의가 진행 중이다. 당시 응급의학과 전공의에 대한 수사 결과는 공개된 바 없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실제 환자를 대면했던 의사들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문 앞에서 거절을 했든지, 직접적으로 진찰 과정에서 환자 대면을 하지 않았던 의사들은 중요한 혐의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기본적인 검사나 사망 위험성에 대해 따지게 될 텐데 기소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전국 400개 의료기관 중 약 60%가 응급의학과 전문의 혼자 진료하는 응급실이다. 안면 찢김 환자가 오면 봉합하는데 30분에서 1시간 가량이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다른 응급환자는 처치하지 못하게 되니 대부분 응급실에서 환자 수용을 고사할 수밖에 없어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지난해 국가적 의료 대란 사태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정당한 진료 거부’를 폭넓게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의정 사태로 전공의와 전문의가 부족해 가용할 수 있는 응급의료자원 자체가 부족했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반우 김주성 변호사는 “지난해 4월은 전공의가 없어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자원 자체가 부족했던 시기”라며 “이미 병원에 환자가 가득 차 있는데 이들을 두고 새로운 환자를 받을 수는 없다. 이미 최대치에 이른 상황에서 진료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응급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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