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과 달리 2심 재판부 ‘뇌파계 한의사 사용 가능’ 판단
대법원, 전원합의기일 심리 지정…새로운 판단기준 적용할 듯

'뇌신경전문 한의원' 운영하면서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뇌파계를 사용한 한의사 A씨는 지난 2012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A씨는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청년의사).
'뇌신경전문 한의원' 운영하면서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뇌파계를 사용한 한의사 A씨는 지난 2012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A씨는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청년의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초음파 진단기기에 이어 뇌파계 한의사 사용 합법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어서 의료계 내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1심과 2심 모두 유죄가 선고됐던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과 달리 뇌파계의 경우 2심에서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이 뒤집힌 상황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6년 9월 접수된 한의사 뇌파검사 사건에 대해 2022년 10월 전원합의기일 심리를 지정하고 현재 쟁점에 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 대상은 한의사 A씨가 ‘뇌신경전문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해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로 면허자격정지 처분 3개월 처분을 받은 사건이다. 파킨슨병이나 치매는 뇌파계로 진단할 수 없다는 게 대한신경과학회의 설명이다.

A씨가 복진(腹診)과 뇌파검사로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기사가 지난 2010년 11월 17일 한 경제신문에 게재되면서 논란이 됐다. 해당 기사에는 A씨가 환자에게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 여부를 확인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게재됐다. A씨는 배를 만져보는 복진으로 파킨슨병을 진단하고 뇌파 검사를 보조수단으로 사용해 확진한다고 설명했다.

서초구보건소는 2011년 1월 21일 A씨가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를 하고 의료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며 업무정지 3개월과 경고 처분했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2년 4월 A씨에게 한의사면허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A씨는 복지부를 대상으로 한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복지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13년 10월 31일 A씨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뇌파계는 신경계질환, 뇌질환 등을 진단하는 데 사용되고 그 기능과 사용 방법 등을 고려하면 그 기록을 제대로 파악해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은 뇌파기기와 관련된 교육을 충분히 받지 않은 상태에서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 사건 뇌파계가 위해도 2등급을 받았다고 해도 같은 위해도 2등급인 다기능전자혈압계와 귀적외선체온계과 같게 취급할 수 없다”고 했다. A씨가 사용한 뇌파계는 인터메드가 생산·판매한 제품(모델명:NEURONICS-32 plus)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6년 8월 19일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소송비용 중 일부를 피고인 복지부 측이 부담하라고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한의약육성법 제2조 1호를 근거로 “한방의료행위는 우리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 예방이나 치료행위와 이를 기초로 해서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질병 예방 또는 치료행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의사와 한의사 면허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규정이 없다며 “이원적 의료체계의 입법 목적, 당해 의료행위에 관한 법령 규정과 취지, 기초가 되는 학문적 원리, 경위·목적·대양, 의대와 한의대 교육과정이나 국가시험을 통해 당해 의료행위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통념에 비춰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지 의료기기 등의 개발·제작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 등을 진료에 사용하는 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2심 재판부는 이어 “A씨가 한의원에서 뇌파계를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사용한 행위는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료기기 용도나 작동원리가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돼 있는 경우 등 한의학 범위 내 있는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A씨가 뇌파계를 사용해 “한방신경정신과 진료를 했다고 볼 수 있다”며 “한방신경정신과 영역에서는 뇌를 골수가 모이는 곳으로, 뇌수를 뇌 기능의 물질적 기초로 파악하고 있으며 뇌파는 이런 뇌의 활동에 의한 미세전류의 변화를 외부에서 측정하는 것으로 기(氣)와 형(形)의 개념에 비유해 기의 승강출입(乘降出入)과 경락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 뇌파가 발생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복진 또는 맥진이라는 전통적인 한의학적 진찰법을 통해 파킨슨병 등을 진단하는 데 있어 뇌파계를 병행 또는 보조적으로 사용한 것은 절진의 현대화된 방법 또는 기기를 이용한 망진(望診)이나 문진(聞診)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의사와 한의사가 뇌파기기 관련 교육을 동등하게 받는다고 볼 수 없다는 1심 판단에 대해서도 “뇌파기기가 차지하는 비중 등에 의한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문성 등에 대한 척도로는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정신건강의학회, 대한신경과학회, 대한신경과의사회와 함께 이번 사건 상고심에 보조참가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기존 판례를 뒤집고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합법이라고 판결하면서 한의사가 새로 개발·제작된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게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새로운 기준까지 제시한 상황이다.

대법원이 제시한 새로운 판단 기준은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의 특성과 그 사용에 필요한 기본·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춰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에 비춰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게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해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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