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학회 및 의사회, 모체태아의학회 등 대국민 호소문 발표
“의사가 양심‧직업윤리에 따라 낙태 거부하는 건 정당한 사유”

낙태법 개정 시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와 관련한 작업이 미뤄져 법령 폐지가 유력해지자 산부인과계가 ‘선별적 낙태 거부’를 선언하는 한편,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8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낙태법의 공백 상태에서도 우리는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여성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직업적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면서 “이에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있는 임신 22주 이후에 잘 자라고 있는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선별적 낙태 거부’를 시행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진행돼 온 낙태법 개정 논의에서 산부인과계는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현행법 보다는 훨씬 많이 보장하면서도 태아의 생명권이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에 산부인과계는 ▲낙태법 폐지에 반대한다 ▲임신 10+0주(70일: 초음파 검사 상 태아 크기로 측정한 임신 일수 기준) 미만에는 임신한 여성이 아무 조건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다 ▲임신 10+0주부터 22+0주 미만에 낙태를 원하는 경우에는 상담과 일정 기간의 숙려 절차를 거쳐 낙태를 하도록 한다 ▲임신 22+0주 이후에는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 가능성이 있으므로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의사의 낙태 거부권은 보장돼야 한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헌재가 낙태법 개정 시한으로 명시한 2020년 12월 31일을 앞둔 현재까지 관련법은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오는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 폐지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산부인과계 단체들은 개정 시한을 넘겨 혼란을 야기한 정부와 입법부의 직무유기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하는 동시에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반영해 신속한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체들은 “낙태 진료에 관한 의사의 거부권은 개인의 양심과 직업 윤리 등을 고려하여 반드시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면서 “의료법엔 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태아를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해달라는 요청을 의사가 양심과 직업윤리에 따라 거부하는 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며 누구도 의사에게 양심에 반하는 진료를 강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이어 “낙태를 합법화한 국가들도 낙태법을 폐지한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정한 범위와 절차 안에서 허용하고 있다”면서 “‘낙태법을 폐지하자’거나 ‘태아가 생존 가능성이 있는 시기의 낙태도 허용하자’는 주장은 낙태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의사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의사들에게 살인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동안 우리의 낙태 현실은 낙태를 금지한 게 문제가 아니라 법적, 제도적 체계 안에서 낙태가 이뤄지지 않고 임신 갈등 상황에 처한 위기의 여성들과 불법 낙태를 하는 의사들의 문제로 방치해 온 게 그 원인”이라며 “정부와 입법부는 의사의 낙태 거부권이 명시된 낙태법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체들은 “산부인과는 낙태한 여성이 처벌받는 걸 원치 않는다. 그러나 가능하면 모든 태아의 생명권이 존중되기를 바라며, 또한 여성들이 사회 경제적 압박에 의해 낙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하루 속히 개선되기를 바란다”면서 “이에 산부인과 의사들의 ‘선별적 낙태 거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바라며, 낙태를 줄이는 낙태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지도록 정부와 입법부에 요구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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