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체계 투자 사회적 합의…배상보험 정부 보전
투명하고 개방적 의료체계…가장 신뢰받는 직업 '의사'
캐나다에서 의사는 "가장 신뢰받는 직업"이다. 캐나다 국민은 교육자나 법관, 종교인보다 의사를 믿는다. 의사를 만나려면 몇 개월, 몇 년을 기다리고 '의료 후진국'이라고 불려도 캐나다는 "국민이 의사를 사랑하는 나라"다.
캐나다 토론토대(University of Toronto) 김태경 교수가 지난 21년간 진료하며 느낀 점이다. 김 교수는 30일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최 긴급 심포지엄에서 캐나다 의료 시스템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의사'가 된 비결로 김 교수는 투명성과 개방성, 의사 사회의 자정 작용을 꼽았다.
토론토대가 있는 온타리오주는 독립 기관 'CPSO(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 of Ontario)'가 의사 면허를 관리한다. 주정부나 의사단체와 별개 조직이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의사는 청문회를 거쳐 처분받는다. 과실 여부와 경중에 따라 면허 정지·취소되거나 벌금을 낸다. 청문회는 일반 대중에 공개한다. 지역 의사의 청문회나 징계 이력은 CPSO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처분 사유도 명시한다.
진료 기록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개방돼 있다. 환자는 검사와 수술 결과를 포함해 의무 기록 일부를 열람할 수 있다. 의사도 별도 정보 공유 시스템으로 환자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 교수가 서울아산병원에서 한 환자 CT 검사와 수술·처방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중복 검사와 처방을 예방하고 의료비 절감 효과를 거뒀다. 의료 관련 기록 질도 향상됐다.
김 교수는 캐나다 의사 사회가 진료에 대한 "동료 평가도 발달했다"면서 "모든 게 공개되니 함부로 진료하지 못한다. 질 관리가 저절로 된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의사의 수입'도 공개자료다. 지역 언론에서 의사 개인별 진료 실적을 정리해 홈페이지에 게재하기도 한다. 대학병원 교수 월급은 주정부가 지급하고 있다.
'의료 후진국'? 의료전달체계 투자하고 정부가 의사 보호하는 나라
캐나다는 '의료 후진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진료나 검사는 수개월부터 연 단위로 대기해야 한다. 그러나 응급의료 서비스는 "대기 시간이 없다". 캐나다는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입원 30일 후 사망률이 한국 절반 수준이다.
김 교수는 "토론토에서 3시간 떨어진 '시골' 환자를 위해 헬기를 띄운다. 여기에 돈을 쓰자고 국민이 합의한 것이다. (응급하지 않은 진료로) 본인이 1년을 대기해야 한다 해도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거야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의료"라고 했다. 물론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고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중증 환자는 소수다. 감기 환자는 다수다. 그래서 캐나다는 감기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 이런 다수로 인해 소수(중증·응급 환자)가 (진료 기회를 놓쳐) 사망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사회가 의료 문제를 다룬다"고 했다.
김 교수는 "캐나다를 의료 후진국이라고들 한다. 3차병원 진입 장벽도 높다. 그러나 일단 안으로 들어오면 세계 최고 수준 진료를 받는다. 제대로 정립된 캐나다 의료전달체계 수혜를 병원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토론토대 종합병원은 뉴스위크가 선정한 2024년 세계 병원 순위에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적정 수가와 의료사고 배상보험 정부 지원도 캐나다 의료 시스템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합리적인 수가는 "과잉 검사와 진료를 줄이고 의료비 증가를 억제한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처럼 수가를 높여도 환자를 많이 보기 어려운 과는 월급제를 도입해 다른 과와 형평성을 맞춘다. 주정부도 지원하지만 "지역 내 기부가 대단히 활발하다"고 했다.
의료사고 배상도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한다. 전공의를 포함한 캐나다 의사 95%는 비영리 의료사고 보험기관 'CMPA'가 운영하는 보험에 가입한다. 의사가 내는 보험료 80%를 주정부가 보전해준다. 김 교수에 따르면 산과 전문의는 보험료 5만8,000달러(약 5,844만원) 중 5만1,000달러(약 5,139만원)는 돌려받는다. 김 교수가 캐나다를 "정부가 의사를 보호하는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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