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의료인·수련의로서 전공의에 갖는 권한 근로자에 행사 못해"
의대 증원, 필수의료 패키지…'사회 통념상' 수련 중단 이유에 해당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위헌적이라는 지적이 재차 나오고 있다. 정부가 수련병원과 전공의 사이의 ‘사법(私法)관계’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이재희 법제이사는 지난 11일 발간된 의료정책연구원 계간지인 ‘의료정책포럼’에 ‘사직 전공의의 법적 지위에 관한 소고’를 통해 정부 행정명령의 위법성을 짚었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실망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정부는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 전공의에 대한 사직서 수리 일괄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그 근거로 의료법 제59조 1항(지도와 명령)을 제시했다.
의료법 제59조 1항에 따르면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해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혹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공의의 경우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의료법 적용을 받는 의료인,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수련의의 지위에서는 정부와의 공법(公法)관계가 인정되나 수련병원과 근로관계를 형성한 근로자로서의 지위는 아니기에 정부의 행정명령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근로자로서의 지위와 의료인, 수련의로서의 지위는 서로 완전히 지도 원리가 다른 영역”이라며 “보건복지부는 의료인, 수련의로서의 전공의에 대해 갖는 권한을 남용해 근로자로서의 전공의에게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사적자치의 원칙, 직장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이사는 “그럼에도 정부는 공법 관계상 필요한 명령을 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제59조 제1항의 규정을 근거로 사법 관계에 개입해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는 공·사법을 구별하지 못한 오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련병원과 전공의 간 맺은 ‘계약 관계’상 병원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으면서 강제적으로 전공의와의 계약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도 했다.
이 이사는 “수련병원과 전공의의 관계가 ‘계약’인 이상, 수련병원의 장과 전공의는 각자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하고 종료할 수 있다”며 “다만 양자 간 힘의 불균형으로 병원은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전공의를 해임할 수 있는 반면 전공의는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사직 가능하다”고 말했다.
만약 병원의 수련교육위원회가 사직을 원하는 전공의를 해임하지 않더라도 민법 제661조(부득이한 사유와 해지권)에 따라 ‘고용 계약을 계속해 존속시켜 그 이행을 강제하는 게 사회 통념상 불가능한’ 경우에는 전공의가 사직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전공의가 병원에 남아 근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이사는 “전공의는 주당 최대 80시간의 수련(근로) 시간을 당연히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는 등 다른 어떤 근로자보다 열악한 근무조건을 견디고 있다. 이를 견디려면 전문의가 됐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전망이 나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을 듣고 전공의가 가혹한 수련을 견디는 게 무의하다는 판단을 내려 사직했다면, 전공의에게 수련을 강제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직서의 효력은 전공의가 제출한 순간부터 발생한다고 봤다. 다만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존재했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퇴직금의 지연 이자 등은 6월부터 청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이사는 “민법 제661조에 따라 사직서의 제출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존재했던 상황에서 수련병원의 고의·과실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퇴직금에 대한 지연 이자 등 손해배상은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철회된 6월부터 청구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도 무효라고 봤다. 이 이사는 “사직한 전공의에게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없다. 수련병원에서의 업무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사직은 구체적인 개별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 행위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24년 사직 전공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전공의가 수련병원과 맺은 사법관계와 국가와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법관계를 혼동해 위헌·위법적으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라며 “명확한 법률 근거 없이 그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위법적 명령을 남용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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