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행 교수, "전공의 근무 환경, 저임금 노동 착취"
홍윤철 교수 "政 의대 증원 수치 지정 비과학적"
병원을 나선 전공의들의 ‘병원을 떠날 결심’이 커지고 있다는 의견이 재차 나온다. 정부가 아무리 수련 환경 조건 개선을 약속해도 신뢰를 주지 못하고, 병원에서의 과중한 노동을 감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게 이유다.
서울의대 병리학교실 정진행 교수는 14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이 주최한 포럼 ‘의사 정원, 어떻게 해야 하나?’에서 이같이 내다봤다.
정 교수는 이번 전공의 사직 사태로 그동안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를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며 유지했던 의료체계의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했다.
정 교수는 “수련병원이 파산하지 않았던 것은 전공의를 활용한 박리다매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로는 수가 인상이 불가능하다.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던 것은 전공의에 대한 저임금 노동 착취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노동을 거부하니 바로 시스템의 취약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압박과 여론 등으로 전공의들의 직업적 자존감이 완전히 ‘말살’됐다고 했다.
정 교수는 “전공의들은 열악한 근로 조건과 법적 위험에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택한 사람들”이라며 “그러나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의 위협적인 발언 등 정부의 조치를 보며 전공의들의 직업적 자존감은 완전히 말살됐다. 잠재적 노예이자 범죄자로 취급되는 것을 MZ세대 전공의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의대 졸업생 중 20%는 전공의 수련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을 살리겠다던 전공의들이 이젠 ‘진작에 개원가에서 경증의료를 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다”며 “의사에게만 직업을 포기하면 잡아가겠다고 협박하는 게 말이 되는가. 헌정질서가 흔들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직 전공의들은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으며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결심’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수련환경 개선을 약속해도 전공의들은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정 교수는 “전공의들은 감당할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받았지만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계기로도 삼고 있다”면서 “미국의사시험(USMLE) 관련 사이트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나. 이제 전공의들은 이런 모욕을 당하며 저임금 노동자로 살지 않겠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은 매우 시급한 문제다. 그러나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지난 1970년 서울대병원에서 똑같이 (수련 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뤄진 게 있나”라며 “지금 당장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하더라도 전공의들이 믿어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 증원 근거 보고서 저자도 "증원 수치 비과학적"
이날 포럼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5년 동안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린다는 증원안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재차 나왔다.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홍윤철 교수는 정부가 증원이 필요한 의사 수를 2,000명으로 딱 떨어지게 지정하는 것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2,000명 증원의 근거로 내세운 3개 보고서 중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의 저자다.
홍 교수는 “보고서 중 65세~80세 사이 의사의 생산성이 65세 미만의 의사보다 50% 감소할 때 부족한 의사 수를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추계 수를 정부가 가져다 썼다”며 “그러나 (의대 증원 규모) 2,000명은 보고서에서 나온 바 없다. 해당 시나리오에는 의사 수급이 초과돼 증원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료개혁에 따라 필요한 의사 증원분이 달라지는 만큼 현재의 수치로 의사 수를 추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의료개혁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수치를 근거로 한 추계는 타당하지 않다. 의료개혁 방향에 따라 증감분이 달라진다”며 “의사 수 추계에서 몇 명이라고 정확히 지정하는 것 자체로 과학적이지 않다. 앞으로 추진될 의료체계 개선 방향과 정책 내용에 따라 미래를 추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의료계 간 의료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이를 시행하는 순서에 대한 관점 차이가 있다며 이를 조율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개혁 추진 과제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공정 보상을 제시하고 있으며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수가 정상화 ▲법적부담 완화 ▲인력확보 정책 ▲취약지 의료기관 지원 확대 등을 제시하고 있다.
홍 교수는 “필수의료인력 가산수가 등을 보면 정부 입장인지 의료계 입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의료인력 확충을 앞에 내세우며 순서만 달라졌을 뿐”이라며 “그렇다면 순서를 바꿔야 한다. 의사 증원 규모는 시행되는 의료 개선안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는 만큼 이에 기반해 의사 수를 정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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