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라 외과의사회장 "미봉책 말고 근본적 해결책 내라"
"필수의료 저평가·저수가 묶어 놓은 건강보험제도 개선을"
최근 또 한 명의 외과 의사가 전문의로서 내린 선택 때문에 범죄자가 됐다. 수술하는 의사는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받거나 억대 배상금을 문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칼을 잡고 수술장에 들어가 받는 돈은 '단돈' 몇만원, 몇십만원이다. 전문의는 수술을 포기하고 젊은 의사는 외과계를 외면한다.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 시티 호텔에서 열린 대한외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이세라 회장이 전한 외과계 현실이다. 이 회장은 이런 상황만 타파할 수 있다면 의과대학 정원 증원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선 없이 위기만 회피하려는 '떡밥'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회장은 "교수가 당직에 지치고 정년으로 물러나도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 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의가 환자를 위해 한 선택 때문에 처벌됐다. 갖가지 이유로 의사에게 배상을 요구하고 형사 처벌한다. 젊은 의사가 외과계에 종사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회장은 "맹장 수술만 해도 홍콩은 2,000만원, 미국은 7,000만원 수준이다. 한국은 전 세계 최하위다. 이러니 외과 의사가 계속 줄어든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도 수술을 안 한다"며 "이런 상황은 겉으로 보이지 않고 통계로 잡히지도 않는다. 외과계가 서서히 멸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원전담전문의는 해결책이 아니다. 전문의를 더 채용해도 (병원 경영에) 무리 없게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공공임상교수제도 실패했다"며 "정부가 편법만 동원하니 젊은 의사들이 더는 미끼를 안 문다"고 했다.
"정부는 더 이상 회피 말라"…건강보험제도 개선만이 해법
이 회장은 건강보험제도 개선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했다. 40년 넘게 외과계를 저평가하고 저수가로 묶어 놓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필수의료 종사자가 견뎌낼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맹장 수술은 안 하면 사람이 죽는다. (수술료는) 목숨값이다. 그런데도 지금 9만원인 맹장 수술 수가를 10배 올리자고 하면 동의하는 사람 많지 않을 거다. 그러면서 (미용·성형인) 쌍꺼풀 수술 100만원, 200만원 하는 건 국민은 물론 언론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꼬집었다.
이렇게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다른 분야보다 차별받는 상황"을 방치하면 백약이 무효하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도 "근본적인 원인은 회피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제도 개선이라는) 조건부가 있다면 의대 정원 증원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 상태 그대로라면 (증원해도) 필수의료 지원자는 없다"며 "필수의료하면 감옥 가거나 (돈) 물어줘야 하는 시대다. 가르쳐줘도 못 배우고 배우는 척만 하고 (필수의료 진료) 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40년간 미봉책으로 누더기가 된 제도를 고쳐야 한다. 깨진 항아리 본드로 붙여 놓고 물 담으라고 하면 안 된다. 더 이상 회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의사 이기심으로 돌리지 말고 정책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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