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에게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 참여 거부 요청
의협 “의료계와 논의할 생각 있는지 모르겠다”
“의료계 내부 기류 바뀌는데 정부가 긁어 부스럼”

원격의료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이 다시 강경해지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와 협의 없이 원격의료 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료계 내부 기류가 ‘무조건 반대’에서 논의해볼 수 있다는 쪽으로 바뀌면서 의협과 서울시의사회 등은 관련 논의를 주도하기 위한 연구도 시작했다. 하지만 김부겸 국무총리가 비대면 진료(원격진료)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일부 지자체에서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의료계의 반감이 커졌다.

의협에는 ‘보건소에서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을 안내하며 참여하라는 공문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며 항의성 민원도 접수됐다. 의협이 원격의료에 찬성하는 쪽으로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비난도 나온다.

결국 의협은 회원들에게 의원급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에 참여하지 말고 무상으로 지원 받은 모니터 등 장비도 반납하라고 다시 한 번 안내했다. 최대집 집행부 시절 세 차례 발송했던 공문을 이필수 집행부에서도 다시 보낸 것이다.

의협은 지난 15일 산하단체에 발송한 공문을 통해 “원격의료 도입 근거 마련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 중단을 정부에 요구했다”며 회원들도 지원사업 수주업체인 민간업체를 통해 제공되는 무상 모니터를 받지 말고 이미 지원 받은 장비는 반납하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5일 산하 단체에 '정부 주도 의원급 의료기관 화상진료장비 지원사업 중단을 위한 재협조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5일 산하 단체에 '정부 주도 의원급 의료기관 화상진료장비 지원사업 중단을 위한 재협조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최근 들어 원격의료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의료계 내에서는 “정부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원격의료에 대한 반감이 아직 큰 상황에서 의료계가 어렵게 테이블에 앉았는데 정부가 협의 없이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논의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의협 이정근 상근부회장은 20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의료계가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기조는 갖고 있다”며 “하지만 원격의료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만큼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진료 보조 수단으로 원격의료가 도입될 수밖에 없겠지만 현재 오진 가능성이나 법률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이런 부분들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며 “논의해보자고 했더니 정부는 정책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수현 홍보이사 겸 대변인도 의료계와 협의 없이 추진되는 정책이 오히려 원격의료를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충분히 논의하고 협의할 의향이 있다. 지난달 열린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도 도서·산간 등 의료취약지 등에서 비대면 진료를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며 “논의가 진행되는 중에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의료 현장의 반발을 산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의정합의에 따라 시범사업을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어떤 부분을 보강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장비 지원부터 하겠다고 하니 일선에서는 반감이 커지고 분노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의료계와 논의할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밀어붙이고 보자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반대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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