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서연주 부회장 “대화하자더니 업무개시명령”
전공의들, 협의 없이 추진되는 정책에 배신감
시한폭탄 같은 상황…“한발만 양보해 달라”

“의료 현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우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고 큰 배신감을 느꼈다. 장비도 없이 총알받이가 된 것까지는 감수하겠지만 이제는 뒤에서 총질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 소식을 접한 전공의들의 심경이다.

의료진이 사용할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하소연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재고를 쌓아두고 싶어서 그런다”고 ‘의료진 탓’을 했을 때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방호복이 부족해 비닐 헤어캡을 덧신으로 재활용하면서 버텼다. ‘덕분에’라며 국민이 보내준 응원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던 어느 날, 정부는 공공의료 분야에서 근무할 ‘사명감 있는 의사’가 부족하다며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어떻게 양성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전공의들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의사 수만 늘리면 의료체계는 더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국회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항암제 복용을 포기하는 환자들을 지켜봐 온 전공의들은 첩약 급여화 정책도 이해되지 않았다. 임상적 유효성도 검증되지 않은 첩약에 건강보험재정을 투입하기보다 비싼 항암제를 급여화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목소리도 ‘직역 이기주의’로 치부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서연주 부회장(가톨릭중앙의료원 내과 2년차)이 지난 28일 청년의사 유튜브 방송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코파라)에 출연해 전한 전공의들의 심정이다. 서 부회장은 정부가 전공의들을 병원 밖으로 내몰았다고 말했다. 대화를 원했지만 단체행동에 나서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의견은 무시됐다고 했다. 하필 코로나19로 정신없는 지금, 이런 민감한 정책을 밀어붙이는지는 모르겠다고도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서연주 부회장은 지난 28일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에서 진행된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에 출연해 전공의들이 무기한 업무중단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서연주 부회장은 지난 28일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에서 진행된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에 출연해 전공의들이 무기한 업무중단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간신히 잡았던 신뢰의 끈이 끊어졌다”

전공의들은 지난 24일 정세균 국무총리를 만난 후 “진정성 있는 대화가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약속했던 코로나19 진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서 부회장은 “(국무총리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업무개시명령 얘기가 나오고 대한의사협회와 밀실에서 합의안을 만들었다며 발표했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간신이 잡았던 신뢰의 끈이 끊어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왜 하필 이 시기인가. 덕분이라는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고생했더니 알아주는구나, 이제 우리의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기려는 찰나였다”며 “하지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거기서 전공의들은 좌절감과 배신감을 느꼈고 감정적으로도 동요하게 됐다. 학생 시절 그렸던 의사로서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복지부가 의협을 통해 전했다는 ‘합의문(안)’에 대해서도 “수도권 코로나19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서 정책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단체행동을 결심했을 때 ‘환자를 볼모로 한 밥그릇 지키기’란 비난도 각오했다. 하지만 비난이 거세질수록 상처도 컸다. 서 부회장은 “전공의들은 병원을 나와도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댓글이나 여론의 반응을 살피면서 상처받고 있다”며 “낭떠러지에 있는 상황이다.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환자 곁을 지켰던 시간은 무시한 채 그저 환자를 볼모로 정부와 거래를 하는 존재로 매도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의사 인력만 투입한다고 지역의료 살아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는 정부가 발표한 정책만으로는 공공의료 인력도 기피과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훌륭하고 실력 있는 의사가 늘어나는 것에는 찬성한다. 그런데 이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나 지역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빠져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부족한 것인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지방에 왜 의사가 남으려고 하지 않는지를 파악해 먼저 해결해야 한다.”

서 부회장은 의사 인력만 늘린다고 공공의료와 지역의료가 강화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례로 지방에서 수련을 받은 흉부외과 전문의가 그 지역에 있고 싶어도 심장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많지 않다고 했다.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수도권으로 가는 상황에서 지방 의료기관들이 필수 과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의사만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등 인프라와 간호 인력도 필요하다. 지방 의료기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

시한폭탄 같은 상황…“한발만 양보해 달라”

서 부회장은 하루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전공의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며 형사처벌을 받는 전공의가 생기면 “시한폭탄처럼 터질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그는 “정부는 강경하고 전공의들도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총알이 날아오면 그냥 맞겠다는 입장이다. 감정적으로 동요한 전공의들이 돌아가려면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를 향해 “힘을 합쳐서 이 위기를 타개했으면 한다. 한발만 양보해 달라. 우리가 이번 일로 마음을 다친 전공의들을 잘 다독이고 환자들을 위해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발만 양보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환자와 시민들에게는 “죄송하다”고 했다.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서 밤새며 환자 곁을 지키고 방호복을 입고 땀을 흘려가며 진료하던 의사가 지금 돌멩이를 맞고 있는 젊은 의사와 같은 사람임을 알아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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